솥: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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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렇다고, 어떻게 뭉태란 놈의 흉은 그만치 봐야 할 것이다. 그는 담배를 하나 피워물고 뭉태는 본디 돈도 신용도 아무것도 없는 건달이란둥, 동리에서는 그놈의 말은 곧이 안 듣는다는둥, 심지어 남의집 보리를 훔쳐내다 붙잡혀서 콩밥을 먹었다는 허풍까지 찌며 없는 사실을 한창 늘여 놓았다.
 
그는 이러게이렇게 계집을 얼렁거리다 안말에서 첫홰를 울리는 계명성을 듣고 깜짝 놀랐다. 개동까지는 떠날 차보가 다 되어야 할 것이다. 그는 계집의 뺨을 손으로 문질러보고 벌떡 일어나서 밖으로 나온다.
 
"내 집에 좀 갔다올게 꼭 기다려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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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식이가 거리로 나올 때에는 초승달은 완전히 넘어갔다.
 
저 건너 산밑 국수집에는 아직도 마당의 불이 환하다. 아마 노름꾼들이 모여드어 국수를 눌려먹고 있는 모양이다. 그는 밭둑으로 돌아가며 지금쯤 안해가 집에 돌아와 과연 잠이 들었을지 퍽 궁금하였다. 어쩌면 매함지박 없어진 건 알았을지도 모른다. 제가 들어가면 바가지를 긁으려고 지키고 앉았지나 않을는지―――
 
이렇게 되면 계숙이와의 약속만 깨어질뿐 아니라 일은 다 글르고 만다.
 
그는 제물에 다시 약이 올랐다. 계집년이 건방지게 남편의 일을 지키고 앉었구, 남편이 하자는 대루 했을 따름이지, 제가 항상 뭔데―――허지만 이 주먹이 들어가 귓배기 한 서너번만 쥐어박으면 고만이 아닌가―――
 
다시 힘을 얻어가지고 그는 제집 싸리문께로 다가서며 살며시 들어밀었다. 달빛이 없어지니까 부엌쪽은 캄캄한 것이 아주 절벽이다. 뜰에 깔린 눈의 반영이 있으므로 그런대로 그저 할만하다 생각하였다.
 
그러나 우선 봉당 위로 올라거서 방문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문풍지도 울듯한 깊은 숨소리, 입을 벌리고 곁에서 코를 골아대는 안해를 일상 책했더니 이런때에 덕볼줄은 실로 뜻하지 않았다. 저런 콧소리면 사지를 묶어가도 모를만치 곯아졌을 게니까―――
 
그제서는 마음을 놓고 허리를 굽히고 그리고 꼭 도둑같이 밭을 저겨 디디며 부엌으로 들어섰다. 첫째 살림을 시작하려면 밥은 먹어야 할 테니까 솥이 필요하다. 손으로 더듬더듬 찾아서 솥뚜껑을 한옆에 벗겨놓자 부뚜막에 한다리를 얹고 두 손으로 솥전을 잔뜩 웅켜잡았다. 인제는 잡아당기기만 하면 쑥 뽑힐 게니까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 솥이 생각하면 사년전 안해를 맞아들일 때 행복을 계약하던 솥이었다. 그 어느날인가 읍에서 사서 둘러메고 올 제는 무척 기뻤다. 때가 지나도록 안해가 뭔지 생각하고 모르다가 이제야 알고보니 딴은 훌륭한 보물이다. 이 솥에서 둘이 밥을 지어먹고 한평생 같이 살려니 하니 세상이 모두 제것같다.
 
"솥 사왔지."
 
이렇게 집에 와 내려놓으니 안해도 뛰어나와 짐을 끄르며
 
"아니 그솥 이뻐이! 얼마 주었수?" 하고 기뻐하였다.
 
"번인 일원사십전을 달라는 걸 억지로 깎아서 일원삼십전에 떼 왔는걸!" 하고 저니까 깎았다는 우세를 뽐내니
 
"참 싸게 샀수, 그러나 더 좀 깎았으면 좋았지."
 
그리고 안해는 솥을 두들겨보고 불빛에 비춰보고 하였다. 그래도 밑바닥에 구멍이 뚤렸을지 모르므로 물을 부어보다가
 
"아 이보게, 새네 새, 일 어쩌나?"
 
"뭐, 어디."
 
그는 솥을 받아들고 눈이 휘둥그래서 보다가'
 
"글쎄, 이놈의 솥이 새질 않나!" 하고 얼마를 살펴보고난 뒤에야 새는 게 아니고 전으로 물이 검흐르는 것을 알았다.
 
"숭맥도 참 많어이, 이게 새는 거야? 겉으로 물이 흘렀지!"
 
"참 그렇군"
 
둘이들 이렇게 행복스러이 웃고 즐기던 그 솥이었다. 그러나 예측하였던 달가운 꿈은 몇달이었고 툭 하면 지지리 고생만 하였다. 인제는 마땅히 다른 데로 옮겨야 할 것이다.
 
그는 조금도 서슴없이 솥을 쑥 뽑아 한길 체 내려놓고 또 그담 걸 찾았다.
 
근식이는 어두운 벽 한복판에 서서 뒤 급한 사람처럼 허둥지둥 매인다. 그렇다고 무엇을 찾는 것도 아니요 뽑아논 솥을 집는 것도 아니다. 뭣뭣을 가져가야 할는지 실은 가져갈 그릇도 없거니와 첫째 생각이 안 나서이다. 올 때에는 그렇게도 여러가지가 생각나더니 실상 와 닥치니까 어리둥절하다.
 
얼마 뒤에야
 
(옳지 이런 망할 정신 보래!)
 
그는 잊었던 생각을 겨우 깨치고 벽에 걸린 바구니를 떼들고 뒤적거린다. 그 속에는 닳아 일그러진 수저가 세 자루 길고 짧고 몸고르지 못한 젓가락이 너덧매 있었다.
 
그중에서 덕이(아들)먹을 수저 한개만 남기고는 모집어서 궤춤에 꾹 꽃았다. 그리고 더 가져가랴 하니 생각은 부족한 것이 아니로되 그릇이 마뜩치 않다. 가령 밥사발, 바가지, 종지―――
 
방에는 앞으로 둘이 덮고 자지 않으면 안될 이불이 한 채 있다마는 방금 아내가 잔뜩 끌어안고 매댁질을 치고 있을 게니 이건 오매부득이다. 또 웃목구석에 한 너덧되 남은 좁쌀자루도 있지 않느냐―――
 
허지만 이게 다 일을 벗내는 생각이다. 그는 좀 미진하나마 솥만 들고는 그대로 그림자와 같이 나와 버렸다.
 
그의 집은 수어릿골 꼬리에 달린 막바지였다. 양쪽산에 찌어 시냇가에 집은 얹혔고, 늘 쓸쓸하였다. 마을복판에 일이라도 있어 돌이 깔린 시냇길을 여기서 오르내리자면 적잖이 애를 씌웠다.
 
그러나 이제로는 그런 고생을 더 하자 하여도 좀체 없을 것이다. 고생도 하직을 하지 하니 귀엽고도 일변 안타까운 생각이 없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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