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도강록: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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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에 강영태의 집이 있다. 영태는 23 세로 스스로를 민가라 부르는 한인이다. 민가라 불리는 사람들을 만주족은 기하라고 하였다. 희고 밝은 피부에 잘 생겼는데 양금 연주를 잘했다. "글은 읽었는가?"하고 물으니 "사서를 독송하였지만 아직 '강의'는 배우지 않았습니다." 한다. 그가 말하는 책을 독송하고 강의를 배우는 두 가지 방법은 우리 나라에서 초급 학습자가 배울 때 음과 뜻을 함께 익히는 것과 다르다. 중원의 초급 학습자는 먼저 사서의 구절들을 통째로 암송하고 암송이 익숙해 지면 스승에게 그 뜻을 배우는데 이를 "강의"라고 한다. 설령 평생 동안 강의를 배우지 못하더라도 구절들은 암송하고 있기 때문에 매일 매일 관용어로 사용한다. 세계 각지의 외국어 가운데 한어가 가장 쉬우니 이 또한 유리하다.

영태의 집은 물을 뿌려 청소하여 두었고 다채롭게 치장하여 가지가지 물건들이 자리 잡고 있는데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마루 위의 깔개는 모두 용과 봉황을 그린 모직 담요로 의자며 걸상을 덮었고 이불은 모두 비단이었다. 뜰 가운데 대나무를 잘게 쪼개어 만든 차일을 치고 사방으로 누르스름한 발을 걸어 내렸고, 그 앞으로 석류 대여섯 그루가 늘어서 있었다. 그 가운데 흰색 석류가 만개하였다. 또 다른 나무 한 그루는 잎이 동백처럼 생겼는데 열매는 탱자와 닮았다. 이름을 물으니 무화과라고 한다. 쌍쌍이 꼭지를 나란하게 하여 열매가 달리는데, 꽃 없이 열매를 맺어 그렇게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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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狀來見, 趙鼎鎭, 各叙年甲 長余五歲, 副使繼又來訪 鄭元始, 爲叙萬里同苦之誼 金子仁, 文淳, 爲道,「兄此行, 而我境冗擾, 未及相訪。」 余曰, 定交於他國, 可謂異域親舊。」 副使書狀, 皆大笑曰, 未知誰爲異域也。」 副使長余二歲, 余祖父與副使祖父甞同牕治功令, 有同硏錄 余祖父爲京兆堂上時, 副使祖父以京兆郞投刺 各道舊日同硏事 余時八九歲, 在傍知有舊誼
 
書狀指白石榴曰, 曾見此否。」 余對,「不曾見。」 書狀曰, 吾童子時家有此榴, 國中更無 葢此榴華而不實云。」 略叙閒話, 皆起去 渡江日雖相識面於蘆荻叢中, 未甞叙話, 又兩日柵外, 連幕露宿, 亦未甞晤, 故今以異域相戱者此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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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 조정진이 와서 보았는데 나와 동갑이다. 나보다 다섯 살 많은 부사의 서장 역시 찾아왔다. 정군하고는 만리를 함께 고생하며 가는 정이 생겼다. 검소하고 꾸밈 없는 김자인이 "이 행차에 나도 정신이 없다 보니 아직 서로 찾아보지 못하였습니다."한다. 내가 "다른 나라에 와서야 친분을 쌓게 되었으니 과연 멀리 떨어진 곳의 친구라 하겠습니다." 부사의 서장은 크게 웃으며 "누구더러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하는 지 모르겠습니다." 하였다.
 
부사는 나 보다 두 살 위로 내 할아버지와 부사의 할아버지는 동창으로 함께 과거 공부를 하였고 (동창들의 명단을 적은 목록인) 동연록에 함께 실려 있다. 내 할아버지가 서울에서 당상관을 할 때에 부사의 할아버지는 서울에서 시랑으로 있다가 투서 때문에 잘렸다. 서로 옛날에 함께 한 일을 이야기 나누었다. 나는 그 때 여덟 아홉 살이었는데 곁에 있으니 옛 정이 떠오른다.
 
서장이 흰 석류를 가리키며 "이런 것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한다. 내가 "처음 봅니다."하고 대답하니 서장은 "내가 어릴 적에 집에 이런 석류가 있었는데 그 때는 우리 나라 다른 곳에는 없었습니다. 이 것이 꽃은 화려한데 열매는 달리지 않더라구요."한다.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은 다음 헤어졌다. 압록강을 건넌 날 갈대 밭에서 서로 얼굴을 알아 보았으나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였고 책문 밖에서 보낸 이틀 동안도 노숙을 하느라 또 이야기 나눌 수 없었는데 이제 먼 타국 땅에서 와서야 이처럼 서로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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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숨김|제목 = 낱말풀이}}
* 年甲(연갑): 같은 나이.
* 他國(타국): 다른 나라.
* 異域(이역): 멀리 떨어진 다른 나라의 땅.
* 親舊(친구): 오랜 벗.
* 同牕(동창): 같은 스승에게 배운 사이.
* 功令(공령): 과거 시험을 볼 때 사용하던 문체.
* 同硏錄(동연록): 동창들의 명단을 기록한 책.
* 京兆(경조): 서울.
* 在傍(재방): 곁에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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點心尙遠云 不敢遲待 遂忍飢行翫 初由右邊小門而入 故不知其家之雄侈若此 今由前門而出 則外庭數十百間 三使帶率都入此家 而不知着在何處 非但我行區處綽綽有餘 來商去旅 絡繹不絶 又有車二十餘輛 闐門而入 一車所駕馬騾必五六頭 而不聞喧聲 深藏若虛 葢其妥置凡百 自有規模 不相妨礙 觀此外貌 其他細節 不須盡說矣 緩步出門 繁華富麗 雖到皇京 想不更加 不意中國之若是其盛也 左右市廛 連互輝耀 皆彫牕綺戶 畵棟朱欄 碧榜金扁 所居物皆內地奇貨 邊門僻奧之地 乃有精鑑雅識也 又入一宅 其壯麗更勝於康家 而其制度大約皆同 凡室屋之制 必除地數百步 長廣相適 剷剗平正 可以測土圭安針盤 然後築臺 臺皆石址 或一級或二級三級 皆甎築而磨石爲甃 臺上建屋 皆一字 更無曲折附麗 第一屋爲內室 第二屋爲中堂 第三屋爲前堂 第四屋爲外室 外室前臨大道 爲店房 爲市廛 每堂前 有左右翼室 是爲廊廡寮廂 大約一屋長 必六楹八楹十楹十二楹 兩楹之間甚廣 幾我國平屋二間 未甞隨材短長 亦不任意闊狹 必準尺度爲間架 屋皆五梁或七梁 從地至屋脊 測其高下 簷爲居中 故瓦溝如建瓴 屋左右及後面 無冗簷 以甎築墻 直埋椽頭 盡屋之高 東西兩墻 各穿圓牕面南 皆戶正中 一間爲出入之門 必前後直對 屋三重四重 則門爲六重八重 洞開則自內室門至外室門 一望貫通 其直如矢 所謂‘洞開重門 我心如此’者 以喩其正直也 路逢李同知惠迪 譯官三堂上 李君笑曰 “窮邊邨野 何足掛眼” 吾言“雖至皇城 未必勝此” 李君曰 “然 雖有大小奢儉之別 規模大率相同耳” 爲室屋 專靠於甓 甓者甎也 長一尺 廣五寸 比兩甎則正方 厚二寸 一匡搨成 忌角缺 忌楞刓 忌軆翻 一甎犯忌 則全屋之功左矣 是故 旣一匡印搨 而猶患參差 必以曲尺見矩 斤削礪磨 務令匀齊 萬甎一影 其築法 一縱一橫 自成坎離 隔以石灰 其薄如紙 僅取膠貼 縫痕如線 其和灰之法 不雜麤沙 亦忌黏土 沙太麤則不貼 土過黏則易坼 故必取黑土之細膩者 和灰同泥 其色黛黧 如新燔之瓦 葢取其性之不黏不沙 而又取其色質純如也 又雜以檾絲 細剉如毛 如我東圬土 用馬矢同泥 欲其靭而無龜 又調以桐油濃滑如乳 欲其膠而無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