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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문의 민가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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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十八日乙亥 (朝霧晩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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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 조정진이 와서 보았는데 나와 동갑이다. 나보다 다섯 살 많은 부사의 서장부사 역시 찾아왔다. 정군하고는부사 정원시하고는 만리를 함께 고생하며 가는 정이 생겼다. 검소하고자인을 꾸밈호로 없는쓰는 김자인이김문순이 "이 행차에 나도 정신이 없다 보니 아직 서로 찾아보지 못하였습니다."한다.하고 말하길래, 내가 "다른 나라에 와서야 친분을 쌓게 되었으니 과연 멀리 떨어진 곳의 친구라 하겠습니다." 부사의하였다. 부사와 서장은 크게 웃으며 "누구더러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하는 지 모르겠습니다." 하였다.
 
부사는 나 보다 두 살 위로 내 할아버지와 부사의 할아버지는 동창으로 함께 과거 공부를 하였고 (동창들의 명단을 적은 목록인) 동연록에 함께 실려 있다. 내 할아버지가 서울에서 당상관을 할 때에 부사의 할아버지는 서울에서 시랑으로 있다가 투서 때문에 잘렸다있었다. 서로 옛날에 함께 있던 일을 이야기 나누었다이야기하였다. 나는 그 때 여덟 아홉 살이었는데 곁에 있으니 옛 정이 떠오른다.
 
서장이 흰 석류를 가리키며 "이런 것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한다. 내가 "처음 봅니다."하고 대답하니 서장은 "내가 어릴 적에 집에 이런 석류가 있었는데 그 때는 우리 나라 다른 곳에는 없었습니다. 이 것이 꽃은 화려한데 열매는 달리지 않더라구요."한다.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은 다음 헤어졌다. 압록강을 건넌 날 갈대 밭에서 서로 얼굴을 알아 보았으나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였고 책문 밖에서 보낸 이틀 동안도 노숙을 하느라 또 이야기 나눌 수 없었는데 이제 먼 타국 땅에서 와서야 이처럼 서로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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點心尙遠云, 不敢遲待, 遂忍飢行翫, 初由右邊小門而入。 故不知其家之雄侈若此, 今由前門而出, 則外庭數十百間。 三使帶率都入此家, 而不知着在何處, 非但我行區處綽綽有餘, 來商去旅, 絡繹不絶, 又有車二十餘輛, 闐門而入, 一車所駕馬騾必五六頭, 而不聞喧聲, 深藏若虛。 葢其妥置凡百, 自有規模, 不相妨礙。 觀此外貌, 其他細節 ,不須盡說矣。
 
緩步出門, 繁華富麗。 雖到皇京, 想不更加。 不意中國之若是其盛也。 左右市廛, 連互輝耀, 皆彫牕綺戶, 畵棟朱欄, 碧榜金扁。所居物皆內地奇貨, 邊門僻奧之地, 乃有精鑑雅識也。 又入一宅, 其壯麗更勝於康家, 而其制度大約皆同。 凡室屋之制, 必除地數百步, 長廣相適, 剷剗平正, 可以測土圭安針盤, 然後築臺。 臺皆石址, 或一級或二級三級, 皆甎築而磨石爲甃。 臺上建屋, 皆一字, 更無曲折附麗。 第一屋爲內室, 第二屋爲中堂, 第三屋爲前堂, 第四屋爲外室。 外室前臨大道, 爲店房, 爲市廛。 每堂前, 有左右翼室, 是爲廊廡寮廂。 大約一屋長, 必六楹八楹十楹十二楹, 兩楹之間甚廣, 幾我國平屋二間 未甞隨材短長. 亦不任意闊狹, 必準尺度爲間架 屋皆五梁或七梁, 從地至屋脊, 測其高下, 簷爲居中, 故瓦溝如建瓴 屋左右及後面, 無冗簷, 以甎築墻, 直埋椽頭 盡屋之高, 東西兩墻, 各穿圓牕面南 皆戶正中, 一間爲出入之門, 必前後直對, 屋三重四重 則門爲六重八重, 洞開則自內室門至外室門, 一望貫通, 其直如矢 所謂洞開重門, 我心如此, 以喩其正直也

路逢李同知惠迪 譯官三堂上 李君笑曰, 窮邊邨野, 何足掛眼。」 吾言, 「雖至皇城, 未必勝此。」 李君曰, , 雖有大小奢儉之別, 規模大率相同耳。」 爲室屋, 專靠於甓, 甓者甎也 長一尺, 廣五寸, 比兩甎則正方, 厚二寸 一匡搨成, 忌角缺, 忌楞刓, 忌軆翻, 一甎犯忌, 則全屋之功左矣 是故, 旣一匡印搨, 而猶患參差 必以曲尺見矩, 斤削礪磨, 務令匀齊, 萬甎一影 其築法, 一縱一橫, 自成坎離, 隔以石灰 其薄如紙, 僅取膠貼, 縫痕如線 其和灰之法, 不雜麤沙, 亦忌黏土, 沙太麤則不貼, 土過黏則易坼 故必取黑土之細膩者, 和灰同泥, 其色黛黧, 如新燔之瓦 葢取其性之不黏不沙, 而又取其色質純如也 又雜以檾絲, 細剉如毛, 如我東圬土. 用馬矢同泥, 欲其靭而無龜 又調以桐油濃滑如乳, 欲其膠而無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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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이 나오려면 아직 멀었다고 하는데 기다리고 있기만 할 수가 없어서 허기도 달랠참고 나와 처음 마주치는 오른 편 작은 문을 들어섰다. 이 집이 얼마나 크고 사치스러운지 미처 몰랐다가 지금 문을 나서고 보니 바깥 정원이 수백 간 크기이다. 세 사신이 부하를 이끌고 이 집에 들어 올 때에는사람들은 어디에 이런 곳이 있는 지도 몰랐는데모를 나만정도이다. 우리만 홀로 이곳 저곳을 느긋히 돌아다니는 여유를 부리고부리며 있다.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들어오는 상인이며 떠나가는 나그네가 계속하여 끊이지 않고않는다. 수레 20여 량이 문을 드나드는데 수레 하나를 말이나 노새 대여섯 마리가 끌었으나 장원 깊은 속에서는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지 않아 마치 빈 것처럼 느껴졌다. 갖가지 물건을 적절히 벌려 배치하였는데 규모가 커도 서로 방해가 되지 않는다. 밖의 모습 만으로도 이러하니 기타 자세한 것들은 말로 다 할 수가 없다.
 
천천히 문 밖으로 걸어 나가니 번화하고 수려하다. (변방인 책문이 이런 모습이니) 황성에 도착하면 어떨지 상상도 할 수 없다. 중국중국의 작은 일부의 성대함 만을 보고성대함이 도무지 짐작할 수 없을 지경이다. 길 좌우에 있는 시장의 가게들은 모두 기와를 맞닿으며 밝게 빛나는데 모두 무늬를 새긴 창문을 달고 마룻대를 아름답게 칠하고 붉은 칠을 한 난간을 세웠는데 푸른 판에 금으로 글씨를 쓴 간판을 달았다.
 
가게에 있는 물건은 모두 내지에서 온 상품들로상품들이다. 변문은 벽지이자 오지이기오지인데도 때문에귀감이 될 정밀한만한 거울을것이 귀하게있다 여겼다하겠다. 또 다른 집에 들어가 보니 꾸밈은 강영태의 집보다 화려한데 구조와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부분의 집과 방의 지어진 모습이 수백 걸음 안의 땅에 길이와 넓이를 적절히 맞추어 평탄하고 반듯하게 깍아 다듬었는데 분명 나침반을 이용하여 터를 정하고 축대를 쌓아 올렸다. 축대는 돌을 기반으로 하였고 어떤 것은 1급 또 어떤 것은 2급이나 3급의 벽돌로 쌓은 뒤 갈아낸 돌로 마감을 하여 담장을 쌓았다. 축대 위로 집을 지었는데 모두 일(一) 자 모양으로 따로 덧이어 붙인 부속 건물은 없었다. (제일 안쪽부터) 첫 번째 집은 안채가 되고 두 번째는 중당, 세 번째는 전당, 네 번째는 바깥채이다. 바깥채가 큰 길과 닿아 점방도 차리고 가게도 차린다. 각각의 집 좌우에 곁방이 있어 (부속 건물인) 낭무나 행랑채를 대신한다. 한 집의 길이는 대략 6 영, 8 영, 10 영 또는 12 영인데 두 기둥 사이의 길이인 영은 제법 넓어 우리나라 보통 집의 2 간 정도 되었다. 제목이 길거나 짧다고 임의로 넓거나 좁게 집을 짓지 않고 반드시 정해진 길이에 맞추어 들보를 올렸다. 집의 들보는 다섯 아니면 일곱인데 땅에서 지붕의 수평마루까지 높이를 재서 그 가운데에 처마가 있기 때문에 기와 고랑이 가파르다. 집의 좌우와 뒷면에는 처마가 없고 서까래가 곧장 벽돌담에 묻힌다. 집 동서의 벽이 꼭대기까지 올라가며 둥글게 만든 창문이 남쪽 면에 나있다. 집의 한 가운데 드나드는 문이 있는데 모두 앞뒤가 곧장 마주하고 있어 집이 (겹겹이 담장을 둘러) 세 겹 네 겹이거나 문이 여섯 겹, 여덟 겹이어도 문을 모두 활짝 열어 재치면 안채에서 바깥채까지 한 번에 보일 정도로 곧다. 이른바 "겹겹이 두른 문을 활짝 열어 재치니 내 마음이 이와 같도다"라는 말은 이와 같은 정직함을 비유한 것이다.
 
길에서 (중추부의) 동지인 이혜적을 만났다. 통역관인데 3품 당상관이다. 이군이 웃으며 "궁벽한 시골에서 볼 만한 것이 있습니까?"하고 묻는다. 나는 "황성에 가더라도 이 보다 못할 것 같소."하고 대답하였다. 이군은 "하기사 크고 작고나 사치스럽고 검소하고의 차이는 있지만 모습은 여기나 거기나 거진 같습니다."한다. 집을 모두 벽돌로 짓는데 벽돌은 길이 1 자, 넓이 5 치로 둘을 합치며 정사각형이 되며 두께는 2 치이다. 하나 하나가 모두 같은 모습이기 때문에 각도가 틀어지거나 귀퉁이가 떨어져 나가거나 몸이 뒤틀린 것은 한 장이라도 쓰지 않아야 집 전체를 정교하게 지을 수 있다. 따라서 한 장 마다 치수가 어긋나 들쭉날쭉하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직각자를 써서 검사한 뒤 도장을 찍기 때문에 (규격을 맞추기 위해) 갈고 닦고 하여 가지런히 하기 위해 애써서 벽돌 만 장이 모두 똑같다. 쌓는 법은 하나를 세로로 놓으면 다른 하나는 가로로 놓아 저절로 감괘(☵)와 이괘(☲)의 모양을 이루게 하여 그 사이를 석회로 발라 붙인다. 석회는 종잇장처럼 얇게 겨우 붙을 정도만 바르는데 쌓고 나면 마치 실처럼 보인다. 회를 개는 방법은 거친 모래가 섞이지 않도록 하고 점토도 피하는데 모레가 많으면 접착력이 떨어지고 점토가 지나치면 쉽게 갈라진다. 그래서 꼭 검은 흙에서 가늘고 찰진 것을 골라 석회와 진흙이 반반이 되도록 개서 그 색깔이 마치 눈썹 그리는 먹이나 새로 갖 구워낸 기와 같다. 개어낸 회는 그 성질이 점토도 아니고 모레도 아니며 색상 또한 이와 같아야 한다. 또 어저귀를 털처럼 잘게 잘라 섞는데 우리나라에서 (집 벽에) 흙을 바를 때 말똥을 진흙에 섞어 넣어 질기고 갈라짐이 없게 하려는 것과 같다. 또 유동나무 기름을 마치 젖처럼 짙게 발라 틈이 없게 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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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廊廡(낭무): 큰 집 옆 동서로 딸려 짓는 작은 집.
* 寮廂(뇨상): 행랑채.
* 我國平屋二間(아국평옥이간): 우리나라 보통 집의 2 간. 간은 기둥과 기둥 사이를 뜻하는 단위로 흔히 쓰였다. 민가의 간은 보통 7 - 9 자 즉 약 2.1 미터에서 2.7 미터 정도였다. 가장 단순하게 집을 짓는 경우가 3 간이었기 때문에 조촐한 살림살이를 "초가삼간"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초가삼간은 약 가로 10 미터 세로 2.7 미터 정도의 크기가 된다.
 
* 任意(임의): 제한 없이 마음대로 함.
* 屋脊(옥척): 집의 수평마루.
* 瓦溝(와구): 숫기와와 숫기와 사이에 난 고랑.
* 建瓴(건령): 가파르게 내려오는 물줄기.
* 洞開(동개): 문을 활짝 열어 재치다.
* 同知(동지): [[:w:중추원 (조선)|중추부]]의 종2품 관리.
* 大率(대율): "이러고 저러고 간에" 또는 "여기고 저기고 간에"
* 爲室屋, 專靠於甓, 甓者甎也。(위실옥 전고어벽 벽자전야): "집을 '벽'으로 쌓아 올리는데 '벽'이란 '전'을 말한다." - 벽(甓)과 전(甎)은 모두 벽돌을 뜻한다. 본문 번역에서는 그저 "집을 벽돌로 짓는다"로 옮겼다.
* 寸(촌): 길이의 단위 "치". 약 3.03 센티미터. 10 치가 1 자이다.
* 參差(참치): 치수가 어긋나 들쭉날쭉 함.
* 曲尺(곡척): 직각자.
* 坎離(감리): [[:w:팔괘|팔괘]]의 감괘(☵)와 이괘(☲). 벽돌 쌓인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 檾絲(경사): [[:w:어저귀|어저귀]]. 삼의 일종이다.
* 馬矢(마시): 말똥.
* 無龜(무균): 균열이 없음. 龜는 거북이를 뜻할 때는 귀로 갈라짐을 뜻할 때는 균으로 읽는다.
* 桐油(동유): [[:w:유동나무|유동나무]] 열매에서 얻는 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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