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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벗이 있어 원방에서부터 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하겠는가?〔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 }} 락(樂)은 락(洛)이라고 읽는다. 붕(朋)이란 같은 무리라는 것이다. 원방에서부터 오니, 곧 다가오면 알 수 있다. 정자(程子)가 이르기를, “선(善)을 타인에게 미치게 하면, 믿고 따르는 자가 많으니, 따라서 가히 즐겁다.”라 하였고, 또한 이르기를, “기쁨〔說〕은 마음 속에 있고, 즐거움〔樂〕은 주로 바깥으로 발산한다.”라 하였다. {{크게|남이 {{보|나를}} 알아 주지 아니하여도 노여워하지 아니하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人不知而不慍不亦君子乎 〕 }} 온(慍)의 음은 ‘junH’<ref>원문은 반절 표시 紆問反이다. (초성은 우(紆)의 ‘ㅇ’, 중성 및 종성은 문(問)의 ‘운’이다.ᅟ)</ref>이다. 온(慍)은 노여워한다는 뜻을 포함한다. 군자(君子)란 성덕(成德)한 자를 가리킨다. 윤씨(尹氏)가 이르기를 “배움은 내 속에 있고, 알고 모르고는 타인에게 달려 있는 바, 어찌 노여울 수 있겠는가?”라 하였다. 정자(程子)가 이르기를 “비록 즐거움이 타인에게 미치나, 이를 보지도 않고, 괴로워하지도 아니하면 곧 군자라 불린다.”하였다. 愚謂 다른 사람과 함께 하여 즐기는 것은 순하고 쉽지만, {{보|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아니하는 것은 거스리는 것이고 {{보|해내기가}} 어려우므로 오직 성덕(成德)한 자만이 그것을 할 수 있다. 그래서 덕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곧, 달리 말하면 배움이 올곧게 되고 익힘이 무르익으며 기쁨이 깊어져 그치지 않는 것일 뿐이다. 정자(程子)가 이르기를 “즐거움은 기쁨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얻는다. 즐거움이 아니라면, 군자라고 말하기에 부족하다.” 하였다.
{{크게|유자께서 말씀하셨다. “그 [[:wikt:위인|위인]](爲人)이 효도하고 공경하면서도 윗사람을 침범하기를 좋아하는 자는 드물 것이니, 윗사람을 침범하기를 좋아하지 아니하면서도 난리 일으키기를 좋아하는 자는 있지 아니하다.” 〔其為人也孝弟,而好犯上者,鮮矣;不好犯上,而好作亂者,未之有也。〕 }} 「제(弟)·호(好)는 모두 거성(去聲)이다. 선(鮮)은 상성(上聲)이이다. 이하에서도 같다. 유자(有子)는 공자의 제자로, 이름은 약(若)이다. 부모를 잘 섬기는 것을 효라 하고, 형과 연장자를 잘 섬기는 것을 공경함이라 한다. 범상(犯上)이란 윗 사람에게 범하는 것을 말한다. 선(鮮)은 드물다는 것이다. 작난(作亂)이란 즉, 패역(悖逆)하고 투쟁하는 것을 말한다. 이 말은 사람이 능히 효도하고 공경하면, 그 마음이 화순(和順)하므로, 윗사람을 침범하기를 좋아하기가 드물고, 반드시 작난을 좋아하지 아니한다는 것이다.{{크게|군자는 근본에 힘을 쓰는 것이니, 근본이 서면 도가 생기는 것이다. [[:wikt:효제|효제]](孝悌)라는 것은 이에 어짊〔仁〕을 행함의 근본이다. 〔君子務本,本立而道生。孝弟也者,其為仁之本與!」〕}} 여(與)는 평성(平聲)이다. 무(務)는 전력(專力)한다는 것이다. 본(本)은 근(根)과 같다. 어짊은 사랑의 이치요, 마음의 덕이다. 어짊을 행함〔為仁〕은 어짊을 행함〔行仁〕과 같다. 여(與)는 의사(疑辭)로, 겸퇴(謙退)하여 감히 질언(質言)하지 아니하는 것이다. 범사(凡事)에 군자는 근본에 오로지 힘을 쓰면, 이윽고 근본이 서고, 곧, 그 도가 스스로 생긴다는 것을 말한다. 상문(上文所謂)의 효제(弟,乃是為仁之本,學者務此,則悌)를 좇는 것이야말로 어짊을 행하는 근본이니, 학자가 이에 힘쓰면 인도(仁道自此而生也。)가 여기서 나온다. 정자가 이르기를 :「孝弟,順德也,故不好犯上,豈復有逆理亂常之事。德有本,本立則其道充大。孝弟行於家,而後仁愛及於物,所謂親親而仁民也。故為仁以孝弟為本。論性,則以仁為孝弟之本。」或問:「孝弟為仁之本,此是由孝弟可以至仁否?」曰:「非也。謂行仁自孝弟始,孝弟是仁之一事。謂之行仁之本則可,謂是仁之本則不可。蓋仁是性也,孝弟是用也,性中只有個仁、義、禮、智四者而已,曷嘗有孝弟來。然仁主於愛,愛莫大於愛親,故曰孝弟也者,其為仁之本與!」
{{크게|공자께서 말씀하셨다.「巧言令色,鮮矣仁!」}} 巧,好。令,善也。好其言,善其色,致飾於外,務以悅人,則人欲肆而本心之德亡矣。聖人辭不迫切,專言鮮,則絕無可知,學者所當深戒也。정자가 이르기를 :「知巧言令色之非仁,則知仁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