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로
김병로金炳魯(1887~1964)법률가·초대 대법원장. 호는 가인, 본관은 울산으로 전북 순창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는 한학을 공부하고 18세 때는 서양 선교사로부터 수학과 서양사를 배웠다. 경술국치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서 메이지 대학 및 일본 대학 법과를 다녔으며, 재학중 우리 유학생들과 '금연회'를 조직하여 가난한 유학생들에게 장학금을 보조해 주었다. 귀국 후 경성법전과 보성전문 등에서 법학을 강의하였다. 1945년 광복이 되자, 한민당 창당에 앞장섰으며, 1948년 초대 대법원장이 되었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 공로 훈장 단장이 수여되었다.
김병연의 시비
김병연金炳淵(1807~1863)조선의 풍자 시인·방랑 시인. 속칭은 김삿갓, 자는 성심, 호는 난고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 김익순이 홍경래의 난 때 선천 부사로 있다가 항복한 것을 수치로 여겨, 일생을 삿갓으로 얼굴을 가리고 단장을 벗을 삼아 각지로 방랑을 했다. 도처에서 독특한 풍자와 해학 등으로 퇴폐하여 가는 세상을 개탄, 저주 또는 비웃었다. 그의 수많은 한문시가 구전되고 있다.
김병익金炳翼(1938~ )평론가. 경북 상주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과 졸업. 1969년 평론 「60년대 문학의 위치」 「정치와 소설」 「시작의 의미」 등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비평활동을 전개했다. 그는 C. R. 밀스의 사회학적 상상력을 배경으로 정치와 사회를 문학 속에 수용한다는 기본 입장에서 지성적인 사회비판과 문학성을 균형있게 조화시키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저서에 김주연(金柱演) 등과 공저인 『현대한국문학』을 비롯하여 『동아일보』에 연재되어 주목을 끌었던 『한국문단사』와 『지성과 문학』 등이 있다. 1983년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김병조金秉祚(1876~1947)독립운동가·목사.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 호는 일재이며 평북 정주에서 출생하였다. 1915년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가 되었다. 3·1 운동 때 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고, 중국으로 망명하여 임시정부의 상임이사·임시 의정원 평안도 대표·사료 편찬위원·상하이 거류민단 의사회 의원 등을 역임하였다. 1924년, 만주 지안현에서 『대동역사』 『독립혈사』를 간행하였으며 학교를 세워 청소년을 양성하는 한편 『한족신문』을 발행하여 독립사상을 고취시켰다. 8·15광복 후에는 조만식과 함께 조선민주당을 창설하여 반공운동에 투신했으며, 비밀 결사단인 광복단을 조직하여 지하운동을 하던 중 붙잡혀 평양에서 감옥살이를 하다가 시베리아로 유배당한 뒤 죽었다.
김보당金甫當(?~1173)고려의 장군. 무신의 난으로 정권을 잡은 정중부·이의방 등을 몰아내고 전왕 의종을 다시 세우고자, 이경직·장순석 등과 모의하여 군사를 일으켰다. 그러나 정중부가 보낸 이의민·박존위에게 경주에서 패하고 모두 잡혀 죽었다. 김보당이 죽기 전에 "문신으로서 이 모의에 가담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말함으로써 많은 문신들이 죽임을 당하였다.
김복진金復鎭(1902~1941)조각가. 충청북도 충주 출신. 1917년 배재중학을 중퇴, 도일해 1919년 도쿄미술학교에 입학했다. 1924년 데이코쿠미전에 작품 「나상(裸像)」을 출품, 입선하였고 동년 졸업과 동시에 귀국하여 모교인 배재중학교원이 되었다. 한편 토월미술연구회, 청년학과(YMCA) 미술과, 경성 여자상업학교의 미술강사 등으로 후진 양성에 힘썼다. 1925년 제4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작품 「3년 전」을 출품, 3등상을 수상한 것을 필두로 제5회 및 제16회 선전에서는 특선, 제15회 선전에 입선되었다. 1930년 『중앙일보』 학예부장을 지내는 한편 '조선미술원'을 창립했고 1936년 법주사 대불을 착공하여 미완인 채 서울에서 사망했다. 옥고를 치르는 등 불우한 생활 가운데서도 한국의 근대조각을 개척하는 데에 크게 공헌한 선각자이며 연극과 평론활동에도 종사한 다재다능한 조각가이다. 작품 경향은 사실적인 표현으로 일관하고 있다. 작품으로는 「소년」 「3년 전」 「여인」 「나부」 「위리암선생」 「법주사 석가여래입상」 「다산 선생상」 「소년」 「백화」 등이 있다.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사기』
김부식金富軾(1075~1151)고려의 정치가. 자는 입지, 호는 뇌천, 본관은 경주이다. 숙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예부시랑·어사 대부·평장사가 되었다. 1134년, 묘청이 주장하는 서경 천도 운동에 반대하였으며, 이듬해 묘청의 난이 일어나자 평서 원수가 되어 난을 평정하였다. 1145년 인종의 명을 받아 『삼국사기』를 편찬하였는데, 이것은 삼국과 통일 신라 시대를 통한 가장 오래 된 정사(正史)인 동시에 승 일연이 쓴 『삼국유사』와 함께 한국 최고의 역사책으로 알려지고 있다. 50권 10책으로 되어 있으며, 중국 역사책을 참고·인용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