두 번 고치지 못할 운명은
이미 바다 저쪽에서 굳었겠다.
바라보이는 것은 한가닥 길뿐,
나는 반도의 새 지도를 폈다.

나의 눈이 외국 사람처럼
서툴리 방황하는 지도 위에
몇 번 새 시대는 제 낙인을 찍었느냐?
꾸긴 지도를 밟았다 놓는
손발이 내 어깨를 누르는 무게가
분명히 심장 속에 파고 든다.

이 새 문화의 촘촘한 그물 밑에
나는 전선줄을 끊고 철로길에 누웠던
옛날 어른들의 슬픈 미신을 추억한다.

비록 늙은 어버이들의 아픈 신음이나,
벗들의 괴로운 숨소리는,
두려운 침묵 속에 잠잠하여,
희망이란 큰 수부(首府)에 닿는 길이
경부철로(京釜鐵路)처럼 곱다 안할지라도,
아! 벗들아, 나의 눈은
그대들이 별처럼 흩어져 있는,
남북 몇 곳 위에 불똥처럼 발가니 달고 있다.

산맥과 강과 평원과 구릉이여!
내일 나의 조그만 운명이 결정될
어느 한 곳을 집는 가는 손길이,
떨리며 가리키는 것이 무엇인지,
너는 아느냐?

이름도 없는 일 청년이 바야흐로
어떤 도시 위에 자기의 이름자를 붙여,
불멸한 기념을 삼으려는,
엄청난 생각을 품고 바다를 건너던,
어느 해 여름밤을
너는 축복(祝福)지 않으려느냐?

나는 대륙과 해양과 그러고 성신(星辰) 태양(太陽)과,
나의 반도가 만들어진 유구한 역사와 더불어,
우리들이 사는 세계의 도면이 만들어진
복잡하고 곤란한 내력을 안다.

그것은 무수한 인간의 존귀한 생명과,
크나큰 역사의 구둣발이 지나간,
너무나 뚜렷한 발자욱이 아니냐?

한 번도 뚜렷이 불려보지 못한 채,
청년의 아름다운 이름이 땅 속에 묻힐지라도,
지금 우리가 일로부터 만들어질
새 지도의 젊은 화공(畵工)의 한 사람이란 건,
얼마나 즐거운 일이냐?

삼등 선실 밑에 홀로,
별들이 찬란한 천공(天空)보다 아름다운
새 지도를 멍석처럼 쫙 펼쳐보는
한 여름밤아, 광영이 있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