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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문의 모습과 고조선 고구려의 옛 영토에 대한 생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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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十八日乙亥 (朝霧晩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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愚以爲箕氏初居永廣之間, 後爲燕將秦開所逐, 失地二千里 漸東益徙, 如中國晉宋之南渡, 所止皆稱平壤 今我大同江上平壤 卽其一也 浿水亦類此, 高勾麗封域時有贏縮, 則浿水之名, 亦隨而遷徙, 如中國南北朝時, 州郡之號互相僑置 然而以今平壤爲平壞者, 指大同江曰此浿水也, 指平壤咸鏡兩界間山曰此葢馬大山也 以遼陽爲平壤者, 指蓒芋濼水曰此浿水也, 指葢平縣山曰此葢馬大山也 雖未詳孰是, 然必以今大同江爲浿水者, 自小之論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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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儀鳳二年 以高麗王臧 高勾麗寶藏王高臧 爲遼東州都督 封朝鮮王 遣歸遼東 仍移安東都護府於新城以統之 由是觀之 高氏境土之在遼東者 唐雖得之 不能有而復歸之高氏 則平壤本在遼東 或爲寄名與浿水 時有前郤耳 漢樂浪郡治在遼東者 非今平壤 乃遼陽之平壤 及勝國時 王氏高麗 遼東及渤海一境 盡入契丹 則謹畫慈 鐵兩嶺而守之 並棄先春 鴨綠而不復顧焉 而况以外一步地乎 雖內幷三國 其境土武力 遠不及高氏之强大 後世拘泥之士 戀慕平壤之舊號 徒憑中國之史傳 津津隋唐之舊蹟曰 “此浿水也 此平壤也” 已不勝其逕庭 此城之爲安市爲鳳凰 惡足辨哉
기자 조선의 처음 도읍지는 영평부와 광령현 사이의 어디 쯤 이었다가 후에 연나라 장수 진개에게 쫓겨 2천리 땅을 잃었다. 마치 (외세에 쫓겨) 남쪽으로 수도를 옮긴 중국의 진(晉) 나라나 송나라와 같이 차츰 동쪽으로 옮기면서 세운 도읍을 모두 평양이라 부른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대동강에 있는 평양도 그러한 것 가운데 하나이다. 패수의 위치 역시 이와 같아서 고구려 영토가 넓어지거나 줄어든 시기에 따라 패수라는 이름도 이를 따라 자리를 옮겼을 것으로 마치 중국의 남북조 시대에 각 지방 주와 군의 이름을 서로 겹쳐서 부르던 것과 같다. 이렇게 하여 지금의 평양이 평양이 되었고 대동강을 가리켜 패수라 하게 되었으며 평양에서 함경도 사이의 양쪽 지대를 개마대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요양이 평양이었다고 하면 한우력수를 가리켜 패수라고 불렀을 것이고 개평현의 산을 가리켜 개마대산이라 하였을 것이다. 비록 어디까지 사실이고 어디부터 거짓인 지 알 수 없지만 오직 지금의 대동강만 패수였다고 하는 것은 스스로를 작게 보는 논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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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秦開(진개): [[:w:진개|진개]]는 중국 전국시대 [[연나라]]의 장수로 고조선을 침공하여 많은 땅을 빼앗았다.
* 遷徙(천사): 자리를 옮김.
* 中國南北朝時(중국남북조시): [[:w:남북조 시대|남북조 시대]]는 4세기 말 무렵에서 6세기 말 무렵 중국에서 북방 민족이 지배하던 북조와 한족 국가인 남조의 여러 나라들이 세워지고 멸망하기를 반복하던 시대이다. 이후 수나라가 통일하였다.
* 葢馬大山(개마대산): [[:w:개마고원|개마고원]]
* 蓒芋濼水(한우력수): 요동의 강. 정확히 지금의 어디를 가리키는 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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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儀鳳二年, 以高麗王臧, 高勾麗寶藏王高臧, 爲遼東州都督, 封朝鮮王, 遣歸遼東, 仍移安東都護府於新城以統之 由是觀之, 高氏境土之在遼東者, 唐雖得之, 不能有而復歸之高氏, 則平壤本在遼東, 或爲寄名與浿水, 時有前郤耳 漢樂浪郡治在遼東者, 非今平壤, 乃遼陽之平壤, 及勝國時, 王氏高麗 遼東及渤海一境 盡入契丹 則謹畫慈 鐵兩嶺而守之 並棄先春 鴨綠而不復顧焉 而况以外一步地乎 雖內幷三國 其境土武力 遠不及高氏之强大 後世拘泥之士 戀慕平壤之舊號 徒憑中國之史傳 津津隋唐之舊蹟曰 “此浿水也 此平壤也” 已不勝其逕庭 此城之爲安市爲鳳凰 惡足辨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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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의봉 2년(667년) 고려왕 장, 즉 고구려 보장왕 고장은 (당나라에 복속하여) 요동주도독이 되어 조선왕으로 봉해져 요동으로 돌려보내 지었다가 다시 안동도호부로 옮겨 신성을 거느리게 하였다. 이를 보면 요동의 고구려 영토는 당이 병합하긴 하였으나 유지하지 못하여 고씨에게 돌려 주었으므로 평양은 본래 요동에 있었고 혹은 패수 역시 그러할 것이라 하겠지만 그 시대의 기록과 잘 들어맞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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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숨김|제목 = 낱말풀이}}
* 儀鳳(의봉): [[:w:당 고종|당 고종]]의 아홉 번째 연호. 당 의봉 2년은 677년이다.
* 寶藏王(보장왕): [[:w:보장왕|보장왕]]은 고구려의 마지막 왕이다.
* 遣歸(견귀): 전에 있던 곳으로 돌려보냄.
* 安東都護府(안동도호부): [[:w:안동도호부|안동도호부]]는 당나라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668년 평양에 설치한 군정 기관이다. 신라의 저항을 받아 요동 지방으로 이동한 뒤 2번이나 다시 옮기다가 758년 무렵 폐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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城周不過三里 而甎築數十重 制度雄侈 四隅正方若置斗然 今裁半築 則其高低雖未可測 門上建樓處 設雲梯浮空 駕起工役 雖似浩大 器械便利 運甓輸土 皆機動輪轉 或自上汲引 或自推自行 不一其法 皆事半功倍之術 莫非足法 而非但行忙 難以遍觀 雖終日熟視 非造次可學 良可歎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