樂初作。王垂涕而謂群臣曰。昔我聖考誠心民事。故使愛子東聘於倭。不見而崩。又朕即位已來。鄰兵甚熾。戰爭不息。句麗獨有結親之言。朕信其言。以其親弟聘於句麗。句麗亦留而不送。朕雖處富貴。而未嘗一日暫忘而不哭。若得見二弟。共謝於先主之廟。則能報恩於國人。誰能成其謀策。時百官咸奏曰。此事固非易也。必有智勇方可。臣等以為歃羅郡太。守堤上可也。於是王召問焉。堤上再拜對曰。臣聞主憂臣辱。主辱臣死。若論難易而後行。謂之不忠。圖死生而後動。謂之無勇。臣雖不肖。願受命行矣。王甚嘉之。分觴而飲。握手而別。堤上簾 |
음악이 울려퍼지자 왕은 눈물을 흘리면서 여러 신하들에게 말했다. “옛날 우리 아버님께서는 성심껏 백성의 일을 생각하신 까닭에 사랑하는 아들을 동쪽 멀리 왜국(倭國)까지 보내셨다가 마침내 다시 만나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또 내가 왕위(王位)에 오른 뒤로 이웃 나라의 군사가 몹시 강성(强盛)하여 전쟁이 그칠 사이가 없었다. 그런데 유독 고구려만이 화친하자는 말이 있어서 나는 그 말을 믿고 아우를 고구려에 보냈던 바, 고구려에서도 또한 억류해 두고 돌려 보내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내 아무리 부귀(富貴)를 누린다 해도 일찍이 하루라도 이 일을 잊고 울지 않는 날이 없었다. 만일 이 두 아우를 만나 보고 함께 아버님 사당에 뵙게 된다면 온 나라 사람에게 은혜를 갚겠다. 누가 능히 이 계교를 이룰 수 있겠는가.” 이 말을 듣자 백관(百官)이 입을 모아 아뢰었다. “이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반드시 지혜와 용맹이 겸한 사람이라야만 될 것입니다. 신 등의 생각으로는 삽라군(歃羅郡) 태수(太守) 제상(堤上)이 가할까 합니다.” 이에 왕은 제상을 불러 물었다. 제상은 두 번 절하고 대답했다. “신이 듣기로는, 임금에게 근심이 있으면 신하가 욕을 당하며 임금이 욕을 당하면 신하는 죽는다고 합니다. 만일 일의 어렵고 쉬운 것을 따져서 행한다면 이는 충성스럽지 못한 것이옵고 또 죽고 사는 것을 생각한 뒤에 움직인다면 이는 용맹이 없는 것입니다. 신이 비록 불초(不肖)하오나 왕의 명령을 받아 행하기를 원합니다.” 왕은 매우 가상히 여겨 술잔을 나누어 마시고 손을 잡아 작별해 보냈다. 제상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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