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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선 물리학자로 일컬어졌다. 저서에 『자연 과학 개론』 『원자의 세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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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율 장군의 행주 대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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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율 동상

권 율權慄(1537~1599)임진왜란 때의 장군. 자는 언신, 호는 만취당, 시호는 충장, 본관은 안동이다. 1582년(선조 15)에 과거에 급제하여 예조 좌랑·호조 정랑의 벼슬을 지냈고, 임진왜란 때에는 광주 목사로 군병을 모집하였다. 용인 싸움에서 패하고는 다시 광주로 가서 천여 명의 군병을 모집하여 남원 싸움에서 적을 대파하고 전라도 순찰사가 되었다. 전주에서 병사 만여 명을 이끌고 수원 독산에 진을 치고 적의 공격을 막았다. 왕이 이 소식을 듣고 어검을 하사하여 군율을 정리하게 하였다. 행주산성에서는 왜군 3만을 무찔러 큰 전공을 세우고 그 공으로 도원수가 되었으나, 얼마 후 도망하는 병사를 직결 처분한 죄로 해직되었다. 1596년 충청도 관찰사에 부임하였고, 다시 도원수가 되어 어마를 하사받았다. 죽은 후, 전공을 인정받아 영의정에 추증되고 영가 부원군의 추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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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철신의 필적

권철신權哲身(1736~1801)조선의 천주교 순교자. 이승훈의 전도를 받아 천주교에 입교한 후, 여주에서 이 벽·정약전·정약용 등의 남인 학자들과 서학 교리 연구회를 열어 신앙생활을 하였다.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 이승훈·이가환·정약종, 중국인 신부 주문모 등과 함께 체포되어 사형을 당하였다.

권 해(1639~1704)조선의 문신. 자는 개옥, 호는 남곡, 본관은 안동이다. 현종 때 정시 문과에 급제하여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679년 허 목이 영의정 허 적의 아들 견의 불법한 행위를 공격한 사건으로 인하여 청남당과 탁남당 사이에 당파 싸움이 벌어지자, 도승지 민 암에 의해 청남당인 허 목의 당으로 몰려 유배되었으며, 그 후 다시 관직에 올라 호조참의에 이르렀으나 갑술옥사 때 다시 유배되었다. 예안에서 여생을 마쳤다. 그는 문장과 글씨에 뛰어났으며, 저서로 『노론주해』 『남곡집』 등이 있다.

균여均如(923~973)고려의 명승. 성은 변씨이며 본관은 황주이다. 15세 때 부흥사 식현 화상에게서 학문을 닦았다. 그는 영통사에서 수도에 힘쓰는 한편, 불교 보급에 노력하여 「보현십종원생가」라는 11수의 향가를 지었다. 불교계의 종파 통합에도 힘을 기울였으며, 남악파와 북악파의 통합을 위해 노력하였다. 광종 때에는 시관이 되어 유능한 승려들을 많이 선발하였다. 963년 왕이 그를 위해 세워준 귀법사에서 지내다가 사망하였다. 저서로 『오십요 문답기』 『공목장기』 등이 있다.

근구수왕近仇首王(?~384)백제의 제14대 왕(재위 375~384). 근초고왕의 맏아들로 고구려를 여러 차례 공격하였으며 동진에 사신을 파견하였으나 풍랑을 만나 오지 못하였다. 또 일본과도 국교를 맺어 중국의 문물을 전해 주었다.

근초고왕近肖古王(?~375)백제의 제13대 왕(재위 346~375). 비류왕의 둘째 아들로 고구려의 고국원왕이 쳐들어와서 약탈을 하자 태자를 보내어 이를 격파하였다. 다시 태자와 함께 3만의 병사로 고구려에 침입하여 평양성을 공격하고 고국원왕을 전사하게 하였다. 도읍을 한산으로 옮겨 한성이라 하였다. 또한 진에 사신을 파견하여 조공하게 하였으며, 마한의 여러 부족 국가들을 통일하는 등 영토 확장에 주력하였다. 이 때부터 백제의 왕권은 점차로 전제화되어 부족연맹의 세력은 억제되고 부자 상속에 의한 왕위 계승이 시작된 것으로 추정한다. 박사 고흥에게 『서기』를 편찬하게 하였으나, 전하지는 않는다.

금수현(1919~1992)작곡가. 호는 낙초(洛初). 경상남도 김해 출생. 1940년 일본 도쿄 음악학교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동래여자고등학교, 경남여자고등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면서 작곡 활동을 하였으며, 이때 「그네」를 작곡하였다. 56년 문교부(지금의 교육부) 편수관이 되어 음악 교과서를 만드는 데 힘썼다. 65년 영국 필하모니 관현악단 이사장을 지냈으며, 월간지 『음악』을 창간하였다. 그 후 교육부 국정교과서 편찬위원, 숙명 여자대학교 강사가 되었으며, 여러 음악 관련 단체에서 활동하였다. 저서로 『표준 음악 사전』, 수필집 『음악의 문』 등이 있다.

금와金蛙(蝸)동부여의 왕. 고대 난생 설화 중의 인물. 늙도록 자식이 없어 기도하던 부여 왕 해부루에게 어느 날 곤연 못가의 큰 돌 밑에서 온몸이 금빛으로 빛나고 개구리 모양을 한 옥동자가 발견되었다. 그는 곧 해부루의 태자가 되었으며, 해부루가 죽은 뒤 왕이 되었다. 뒤에 태백산 남쪽 우발수에서 하백의 딸 유화를 만나 데려다가 깊숙한 방에 가두었더니 주몽을 낳았다고 한다.

기대승奇大升(1527~1572)조선 중기의 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