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제2장: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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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div class=prose>
<big>'''[[|제목 = 백두산]]'''</big>
|지은이 = [[글쓴이:조기천|조기천]]
 
|역자 =
 
|부제 = 제2장
 
|이전 = [[백두산/제1장|제1장]]
제2장
|다음 = [[백두산/제3장|제3장]]
 
|설명 =
 
}}
 
<poem>
'''1'''
 
안개 내린다-<br />
산촌에 저녁안개 내린다<br />
어둠을 거느즉이 이끌고<br />
길잡이도 없이 한 자욱 두 자욱<br />
화전골 오솔길을 더듬어<br />
저녁안개 두메로 내린다.<br />
안개 내린다-<br />
흰 양의 떼인 양 꿈틀거리며<br />
사발봉 츠렁바위에 쓰다듬다가<br />
남몰래 슬며시<br />
솔밭에 숨어들더니<br />
그래도 마을에 내려서<br />
밤이라도 편히나 쉬려는 듯<br />
안개 내린다-<br />
백두산에 안개 내린다!
 
 
'''2'''
 
≪에그! 벌써 저무는데-≫<br />
칡뿌리 깨는 꽃분이 말소리,<br />
저물어도 캐야만 될 그 칡뿌리<br />
저녁가마에 맨 물이 소품치려니,<br />
쌀독에 거미줄 친 지도 벌써 그 며칠<br />
손꼽아 헤여서는 무엇하리!<br />
≪에그! 벌써 저무는데!≫<br />
그래도 캐야만 될 꽃분의 신세<br />
저녁도 아침도 칡뿌리로 비제비거니,<br />
어둠이 대지를 덮으려 한다.<br />
날새도 솔잎새에 날아든다<br />
마을이 안개에 잠기였다<br />
그래도 바구니는 채워야 할 꽃분이 신세-
 
 
'''3'''
 
아아 칡뿌리! 칡뿌리!<br />
이 나라의 산기슭에서<br />
봄이면 봄마다 어김도 없이<br />
꽃은 피고 나비는 넘나들어도<br />
터질 듯이 팅팅 부은 두 다리 끄을며<br />
바구니 든 아낙네들이 웨 헤맸느뇨?<br />
백성이 한평생 칡넝쿨에 얽히였거니<br />
이 나라에 칡뿌리 많은 죄이드뇨?<br />
음식내에 치워 사람은 쓰려져도<br />
크나큰 창고, 넓다란 역장과 항구엔<br />
산더미같은 쌀이 쌓여<br />
현해탄을 바라고 있었으니<br />
실어간 놈 뉘며 먹은 놈 그 뉘냐?<br />
아아, 칡뿌리! 칡뿌리!<br />
백성은 네게도 목숨 못단 때 많았거니<br />
이 나라에 네가 적은 죄이드뇨?
 
 
'''4'''
 
까마귀 날아지난다-<br />
까욱- 까욱-<br />
꽃분이를 굽어보며-<br />
까욱- 까욱-<br />
≪에그! 가야지!≫ 꽃분이 일어선다.<br />
한 손으로 이슬에 적신 치마자락<br />
다른 손엔 어둠이 드러누운 바구니<br />
안개 헤치며 오솔길을 내려온다,<br />
솔밭도 어둑어둑<br />
맘속도 무시무시.<br />
이때 그림자인 듯 언 듯-<br />
솔밭에서 사나이 나온다<br />
≪에구? 웬 사람인가?≫<br />
어느덧 꺼멓게 길 막는다<br />
도깨빈 듯 꺼멓게 길 막는다<br />
귀신이냐? 사람이냐?
 
 
'''5'''
 
≪아가씨 김윤칠이라 아시는지?≫<br />
가슴속엔 돌멩이 떨어진 듯<br />
그래도 처녀의 시선은 빨랐으니<br />
햇볕에 따고 탄 사나이의 낮<br />
처녀의 마음 꿰뚫는 그 시선-<br />
≪김윤칠? 저의 아버지인데…≫<br />
의문에 질린 처녀의 기색<br />
≪아, 그럼 당신은 꽃분이?≫<br />
처녀의 빛나는 두 눈동자<br />
≪아, 이것도 천운이라 할가…≫<br />
사나이 부르짖으며<br />
휘익 솔밭으로 돌아서더니<br />
난데없는 뻐꾹소리 높았다-<br />
뻐꾹- 뻐꾹-<br />
잠잠하던 솔밭도 기쁘게 화답한다-<br />
뻐꾹- 뻐꾹-<br />
또 솔밭 속에서 나오는 두 사나이.
 
 
'''6'''
 
소나무 뒤에 숨어앉은 네 사람-<br />
한 사람은 철호였으니-<br />
눈보라 속에 먼먼 길 떠나더니<br />
어느 때 어느 곳에 갔다가<br />
무슨 일 하다가<br />
양지쪽 잔디 언덕마냥<br />
파-란 꿈속에 포근하고<br />
진달래아지에 봄 맺히는 이때<br />
웬 짐짝 짊어지고<br />
솔개골에 왔는고?<br />
산이면 몇이나 넘었고<br />
밤길은 얼마나 걸었던고?<br />
두어라, 물어선 무엇하리,<br />
안 물은들 모르랴!<br />
다른 사람은 중로인-<br />
이 밤으로 약재 걸메고<br />
홍산으로 갈 함흥로동자-<br />
홍산 속에 이름없는 새 마을 있다네<br />
그 마을엔 병원도 있는데<br />
병자도 의사도<br />
≪동무≫라 서로 부른다네.<br />
또 다른 사람은 처호의 련락원-<br />
이 밤으로 H시로 가야 될<br />
어느 때나 웃음 잘 웃고 노래 잘하는<br />
어느 때나 ≪아리랑고개≫ 넘는다는<br />
영남이란 열 여섯의 소년.
 
 
'''7'''
 
≪나는 박철호라 부르우,<br />
얼마나 괴로우시우?≫<br />
길 막던 사나이의 첫 말,<br />
솔밭은 어둑해져도<br />
꽃분의 뺨엔 붉은 노을-<br />
≪아이고! 철호동무!≫<br />
가늘게 속삭일 뿐.<br />
처녀는 면목도 모르며<br />
한 해나 그의 지도 받았다-<br />
삐라도 찍어보내고<br />
피복도 홍산으로 보내고.<br />
중년은 되리라 한 그-<br />
그는 새파란 청년,<br />
강직하고도 인자스런 모습<br />
호협한 정열에 끓는 눈-<br />
(스물댓이나 되었을가?)<br />
머리 숙이는 처녀의 생각.<br />
떠날 동무들게 마지막 부탁하고<br />
솔개골에 머문다면서<br />
≪꽃분동무,<br />
등사기 멀리 있수?≫<br />
철호의 묻는 말<br />
≪예, 념려 마읍소!≫<br />
꽃분의 대답.<br />
샘터 돌담불에 감춘 등사기<br />
어두워지면 가져오리라-<br />
꽃분이 생각한다.<br />
≪자, 그러면 동무들!≫<br />
철호 일어서며 말한다.<br />
마을은 잠든 듯<br />
젖빛 솜을 막 쓰고<br />
오로지 순사주재소 높다란 대문간만<br />
우둑이 상 찌프리고<br />
마을을 흘겨보는 듯.<br />
어둠은 산촌을 누르며 막 들어서는데<br />
화전골 솔밭 속엔 네 사람의 말없는 리별.<br />
≪자, 그러면…≫<br />
마음들이 엉성키는 그 악수<br />
그리곤 심장의 벽을 툭 울리는 리별의 첫 발자취소리!<br />
전우들의 악수-<br />
그것은 싸움의 맹세였다.<br />
승리의 신심이였다.
 
승리의 신념이였다.<br />
우리의 동무들이<br />
그렇게 악수하고<br />
탄우 속으로 뛰여들었고<br />
사지에 선뜻 들어섰다.<br />
그렇게 악수하고<br />
감옥에 뒤몰려갔고<br />
교수대에 태연히 올라섰다.<br />
아아, 어린애의 웃음같이도 깨끗하고<br />
어머니의 사랑같이 꾸준하고<br />
의의 선혈같이 빨간<br />
적도의 태양같이 열렬한<br />
충직한 전우의 그 악수!…
</poem>
 
[[분류:백두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