言稱之自後爲王者之尊稱時人爭賀曰今天子已降冝覔有徳女君配之 |
그의 자칭에 따라 이렇게 불렀으니 그때부터 임금의 존칭으로 되었다.이라 하니 당시 사람들이 다투어 축하하여 말하기를 “지금 천자가 이미 이 땅에 내려왔으니 마땅히 덕이 있는 여군(女君)을 찾아 배필로 삼아야 한다.”고 하였다. |
是日沙梁里閼英井一作娥利英井邊有雞龍現 而左脅誕生童女一云龍現死 而剖其腹得之 姿容殊麗 然而唇似雞觜 將浴於月城北川 其觜撥落 |
이 날, 사량리(沙梁里) 알영정(閼英井)또는 아리영정(娥利英井)이라고 한다 주변에서 계룡(雞龍)이 나타나서 그 왼쪽 옆구리에서 어린 아이가 태어났다.또는 용이 나타나서 죽고는 그 배를 갈라 그를 얻었다고도 한다 (아이의) 자태와 용모가 뛰어나게 예뻤다. 그런데 입술이 닭 부리를 닮았으므로 월성 북천(月城北川)에서 목욕시키니 그 부리가 떨어져 나갔다. |
因名其川曰撥川。營宮室於南山西麓今昌林寺奉養二聖兒。男以卵生卵如瓠。 |
그러므로 그 개울의 이름도 발천(撥川)이라고 하였다. 궁실을 남산 서쪽 기슭지금의 창림사(昌林寺)에 짓고는 두 신성한 아이를 모시고 길렀다. 사내는 박〔瓠〕과 같이 생긴 알에서 나왔고, |
鄉人以瓠為朴。故因姓朴。女以所出井名。名之二聖。年至十三歲。以五鳳元年甲子。男立為王。仍以女為后。國號徐羅伐。又徐伐今俗訓京字云徐伐。以此故也或云斯羅。又斯盧。初王生於雞井。故或云雞林國。以其雞龍現瑞也。一說。脫解王時得金閼智。而雞鳴於林中。乃改國號為雞林。後世遂 |
향인들은 박을 박(朴)이라 이르므로, 그 성을 박으로 하였다. 계집은 그 아이가 나온 우물이름으로써 두 성스러운 이의 이름을 지었다. 나이가 열세 살 (오봉(五鳳) 원년 갑자년)에 이르자, 사내아이는 왕위에 오르고 계집아이는 왕후로 삼았다. 국호를 서라벌 또는 서벌 지금 세속에서 경(京)자의 뜻을 서벌이라고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또는 사라(斯羅), 사로(斯盧)라 하였다. 처음에 왕이 계정(雞井)에서 났으므로 또는 계림국(雞林國)이라고도 하였다. 이는 계룡이 상서로움을 나타났기 때문이다. 일설에는, 탈해왕(脫解王) 시기에 김알지(金閼智)를 얻을 때에 숲 속에서 닭이 울었으므로 국호를 계림(雞林)으로 고쳤다 한다. 후세에는 |
페이지:三國遺事 卷第一 1512年 奎章閣本.pdf/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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