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도강록: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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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무지가 드넓고 평탄한데 비록 농사를 짓지 않았으나 곳곳에 땔나무를 배어 내고 대패질을 한 잔해가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소 발굽 자국과 수레 자국이 거침없이 풀 사이를 지난 것을 보니 이미 책문 근처인 것을 알 수 있었고 주민들이 평소에 책문 밖을 나와 돌아다니는 것 역시 확인할 수 있었다. 말을 달려 일곱 여덟 리를 가니 책문 밖에 닿았다. 양이며 돼지가 산을 두를 지경이었고 아침밥 짓는 연기가 푸르게 감겨 오르는데 나무를 갈라 울타리를 쳐 경계를 표시하였다. 과연 (《시경》에 나오는 구절인) '절류번포 광부구구'(折柳樊圃, 狂夫瞿瞿 - "버들 가지를 꺽어 울타리로 삼으니 미친 사람도 두려워 하네"라는 구절과 같이 든든한 울타리)라고 할만 하다.

책문은 듬성듬성 나 있는 풀로 덮여 있었는데 널문이 굳게 잠겨있었다. 책문에서 수십 걸음 떨어진 곳에 세 사신을 위한 장막이 세워졌다. 잠시 뒤에 방물이 도착하여 책문 밖 길 위에 쌓았다. 호인 무리가 구경하려고 핵문 안에서 줄지어 섰는데 입에 담뱃대를 물지 않은 자가 없었다. 반짝이는 머리에 부채질을 하는데 더러는 흑공단 옷을 입었고 더러는 꽃무늬를 수놓은 명주를 입었으며 나머지는 물을 빼지 않은 삼베 옷이나 모시 옷이었는데 심지어 올이 성긴 삼베 옷인 삼승포를 입거나 산누에 고치에서 뽑은 야견사 옷을 입은 사람들 마저 구경을 나왔다. (저고리 뿐만 아니라) 바지도 이와 같았다. 몸에 지닌 노리개도 너저분하여 더러는 수 놓은 주머니와 서너 개의 패도를 찼는데 모두 쌍으로 짝 지어 꽂은 상아 칼집에 꽂혀 있었다. 담배 쌈지도 우스운 모양이어서 더러는 꽃과 들짐승 날짐승을 수놓은 것이거나 이름난 옛 글 구절을 수놓았다. 통역관이며 마두 무리들이 앞다투어 책문 밖에 서서 서로 악수를 나누었다.

은자의 무게를 확인하고 인원을 점검하는데 모여든 호인들이 물었다. "당신들 서울에서 몇 일이나 걸렸으며 오는 길에 내린 비는 피하였소? 집안은 두루 평안하오? (무역할 자금인) 포은은 받아 왔소?" 사람 마다 한 마디씩 하는 것이 한 입에서 나오는 것 같았는데 다투어 묻기를 "한 상공과 안 상공은 함께 오지 않았소?" 한다. 이렇게 묻는 몇 사람은 의주 상인들과 함께 하는 자들로 오랜 세월 연경에서 장사하여 모두 몹시 교활하고 연경에서 일어나는 일을 훤히 알았다. (이들이 부르는) 상공이란 것은 상인들이 서로를 높여 부르는 호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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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이 행차할 때에는 관례에 따라 정관에게 팔포가 지급되었다. 정관은 사신을 수행하는 비장들과 통역관으로 모두 합쳐 30 명이다. 팔포는 옛날에 관청에서 정관에게 주던 것으로 사람마다 인삼을 그 무게로 주었기에 팔포라고 부른다. 요즘엔 관청에서 주지 않고 스스로 은을 준비하도록 시키면서 포의 수량만 제한한다. 당상관은 포은으로 3천 냥까지 허락되었고 당하관에게는 2천 냥까지 허락되었다. 스스로 지니고 연경에 들어가 여러 재화와 무역하게 하니 기이하다고 할 것이다. 가난하면 스스로 마련할 수 없기에 개성이나 평양, 안주 등의 곳에서 자신이 할당 받은 포를 팔았고, 그곳의 (연경 물건을 취급하는 상인인) 연상들이 포를 사서 은을 주면 그것을 지니고 갔다간다. 그러나 각지의 연상은 법때문에 직접 연경에 들어갈 수 없어서 의주 상인들에게 자신이 사들인 포를 다시 팔아 넘기고 (의주 상인이 가져온 연경의 물건을) 무역하여 돌아간다. (앞서 청나라 사람들이 찾은) 한씨니 임씨니 하는 상인들이 해마다 연경에 들어가는데 연경을 마치 자기 집 문 앞 정원 보듯하여 연경 시장의 장사치와 땔래야 땔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물건 값을 불러 낮추고 올리는 것이 모두 저들의 손에 달렸기에 연경에서 들여오는 물건 값이 나날이 높아 지기만 하는 것도 바로 이 무리들 때문이다. 온 나라의 모두가 이러한 속사정을 알지 못하고 통역관에게만 책임을 떠 넘긴다. 통역관은 의주 상인에 대한 권력을 잃고 손을 쓰지 못하고 있다. 각지의 연상들은 이런 의주 상인의 농간질을 알지만 보고도 보지 못한 척 화가 나도 감히 말 한 마디 할 수 없는 처지다. 이런 일이 오래 전부터 이어져 왔으니 지금 이 의주 상인들이 잠시 자리를 비워 보이지 않는 것 또한 무언가 일을 꾸미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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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책문 밖으로 돌아가 책문 안을 바라보니 모여 있는 민가들 모두 들보 다섯을 써 높게 올렸고 지붕은 새를 엮어 올렸으며 지붕 마루는 둥글게 올라 있는데 드나드는 문이 반듯하였다. 길 역시 반듯하고 평탄하여 양 옆이 줄을 댄 듯 하였고 담장은 모두 벽돌로 쌓아 올렸다. 수레를 타거나 짐수레를 몰고 길을 거침없이 지나고 (상점에) 벌려 놓은 그릇은 모두 그림이 그려진 도자기였다. 이런 제도를 보니 결코 시골의 기운이 아니었고 오가는 사람들이 모두 그 덕을 보니 과연 규모가 크고 상세한 법도라고 할 만 하였다. 책문은 천하의 동쪽 끄트머리인데도 그 모습이 이러하여 앞 길을 구경하는데 문득 곧바로 나 스스로 이것들을 돌아보고 싶은 마음에 뱃속이 끓어오는 감정이 몰려왔다.

나는 크게 반성하며 "질투가 나는구나. 내가 원래 성격이 담백하여 시기나 질투하는 마음을 품지 않았었는데 이제 국경 밖으로 한 걸음 내뎌 만분의 일을 보았을 뿐인데도 망령된 마음이 이와 같이 일어나니 어찌하랴. 이는 바로 (이제껏) 본 것이 적기 때문일 것이다. 부처와 같은 혜안이라면 시방세계를 두루 살펴 평등하지 않은 것이 없으니 모든 일이 평등하다는 것을 깨닫고 질투함이 없을 것을."하고 생각하였다. 장복을 돌아보며 "너는 다음 생에 중국에서 태어나면 어떻겠느냐?" 하니 "중국은 오랑캐라 쇤네는 싫습니다."하고 대답한다. 마침 맹인 한 명이 비단 주머니를 어깨에 두르고 손으로 월금을 연주하며 지나간다. 나는 크게 깨달아 "저것이야 말로 평등한 눈이 아니겠는가?" 하고 생각하였다.

잠시 뒤 책문이 크게 열리고 봉성장군과 책문어사가 점방에 와 앉았다고 하였다. 호인들이 문에 매달리듯 나와 다투어 가며 방물과 개인의 물품을 살펴 보고, 무게를 재고는 수레에 옮겨 싣고 간다. 사신이 앉은 자리도 보러 와서 담뱃대를 물고 곁눈질로 서로 손가락질하며 "왕자인가?"하고 궁금해 한다. 종실인 정사를 왕자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그 중에 알아보는 사람이 "그게 아니라 저 머리 희끗한 분이 부마대인이셔. 몇 해 전에 오신 적이 있으시지." 한다. 부사를 가리키며 "저기 수염 있고 쌍학을 수 놓은 관복을 입은 분이 을대인이시지" 하고는 서장을 가리키며 "삼대인은 한림 출신의 문관이시군."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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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오른 편에 초가 삼간으로 된 관청이 있어 어사 장군부터 어역까지 직급에 따라 놓인 의자에 앉았고 수석 통역 이하는 두 손을 맞잡고 서 있었다. 사신이 그곳에 도착하자 마두가 "가마를 멈추시오."하고 소리친다. 장군과 어사가 있는 곳을 벗어나 가마를 내려야 할 곳을 지나쳤기 때문이다. 부사와 삼방 역시 이와 같아서 서로 부르는 모습을 보니 너무나 우스웠다. 비장과 역관도 모두 말에서 내려 지나쳐 걸어 가는데 오직 변계함 만이 말을 타고 지나쳤다. 말석에 앉아 있던 호인 한 명이 (이것을 보고) 별안간 조선말로 크게 소리치며 "무례하고 무례하다. 이미 대인이 여기 앉아 계시는데 외국 사신의 부하가 어찌 이리 당돌한가. 빨리 사신께 아뢰어 볼기를 칠 만 하다."하고 꾸짖는다.

몹시 화가난 목소리였지만 딱딱한 혀로 목구멍이 막힌 듯한 소리를 내니 마치 젖먹이 어린아이의 칭얼거림이나 술 취한 사람의 술주정 같이 들렸다. 그는 호행통관인 쌍림이라고 한다. 수석 역관이 "이 자는 저희 나라 어의입니다. 초행 길이라 관례를 잘 모릅니다. 또 어의는 나라의 명의 받을어 대대인을 수호하니 대대인 역시 함부로 대할 수 없습니다. 여러 대감들께서는 황상의 자비로운 마음을 받들어 너무 깊이 따지지 마시고 대국의 아량을 보여 주셨으면 합니다."하고 말하였다.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짓고 "옳소, 옳소." 한다. 오직 쌍림만 눈을 부라리고 목소리를 높이며 화가 풀리지 않았다.

수석 역관이 나를 변군에게 보냈다. 변군이 "큰 낭패를 보았습니다." 하니 내가 "볼기가 걱정이지."하고 대답하였다. 서로 크게 웃고는 소매를 나란히 하여 (책문) 구경을 나섰는데 연신 찬탄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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柵內人家 不過二三十戶 莫不雄深軒鬯 柳陰中挑出一竿靑帘 相携而入 東人已彌滿其中矣 赤脚突鬢 騎椅呼呶 見余皆奔避出去 主人大怒指着 卞君道不解事的官人 好妨人賣買 戴宗撫其背曰 “哥哥 不必饒舌 兩位老爺 略飮一兩杯 便當起身 這等♣(鬼+監)魀 那敢橫椅 蹔相回避 卽當復來 已飮的 計還酒錢 未飮的暢襟快飮 哥哥放心 先斟四兩酒” 主人堆着笑臉道 “賢弟往歲 不曾瞧瞧麽 這等♣(鬼+監)魀於鬧攘裡 都白喫一道烟 走了罷那地覔酒錢” 戴宗曰 “哥哥勿慮 兩位老爺飮後卽起 弟當盡驅這廝回店賣買” 店主曰 “是也 兩位都斟四兩麽 各斟四兩麽” 戴宗道“每位四兩” 卞君罵曰 “四兩酒誰盡飮之” 戴宗笑曰 “四兩非酒錢也 乃酒重也” 其卓上列置斟器 自一兩至十兩 各有其器 皆以鍮鑞造觶 出色似銀 喚四兩酒 則以四兩觶斟來 沽酒者更不較量多少 其簡便若此 酒皆白燒露 味不甚佳 立醉旋醒 周視鋪置 皆整飭端方 無一事苟且彌縫之法 無一物委頓雜亂之形 雖牛欄豚柵 莫不疎直有度 柴堆糞庤 亦皆精麗如畵 嗟乎 如此然後始可謂之利用矣 利用然後可以厚生 厚生然後正其德矣 不能利其用而能厚其生 鮮矣 生旣不足以自厚 則亦惡能正其德乎 正使已入鄂姓家 主人身長七尺 豪健鷙悍 其母年近七旬 滿頭揷花 眉眼韶雅 聞其子孫滿前云
柵內人家, 不過二三十戶, 莫不雄深軒鬯。 柳陰中挑出一竿靑帘, 相携而入, 東人已彌滿其中矣。 赤脚突鬢, 騎椅呼呶, 見余皆奔避出去。 主人大怒指着, 卞君道「不解事的官人, 好妨人賣買。」 戴宗撫其背曰, 「哥哥, 不必饒舌。 兩位老爺, 略飮一兩杯, 便當起身, 這等𩴌魀, 那敢橫椅。 蹔相回避, 卽當復來。 已飮的, 計還酒錢, 未飮的暢襟快飮, 哥哥放心。 先斟四兩酒。」 主人堆着笑臉道, 「賢弟, 往歲, 不曾瞧瞧麽。 這等𩴌魀於鬧攘裡, 都白喫一道烟, 走了罷那地覔酒錢。」 戴宗曰 「哥哥勿慮。 兩位老爺飮後卽起, 弟當盡驅這廝回店賣買。」 店主曰 「是也。 兩位都斟四兩麽。 各斟四兩麽。」 戴宗道 「每位四兩。」 卞君罵曰 「四兩酒誰盡飮之。」 戴宗笑曰, 「四兩非酒錢也, 乃酒重也。」 其卓上列置斟器, 自一兩至十兩。 各有其器, 皆以鍮鑞造觶, 出色似銀。 喚四兩酒, 則以四兩觶斟來。 沽酒者更不較量多少, 其簡便若此。 酒皆白燒露, 味不甚佳, 立醉旋醒。 周視鋪置, 皆整飭端方, 無一事苟且彌縫之法, 無一物委頓雜亂之形。 雖牛欄豚柵, 莫不疎直有度, 柴堆糞庤, 亦皆精麗如畵。 嗟乎, 如此然後始可謂之利用矣。 利用然後可以厚生, 厚生然後正其德矣。 不能利其用而能厚其生, 鮮矣。 生旣不足以自厚, 則亦惡能正其德乎。 正使已入鄂姓家, 主人身長七尺, 豪健鷙悍, 其母年近七旬, 滿頭揷花, 眉眼韶雅, 聞其子孫滿前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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點心後 與來源及鄭進士 出行觀翫鳳凰山 離此六七里 看其前面 眞覺奇峭 山中有安市城舊址 遺堞尙存云 非也 三面皆絶險 飛鳥莫能上 惟正南一面稍平 周不過數百步 卽此彈丸小城 非久淹大軍之地 似是句麗時小小壘堡耳 相携至大柳樹下納凉 有井甎甃 又磨治全石爲覆盖 穿其兩傍 劣容汲器 所以防人墮溺 且鄣塵土 又水性本陰 故使蔽陽養活水也 井葢上設轆轤 下垂雙綆 結柳爲棬 其形如瓢而深 一上一下 終日汲 不勞人力 水桶皆鐵箍 以細釘緊約 絶勝於綰竹 爲經歲久則朽斷 且桶身乾曝 則竹箍自然寬脫 所以鐵箍爲得也 汲水皆肩擔而行 謂之扁擔 其法削一條木如臂膊大 其長一丈 兩頭懸桶 去地尺餘 水窸窣不溢 惟平壤有此法 然不肩擔而背負之故 甚妨於窄路隘巷 其擔法又此爲得之 昔鮑宣妻提瓮出汲 余甞疑何不頭戴而手提之 乃今見之 婦人皆爲高髻不可戴矣
책문 안 민가는 불과 이삽십 호였으나 처마가 웅장하게 치솟아 올라 있었다. 버드나무 그늘 안에 주막을 알리는 푸른 기 하나가 솟아 있고 여러 사람이 드나드는데 조선 사람이 이미 가득하다. 살을 드러낸 맨다리에 귀밑 수염이 삐죽하게 나온 사내들이 의자에 걸터앉아 뭐라고 중얼거리다가 나를 보고는 모두 도망치듯 나가버린다. 주인이 손가락으로 변군을 가리키면서 "일을 알지 못하는 관리가 사람들의 거래를 방해한다"고 크게 화를 내었다.
 
대종이 그의 등을 어루만지며 "형님, 여러 말씀 하지 마소. 이 두 분이야 간단히 술이나 한 잔씩 하면 일어서실 것이니. 저 불한당들이 감히 의자 위에 뒹굴어서야 되겠소. 잠시 서로 피하고 나면 곧바로 다시 올게요. 이미 마신 술값이나 계산해 두시고 아직 못 마신 술은 (저들이 돌아와서) 옷깃을 풀고 유쾌하게 마실 것이니 형님은 마음 놓으시오. 여기 먼저 넉 냥 술이나 내시구려." 한다. 주인은 쓴웃음을 지으며 "아우님, 재작년에 보지 못했나? 저 불한당 놈들이 시끄러운 틈을 타 모두 공짜로 먹고 담배를 피운다 하고는 그대로 도망가 버려서 술값을 못받았네." 하고 말하였다. 대종은 "형님 걱정 마소. 두 어르신이 마시고 일어나시면 제가 당장 저 천것들을 쫓아가서 가게로 돌아와 값을 치르라 하겠습니다."하고 대답하였다.
西南廣濶 作平遠山淡沱水 千柳陰濃 茅簷疎籬 時露林間 平堤綠蕪 牛羊散牧 遠橋行人 有擔有携 立而望之 頓忘間者行役之憊 兩人者爲觀新刱佛堂 棄我而去 有十餘騎揚鞭馳過 皆繡鞍駿馬 意氣揚揚 見余獨立 滾鞍下馬 爭執余手 致慇懃之意 其中一人美少年 余畫地爲字以語之 皆俯首熟視 但點頭而已 似不識爲何語也
 
점주는 "좋네. 두 분 합쳐서 넉 냥을 드릴까? 각각 넉 냥을 드릴까?" 한다. 대종이 "어르신 한 분 마다 넉 냥이오." 하니 변군이 놀라 "넉 냥 술을 어찌 다 마시나?" 하였다. 대종이 웃으며 "넉 냥이란 게 술값이 아니고 술 무게 입니다." 하였다. 탁자 위에 술 그릇이 한 냥짜리에서 열 냥까지 죽 늘어서 있었다. 각각의 그릇은 모두 주석을 땜하여 만들었는데 은빛 색깔을 띄었다. 넉 냥 술을 시키니 즉각 넉 냥을 따라 가지고 온다. 호인들의 술은 (이렇게 크기가 미리 정해진 그릇에 팔아서) 다시 술 무게를 재서 확인할 필요가 없으니 이와 같이 간단히 살 수 있다. 술은 모두 백소로인데 맛이 썩 좋지는 않으나 취했더라도 돌아서면 바로 깬다.
 
가게 주변을 돌아보니 모두 반듯하게 정돈되어 있어 무엇 하나 대충 한 것이 없고 물건 하나 어지럽게 널려 있는 것이 없다. 외양간이나 돼지 우리라 하더라도 제도를 갖추어 짓지 않은 것이 없고 땔나무며 똥 무더기도 역시 모두 그림을 그린 듯 정리하여 두었다. 슬프도다, 이렇게 한 후에야 이른바 (백성의 기구와 의식을 넉넉하고 편하게 하는) 이용이란 것을 말할 수 있으련만. 이용이 된 후에야 (백성의 생활을 윤택하게 하는) 후생이 가능하고, 후생이 되어야 덕을 바로 펼 수 있는 것이다. 이용도 하지 못하면서 후생을 하기란 어렵다. 생산이 스스로 윤택하기에 부족하면 덕을 바로 펴는 것도 힘들게 된다.
 
정사는 이미 (책문의 유력자인) 악씨 성을 가진 자 집에 들어갔는데 주인은 키 7 척(약 210 센티미터)의 건장한 체구로 올해 나이 칠순에 가까웠고 만주족 변발도 꽃이 핀듯 희었으며 눈썹이며 눈동자가 잘 생겼는데 그 자손들도 번창하고 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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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彌滿(미만): 널리 퍼지어 가득참.
* 赤脚(적각): 살을 그대로 들어낸 다리. 맨다리.
* 賣買(매매): 사고 팜. 거래.
* 哥哥(가가): 형님.
* 饒舌(요설): 수다스럽게 지껄임.
* 𩴌魀(감개): 불한당. 𩴌은 《[[:w:강희자전|강희자전]]》에서 빠져있다.
* 蹔相回避(잠상회피): 잠시 서로 피하다. 맨살을 드러내고 다니는 사람은 당연히 상민으로 양반이 들어오자 자리를 피한 것이다.
* 酒錢(주전): 술값.
* 堆着笑臉(퇴착소검): 뺨에 웃음을 발라 붙인다는 말이니 "쓴웃음을 짓다"는 뜻.
* 賢弟(현제): 아우뻘 되는 사람을 높이는 말. "아우님".
* 白喫(백끽): 공짜로 먹다.
* 白燒露(백소로): 백주(白酒, [[:w:바이주|바이주]])의 일종. 흔히 배갈이라고 부른다.
* 彌縫(미봉): 임시변통으로 이리저리 맞춤. 대충대충 함.
* 牛欄豚柵(우란돈책): 소 외양간과 돼지 우리.
* 嗟乎(차호): 슬프도다.
* 利用厚生(이용후생): 백성이 사용하는 기구 따위를 편리하게 하고 의식을 넉넉하게 하여 생활을 윤택하게 함. 조선 후기 실학이 이용후생을 강조하였으나 이용후생의 개념 자체는 성리학적 정치관의 것이다.
* 鮮矣(선의): 어렵다. / 어렵다를 나타낼 수 있는 다른 단어(이를 테면 難)를 놔두고 鮮을 쓴 것은 중의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요즘 유행어 식으로 말하면 "조선이 조선했다"는 뉘앙스가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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點心後, 與來源及鄭進士, 出行觀翫鳳凰山。 離此六七里, 看其前面, 眞覺奇峭。 山中有安市城舊址, 遺堞尙存云. 非也。 三面皆絶險, 飛鳥莫能上, 惟正南一面稍平, 周不過數百步, 卽此彈丸小城, 非久淹大軍之地。 似是句麗時小小壘堡耳。 相携至大柳樹下納凉。 有井甎甃, 又磨治全石爲覆盖, 穿其兩傍, 劣容汲器。 所以防人墮溺, 且鄣塵土。 又水性本陰, 故使蔽陽養活水也。 井葢上設轆轤, 下垂雙綆, 結柳爲棬。 其形如瓢而深, 一上一下. 終日汲, 不勞人力。 水桶皆鐵箍, 以細釘緊約, 絶勝於綰竹。 爲經歲久則朽斷, 且桶身乾曝, 則竹箍自然寬脫。 所以鐵箍爲得也, 汲水皆肩擔而行, 謂之扁擔。 其法削一條木如臂膊大, 其長一丈, 兩頭懸桶, 去地尺餘, 水窸窣不溢。 惟平壤有此法, 然不肩擔而背負之故, 甚妨於窄路隘巷。其擔法又此爲得之。 昔鮑宣妻提瓮出汲, 余甞疑何不頭戴而手提之。 乃今見之, 婦人皆爲高髻不可戴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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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내원과 정 진사와 함께 봉황산 구경을 나섰다. 예닐곱 리를 가니 전면이 보였는데 참으로 기이하게 깍여 있었다. 산 속에 안시성의 옛 터가 있고 지금도 성 가퀴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하는데 사실이 아니다. 삼면이 모두 끊어져 가파르고 오직 남쪽 한 면만 그나마 조금 평탄한데 둘레가 수백 보에 불과하여 여기엔 작은 성곽을 두를 수 있을 뿐이어서 그 옛날 대군에 맞선 땅이라고 할 수 없다. 아마도 고구려 시절 작디 작은 보루였을 것이다. 일행이 서로 끌어가며 큰 버드나무 밑으로 들어가니 시원하였다. 벽돌로 쌓은 우물이 있었는데 돌을 갈아 만든 뚜껑을 덮고 그 양 옆으로 구멍을 내고 물 길을 그릇을 매달아 두었다. 이로서 사람이 빠지는 것을 방지하고 흙먼지를 막는다. 또한 물의 성질은 본래 음이니 (햇볕과 같은) 양의 기운이 닿지 않도록 막아야 물을 살려 기를 수 있다. 우물 덮개 위로 도르래가 있고 두레박 둘을 늘어뜨려 버드나무에 묶어 두었다. 이와 같이 두레박을 매어 놓으니 하나가 올라가면 하나가 내려가 하루 종일 물을 길러도 사람의 힘이 들지 않는다. 수통은 모두 쇠 테두리를 두르고 쇠못으로 단단히 박아두었는데 대나무 테보다는 한결 낫다. 여러 해를 사용하여 오래되면 결국 썩고 끊어지기 마련인데 수통을 건져 말리다 보면 대나무 테두리는 뒤틀려 벗겨진다. 이 쇠 테두리 수통으로는 물을 길어 어깨에 지고 가는데 이를 편담이라고 부른다. 편담을 지는 방법은 양팔 길이 정도 되는 길이의 큰 나무 장대를 한 장이라고 부르는데 양 끝에 물통을 달고 땅에서 한 자 정도 높이로 매달아 걸으면 물이 찰랑거려도 넘치지 않는다. 생각해 보니 평양에서도 이런 방법을 쓰지만 어깨에 걸지 않고 등 뒤로 매기 때문에 비좁고 지저분한 뒷골목을 지날 때면 통행에 방해가 된다. 물통 지는 방법 하나도 이처럼 이득이 있는 것이다. 옛날에 포선의 처가 동이로 물을 길러 날랐다고 하는데 나는 그게 (조선에서 처럼) 머리에 동이를 이고 날랐다는 것인지 (지금의 중국처럼) 손으로 날랐다는 것인지 궁금했었다. 지금 보니 부인들이 모두 머리를 높이 올려 무엇이고 (머리에 이고는) 나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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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숨김|제목 = 낱말풀이}}
* 點心(점심): 끼니로 낮에 먹는 음식. 점심은 원래 선종 불교에서 나온 말로 말 그대로 마음에 점 하나 찍듯이 간단히 먹는 것을 뜻했다.
* 安市城(안시성): 고구려 시기 당나라의 침입에 맞서 싸워 패하지 않은 성읍.
* 壘堡(누보): = 보루(堡壘). 적은 부대가 주둔하여 경비를 서던 망루.
* 納凉(납량): 여름철 더위를 피해 서늘한 곳을 찾음.
* 塵土(진토): 흙먼지.
* 陰(음): 음양설에 따른 성질의 하나. 음양설은 세상의 만물을 음과 양으로 구분한다. 이를 테면 하늘은 양, 땅은 음이다.
* 轆轤(녹로): 도르래.
* 水桶(수통): 물을 긷거나 담는 통.
* 鐵箍(철고): 쇠로 만든 테두리.
* 絶勝(절승): 절승은 여러 의미로 쓰이는 낱말이다. 여기서는 "한결 낫다"라는 의미로 쓰였다. 다른 뜻으로는 "훌륭한 경치"라는 뜻이 있다.
* 歲久(세구): 여러 해가 지나 오래 되다.
* 臂膊(비박): 팔과 어깨.
* 窄路隘巷(착로애항): 비좁고 지저분한 뒷골목.
* 鮑宣妻(포선처): 포선은 한나라 시기 관리이다. 《[[:w:자치통감|자치통감]]》 등에 그의 행적이 실려 있다. 포선 처의 이름은 소군(少君)으로 포선 스승의 딸이다. 《[[:w:소학|소학]]》 외편 선행편에 포선의 처가 부귀영화를 마다하고 가난한 포선을 따랐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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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南廣濶, 作平遠山淡沱水。
 
<poem>
千柳陰濃
茅簷疎籬
時露林間
平堤綠蕪
牛羊散牧
遠橋行人
有擔有携
立而望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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頓忘間者行役之憊ㅍ 兩人者爲觀新刱佛堂, 棄我而去。 有十餘騎揚鞭馳過, 皆繡鞍駿馬, 意氣揚揚。 見余獨立, 滾鞍下馬, 爭執余手, 致慇懃之意。 其中一人美少年, 余畫地爲字以語之, 皆俯首熟視, 但點頭而已, 似不識爲何語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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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background-color: #FAFAFA; border: 1px solid #808080; padding: 5px; ">
서남쪽은 탁 트여 널찍하니 먼 산까지 평탄한데 맑은 물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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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많은 버드나무 그늘이 짙고
초가의 울타리는 듬성듬성 한데
숲 사이로 안개가 지나고
평평한 제방에 잡초가 무성하다.
소떼며 양떼를 흩어 기르고
먼 다리 위로 지나는 사람
혹은 짊어 지고 혹은 들고 가며
우두커니 이 광경을 보고 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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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광경에 여행길 고달픔을 까맣게 잊었다. 두 사람은 새로 단장한 불당을 구경한다고 나를 버리고 가버렸다. 10여 명이 말을 타고 채찍질을 하며 지나는데 모두 수 놓은 안장을 놓은 날랜 말들을 타고 의기 양양하게 지나간다. 내가 혼자 서 있는 것을 보고는 멈추고 말을 내려 내 손을 다투어 부여 잡는데 친절한 마음이 묻어난다. 그중에 잘생긴 소년이 한 명 있길래 나는 땅에 글자를 써서 보였으나 모두들 고개를 숙이고 글자를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릴 뿐 무슨 말인지 알지는 못하는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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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숨김|제목 = 낱말풀이}}
* 茅簷(모첨): 초가 지붕.
* 綠蕪(녹무): 푸르게 무성한 잡초.
* 頓忘(돈망): 까맣게 잊음.
* 行役之憊(행역지비): 여행길의 고달픔.
* 駿馬(준마): 날랜 말.
* 意氣揚揚(의기양양): 기세가 등등하고 뽐내는 모양이 가득하다.
* 慇懃之意(은근지의): 친절한 마음.
 
{{글 숨김 끝}}
 
有兩碑 皆靑石 一門上御史善政碑 一稅官某善政碑 俱滿州人四字名 撰書者 亦俱滿州人 文與筆俱拙 但碑制極佳 功費甚省 此可爲法 碑之兩傍 不磨滑 甎築夾碑爲墻 沒碑頂 因瓦覆爲屋 碑在♣(穴+坎)中 以備風雨 勝於建閣韜碑 碑趺贔屭 及碑文兩邊 所鐫覇夏 可數毫髮 此不過窮邊民家所建 然其精緻古雅 不可當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