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도강록: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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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개울이 크게 넘쳐 건널 수 없기에 머무를 수 밖에 없었다. 정사는 내원과 주주부에게 물을 보러 다녀오라 명하였고 나도 따라 나섰다. 몇 리 가지 않아 크게 잠긴 곳이 나왔고 원래 있던 물가는 보이지 않았다. 사람을 시켜 물에 들어가 깊이를 재어 보게 하니 열 걸음을 못 가서 어깨가 물에 잠긴다. 돌아와 물의 상황을 보고하니 정사는 근심하면서 역관과 각방 비장을 모두 불러 물을 건널 방법을 마련하라고 지시하였다. 부사와 서장도 모임에 참석하였고 부사는 "문짝과 수레를 여럿 빌려 뗏목을 만들어 건너면 어떻겠습니까?" 하였고 주주부는 "그것 참 좋은 계책입니다." 하였다. 수석 역관이 "문짝과 수레는 여럿 구하기 쉽지 않습니다. 이곳에 집 짓는 곳이 있어서 지금 십여 간을 지을 재목을 빌려 쓸 수 있지만 이걸 어떻게 묶을 수 있을 지 걱정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여럿의 의견이 분분하길래 나는 "뗏목을 짤 것이야 있습니까? 제가 보기에 거룻배를 두어 척을 삿대로 연결하여 묶으면 될 것 같은데, 모자람이한가지 있겠군요흠이 있군요."하고 말하였다. 주주부가 "어떤 것이흠이 모자라다는있다는 말씀이신지요?"하고 물으니 나는 "그저 사공이 (삿대가 없어 배를 손으로 저어야 할 판이라) 손이 모자랄 듯 하네."하고 답하였다. 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모두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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主人麁鹵, 目不識丁, 而丌上猶有楊升菴集, 四聲猿 有尺餘正藍瓷甁, 斜揷趙南星鐵如意, 臘茶色小香爐, 雲間胡文明製椅卓屛鄣, 俱有雅致, 不似窮邊村野氣 余問, 「爾家計粗足否。」對曰, 終歲勤苦, 未免飢寒 若非貴國使行時, 都沒了生涯。」 有男女幾個。」, 只有一盜, 尙未招婿。」 余問, 「何謂一盜。」, 盜不過五女之門, 豈不是家之蟊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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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은 얼굴이 얽었고 낫 놓고 기억 자도 몰랐지만 책상 위에 양신의 《승암집》, (서위의) 《사성원》이 놓여 있었다. 한 자 남짓한 푸른색 도자기 병이며 비스듬히 꽂은 조남성이 썼다는 철여의며 연두색 작은 향로며 중국 강남의 운간 지역의 호문명이 만든 탁자며 병풍이 아담하고도 우아한 운치를 뽐내어 변두리 시골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내가 "살림이 부족하진 않으신 듯 하오"하고 물으니 "평생 고생하다 말년에 가난을 면했습니다. 귀국의 사신 행차 때만 아니라면 이렇게 차리고 살지는 않습니다."하고 대답한다. "자녀는 몇이나 되시오?" 하고 물으니 "그저 도둑 하나가 있는데 아직 사위를 보지 못하였소." 한다. "어찌 도적이라 하시오?"하고 내가 묻자 "도적도 딸 다섯이 있는 집 문은 넘지 않는다고 하니 어찌 집안의 도적이 아니겠습니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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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丌(기): 책상.
* 楊升菴集(양승암집): 명나라 시기 유학자 양신(楊愼)이 쓴 문집 《승암집》.
* 四聲猿(사성원): 명나라 시기 작가 서위가 쓴 희곡집
* 趙南星(조남성): 명나라 말 [[:w:동림당|동림당]]에 속하였던 정치인.
* 鐵如意(철여의): 쇠로 만은 등 긁개.
* 正藍瓷甁(정람자병): 청화백자를 만드는 회회청을 사용하여 빚은 자기로 만든 병.
* 臘茶色(납차색): 어린 찻잎의 색. 연두색.
* 雅致(아치): 아담하고 우아한 운치.
* 胡文明(호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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午後出門 閒行散悶 薥黍田中 急響了一聲鳥銃 主人忙出門看 那田中跳出一個漢子 一手把銃 一手曳猪後脚 猛視店主 怒道“何故放這牲口入田中” 店主面帶惶愧 遜謝不已 其人血淋淋拖猪而去 店主佇立悵然 再三惋歎 余問“那漢所獲誰家牧的” 店主曰 “俺家牧的” 余問“雖然 這畜逸入他人田中 不曾傷害了一柄薥黍 柰何枉殺了這個牲口 爾們應須追徵猪價麽” 店主曰 “那敢追徵 不謹護牢 是我之不是處” 盖康煕甚重稼穡制 牛馬踐穀者倍徵 故放者杖六十 羊豕入田中 田主登時捕獲 放牧者 不敢認主 但不得遮車道 阻泥則引出田間 故田主常常治道以護田云 村邊有二窰 一恰裁燒畢 塗泥竈門 擔水數十桶 連灌窰頂 窰頂略坎 受水不溢 窰身方爛 得水卽乾 似當注水 不焦爲候耳 一窰先已燒冷 方取甓出窰 大約窰制 與我東之窰判異 先言我窰之誤 然後窰制可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