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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그를 추모하기 위하여 충현사라는 사당을 세웠다. 저서로 「망우당집」이 있으며, 그를 주인공으로 한 「곽재우전」이라는 군담소설이 있으나, 작자나 연대는 알 수가 없다.

관륵觀勒백제의 고승. 무왕 때(602년) 일본에 건너가 천문과 지리에 관한 많은 책을 전하고, 백제의 불교를 전파하였다. 쇼토쿠 태자에게도 불경을 가르쳤으며 일본 초기 불교에 큰 공헌을 하였다. 삼론(三論)에 관한 연구가 깊었다.

관창官昌(645~660)신라 화랑의 한 사람. 품일 장군의 아들로 태종 무열왕 때 김유신을 따라 황산벌 싸움에 나아가 선봉으로서 계백 장군과 대전하다가 생포되었다. 계백은 나이 어린 관창의 용기에 감동되어 살려 보냈다. 관창은 "이기지 못하면 절대 살아 돌아오지 말라"는 아버지의 명으로 다시 백제 진영으로 쳐들어가 싸우다가 목이 잘리어 말 안장에 묶여 돌아왔다. 이를 본 신라의 군사들은 용감히 싸워 마침내 이겼다. 왕은 관창에게 급찬 벼슬을 내리고 후하게 장례를 지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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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 지안현 룽커투에 있는 광개토 대왕릉. 일명 장군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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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대왕

광개토 대왕廣開土大王(374~412)고구려의 제19대 왕(재위 391~412). 고국양왕의 아들로 그가 살아 있을 때는 영락 대왕이라 불리었다. 그는 연과 싸우고 동시에 백제를 쳐서 신라를 구하였으며, 일본을 격파하고 세력을 넓혔다. 404년 일본과 내통한 백제가 신라를 다시 공격하자, 신라의 요청으로 이를 물리쳤다. 당시 만주 일대를 완전히 장악하고 한강 이북의 땅을 통합하여 고구려의 전성시대를 이루었다. 고구려의 가장 위대한 왕으로서는 물론 우리 민족의 영웅으로서도 역사에 길이 빛날 것이다. 만주 지안현 왕릉 앞에 돌로 된 거대한 비석이 있는데, 이 비석에 광개토 대왕의 생애와 업적이 기록되어 있다. 크기는 높이가 약 627.5cm이며 넓이는 제일 넓은 곳이 195cm, 좁은 곳이 138cm로서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큰 비석이다.

광종光宗(925~975)고려의 제4대 왕(재위 949~975). 태조의 셋째 아들로 정종의 동생이다. 연호를 광덕이라 하였다가 다시 후주의 연호를 사용하였다. 권신·부호의 세력을 누르기 위해 근친 결혼을 장려하고 외척의 폐단을 없애려 하였다. 후주에서 귀화한 쌍기의 건의를 받아들여 처음으로 과거제도를 실시하였다. 이 밖에도 관리의 복제를 정하고 개경을 황도로 개칭하였으며, 서경을 서도라 하였다. 또한 국토 개척에도 주력하는 등, 왕권 확립과 국력 증강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광해군光海君(1575~1641)조선 제15대 왕(재위 1608~1623). 선조의 둘째 아들로 후궁 공빈 김씨의 소생이다. 선조에게 적자가 없어 임진왜란 당시 세자로 책봉되었으나, 왕비인 인목 대비가 영창 대군을 낳게 되어 한때는 왕위를 이을 가망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선조가 갑자기 죽자, 즉위하여 왜란 때 없어진 사고(史庫)를 정비하였으며, 『선조실록』의 간행 외에 국방에 주력하였으나, 당쟁에 휘말려 많은 실정을 하였다. 형제인 임해군과 영창 대군을 죽이고 인목 대비의 아버지인 연흥 부원군을 살해하였으며 인목 대비를 서궁에 감금하였다. 인조반정으로 강화도로 귀양갔다가 다시 제주도로 쫓겨가 거기서 죽임을 당했다. 15년 동안 왕위에 있으면서 문화 사업에도 힘을 기울여 『신증 동국여지승람』을 편찬하였으며 경덕궁·인경궁 등을 세우는 등 업적이 많았다. 신세를 비관하여 읊은 시 한 수가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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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의 궁예에 관한 기록

구상具常(1919~ ) 시인. 본명 상준(常浚). 함남 문천 출생. 일본 니혼대학 종교과 졸업. 1946년 원산 문학가동맹의 동인시집 『응향(凝香)』에 「길」 「여명도(黎明圖)」 「밤」 등을 발표하여 문단에 데뷔했다. 1947년 월남, 서울에서 「백민(白民)」 등에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1956년 6·25전쟁을 제재로 하여 쓴 시집 『초토(焦土)의 시』로 1957년 서울시문화상을 받기도 했다. 초기 그의 시의 저변에는 북한 공산치하의 비인간적 현실을 극복하고 상승하려는 동경(憧憬)과 히구(希求)를 볼 수 있었는데, 그는 인간과 세계의 비극적 심부에 있는 어둠·절망 등과 맞서는 카톨릭시인이기도 하다. 시집으로는 『구상(具常)』 『초토(焦土)의 시』 『까마귀』 『구상연작시집』 등이 있으며, 그 밖에 평론집과 수필집 『침언부어(沈言浮語)』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