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마테오가 이야기 풀이 없이 다만 주의 말씀만을 수집하였다고 믿을 것인가? 빠삐아스의 작품을 수중에 가지고 있던 에우세비오도 그 외 고대의 어떤 다른 증인도 이렇게 생각지 않았다。 빠삐아스가 『말씀』이라는 말을 쓸 때, 그가 생각하던 것은 성 마테오 작품 중에서 그가 주해하던 부분인 주의 『말씀』을 가르킨다고 할 것이다。 즉 이 말씀의 논리적 수집이 마테오 복음의 특징이니, 차서있게 저술되었다는 것이 『정확하게는 썼으나 질서 없이 주의 말씀과 행실을 생각나는 대로 모조리 기록한』 말구 성사와의 차잇점이다。
이 아라메아말로 된 복음은 종도 시대에 벌써 그레까말로 번역되었다。 빠삐아스는 이미 여러 사람이 이 번역을 시험하여 본 것을 말하였다。 성 예로니모의 말씀에 의하면, 이 번역중의 하나가―그 번역자는 알 수 없으나―첫 세기 말엽 전에 우세하게 되어 교회 안에서 정식 권위를 갖게 되었다。 교회는 이 번역을 마테오 복음이라 부름으로써, 그의 아리메아 원문과 본질적으로 동일함을 긍정하였다。 따라서 번역자가 어느 정도, 특히 이야기 풀이에 있어 말구 복음을 이용하였다고 하여도 무방하며, 『번역에 있어 어려운 표현을 몇몇 삽화적 구절과 함께 말구에게서 빌렸더라도 무방하다』(드 그랑매송)。 이 두 복음의 종속 관계를 자세히 규정하기는 곤란한 일이라 할지라도, 결국 번역자는 원문의 특징인 교의적, 문장적 단일성을 보존할 줄 알았다。
아라메아말로 저술된 만큼, 확실히 예루살렘이 멸망된 七十년 이전에―十여 년 전으로 올려도 틀리지 않을 것이나―빨레스띠나에 거주하는 자들을 위하여 저술된 것이다。 이것은 작품에 사용된 언어에서도 결론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뿐 아니라 이레네오, 오리제네스, 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