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선전원수책 (1948년 제6호).pdf/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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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하여 공부한다 해방후 군내농민들의 향상된 물질생활의 실례를들면 해방후 신축된 기와집수가一九○호 돌집수二六五호 초가집수一、三七四호이며 一○、二四九농호 즉 五○%가 전기화 되었는바 一九四六년도부터 一九四七년도까지 一년간에 전기화한 농호가七、五六五호에 달한다 군내의 문화선전 시설로는 二三七개소의 민주선전실 一개소의 도서관 十五개소의 도서실이 설치되어 농민들은 여유시간을 리용하여 자기들의 문화수준을 향상시키고있다 또 종전에는 군내六개면에 이와같은 례는 평남강서군 청산리에서도 볼수있는 것이다。

토지개혁전에 이마을에는 전문대학생은 한사람도없었고 중학생이一명 소학생이二十七명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지금 이마을에는 대학생一명 초급중학생이二十二명 고급중학생이十三명 인민학교생도가 백十一명에 달하고있으며 一一一호의 농가는 전부가다―전등불을 켜고있다 토지개혁후에 기와집二十四호 초가집四호 함석집三호가 신축되었고 해방전에 소가 十七두바께없었는데 지금에와서는 三十三두로 늘었다。

작년도 동기에는 문맹자가 백十七명이있었는데 三월에실시한 국가시험에十三명을 내놓고서는 전부합격하였다。

또 농민생활이 향상된 실례를 개별적인 농호에서 보기로하자 전화시설이 없던곳에 전화를 시설하여 공공생활에 편익을 주고있다。

당정면 후장교리에 거주하는 리용기농민은 과거일제시대에 소작농으로 이른아침부터 어둔 밤까지 등이굽도록 논 밭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