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하였다. 또한 『창조』 『폐허』 등에 신작시를 발표하여 신시 운동에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였다. 한편, 에스페란토어를 연구하여 많은 논문을 발표하였으며 그에게 영향을 받은 김소월을 문단에 소개하였다. 6·25전쟁 중 납북되었다. 저서로 『해파리의 노래』 『물망초』 등이 있으며, 번역서로 『오뇌의 무도』 『야광주』 등이 있다.
김연준金連俊(1914~ )작곡가·교육자. 함경북도 명천에서 태어났다. 연희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1960년 연세대학교에서 명예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후 캐나다 윈저 대학에서 명예법학박사, 미국 서던일리노이 대학에서 명예문학박사, 프랑스 루앙 대학에서 명예음악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양대학교 총장, 대한일보 사장, 대한 체육연맹 회장을 역임하는 등 여러 방면에서 활동하였으며, 현재 한양대학교 재단 이사장으로 있다. 그동안 국민훈장 모란장, 미국 하원 공로패, 이탈리아 공로 훈장 등을 받았다. 저서에 『백남문집』 『사랑의 실천』, 작곡집에 『김연준 가곡 1,500곡집』 『성가곡집』 등이 있다.
김영랑 시비
김영랑金永郎(1902~1950)시인. 본명은 김윤식이며, 전남 강진에서 출생하였다. 휘문고등보통학교를 마친 후 일본 도쿄 아오야마 학원에서 공부하였다. 1930년 박용철·정지용과 함께 『시문학』을 발간하였으며, 1936년 『영랑시집』을 출간하였다.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서정 시인이며 「모란이 피기까지는」은 그의 대표작이다. 광복 후 정치적인 혼란에 대해 비관하여 「대체 내 노래는 어디로 갔느냐」 「한줌 흙」 등을 통해 민족주의적인 입장에서 정치적 의미가 있는 시를 썼다. 공보처 출판국장이 되었으나, 6·25전쟁 중 포탄 파편으로 죽었다. 시집으로 『영랑시집』 『영랑시선』 등이 있다.
김영량의 생가
김영삼
김영삼金泳三(1927~ )정치가·제14대 대통령. 경남 거제에서 출생하였다. 경남중학교, 서울대 문리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군 복무 후 장택상 국회 부의장의 비서관으로 발탁됨으로써 정치가의 길로 들어섰다. 1954년 고향인 거제에서 여당인 자유당 후보로 제3대 민의원 선거에 출마,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그 해 12월, 자유당 정부가 대통령 3선을 위한 개헌을 추진하자 그에 반대하여 탈당하였고, 1955년에 민주당 창당 발기인으로 참가함으로써 야당 생활을 시작했으며, 35년 간의 야당 생활을 통해 김대중씨와 함께 반독재·민주화 투쟁을 주도해 왔다. 1990년에는 3당 통합의 결단을 내려 민자당의 제2인자가 되었으며, 제14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대통령에 취임한 후, '신한국 창조'의 기치 아래, 수십 년간 쌓여 온 부정과 부패를 척결하는 등 개혁 정치를 폈으며, 역대 정부가 실시를 미루어 오던 금융실명제를 단행하였다.
김영욱金永旭(1948~ )세계적인 바이올린 연주자. 서울 출생. 4세부터 피아노를 치다가 9세에 바이올린을 시작했다. 1960년 연주회를 위해 우리나라를 찾았던 피아노 연주자 루돌프 제르킨은 그를 미국에 있는 커티스 음악학교에 입학하게 했다. 1965년 메리 위던 국제콩쿠르에서 최고상을 받은 것을 계기로 레너드 번스타인,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등의 지휘자가 이끄는 관현악단과 협연을 하면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현재는 독주자로서의 활동 외에도 독일의 데트몰트 국립음악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과 요요 마, 엠마누엘 엑스와 더불어 실내악 연주 활동을 하는 데에 힘을 쏟고 있다.
김옥균
김옥균金玉均(1851~1894)조선 말기의 정치가·혁명가. 자는 백온, 호는 고우, 본관은 안동이다. 1872년 문과에 급제한 후, 1881년 일본을 시찰하였다. 이듬해 일어난 임오군란을 수습하기 위해 박영효와 함께 일본을 다녀온 후 개혁의 필요를 절실히 느꼈다. 홍영식·서광범 등과 함께 개화 독립당을 조직하여 민씨 정권을 타도하려 하였으며, 1884년 갑신정변을 일으킨 후, 사대당의 중심 인물을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했으나, 청의 군대 출동으로 3일 만에 실패하여 일본 공사와 함께 일본에 망명하였다. 그 후 10년 간 일본 각지를 방랑하다가 1890년 수구당에 매수된 홍종우에 의해 상하이로 유인된 후 암살당했다. 그의 시체는 본국으로 옮겨져 양화진에서 능지처참되었다. 1894년, 갑오경장으로 개화당 내각이 조직되자, 이듬해 김홍집과 서광범의 상소로 반역죄가 풀렸다. 저서로 『기화근사』 『치도약론』 『갑신일록』 등이 있다.
김옥길金玉吉(1921~1990)여류 교육가. 평남 맹산에서 태어나 이화여전을 마치고, 모교에서 근무하다 미국 웨슬리언 대학으로 유학을 갔다. 1952년 이화여대 조교수·부교수·문과 학무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