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도강록: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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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무지가 드넓고 평탄한데 비록 농사를 짓지 않았으나 곳곳에 땔나무를 배어 내고 대패질을 한 잔해가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소 발굽 자국과 수레 자국이 거침없이 풀 사이를 지난 것을 보니 이미 책문 근처인 것을 알 수 있었고 주민들이 평소에 책문 밖을 나와 돌아다니는 것 역시 확인할 수 있었다. 말을 달려 일곱 여덟 리를 가니 책문 밖에 닿았다. 양이며 돼지가 산을 두를 지경이었고 아침밥 짓는 연기가 푸르게 감겨 오르는데 나무를 갈라 울타리를 쳐 경계를 표시하였다. 과연 (《시경》에 나오는 구절인) '절류번포 광부구구'(折柳樊圃, 狂夫瞿瞿 - "버들 가지를 꺽어 울타리로 삼으니 미친 사람도 두려워 하네"라는 구절과 같이 든든한 울타리)라고 할만 하다.
 
책문은 듬성듬성 나 있는 풀로 덮여 있었는데 널문이 굳게 잠겨있었다. 책문에서 수십 걸음 떨어진 곳에 세 사신을 위한 장막이 세워졌다. 잠시 뒤에 방물이 도착하여 책문 밖 길 위에 쌓았다. 호인 무리가 구경하려고 핵문책문 안에서 줄지어 섰는데 입에 담뱃대를 물지 않은 자가 없었다. 반짝이는 머리에 부채질을 하는데 더러는 흑공단 옷을 입었고 더러는 꽃무늬를 수놓은 명주를 입었으며 나머지는 물을 빼지 않은 삼베 옷이나 모시 옷이었는데 심지어 올이 성긴 삼베 옷인 삼승포를 입거나 산누에 고치에서 뽑은 야견사 옷을 입은 사람들 마저 구경을 나왔다. (저고리 뿐만 아니라) 바지도 이와 같았다. 몸에 지닌 노리개도 너저분하여 더러는 수 놓은 주머니와 서너 개의 패도를 찼는데 모두 쌍으로 짝 지어 꽂은 상아 칼집에 꽂혀 있었다. 담배 쌈지도 우스운 모양이어서 더러는 꽃과 들짐승 날짐승을 수놓은 것이거나 이름난 옛 글 구절을 수놓았다. 통역관이며 마두 무리들이 앞다투어 책문 밖에 서서 서로 악수를 나누었다.
 
은자의 무게를 확인하고 인원을 점검하는데 모여든 호인들이 물었다. "당신들 서울에서 몇 일이나 걸렸으며 오는 길에 내린 비는 피하였소? 집안은 두루 평안하오? (무역할 자금인) 포은은 받아 왔소?" 사람 마다 한 마디씩 하는 것이 한 입에서 나오는 것 같았는데 다투어 묻기를 "한 상공과 안 상공은 함께 오지 않았소?" 한다. 이렇게 묻는 몇 사람은 의주 상인들과 함께 하는 자들로 오랜 세월 연경에서 장사하여 모두 몹시 교활하고 연경에서 일어나는 일을 훤히 알았다. (이들이 부르는) 상공이란 것은 상인들이 서로를 높여 부르는 호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