솥: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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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눈바람은 부닥치는데 조밥꽁댕이를 씹어가며 신작로를 닦는 것은 그리 수월치도 않은 일이었다. 떨면서 그 지랄을 또 하려니 생각만 하여도 짜장 이에서 신물이 날 번하다 만다.
 
그럼 하루를 편히 쉬고 그걸 또 하느냐, 회에 가서 새 까먹은 소리나마 그 소리를 졸아가며 듣고 앉았느냐―――얼른 딱 정하지를 못하고 그는 거리에서 한 서너번이나 주춤하였다. 허지만 농민회가 동리에 청년들을 말끔 다 쓸어간 그것만은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니었다. 오늘 밤에는 술집에 가서 저 혼자 들병이를 차지하고 놀 수 있으리라―――{{PD-old-50}}
 
그는 선뜻 이렇게 생각하고 부지런히 다리를 재촉하였다. 그리고 술집 가차이 왔을 때에는 기쁠 뿐만 아니요 또한 용기까지 솟아올랐다.
 
길가에 따로 떨어져서 호젓이 놓인 집이 술집이다. 산모퉁이 옆에 서서 눈에 쌓이어 그 흔적이 긴가민가하나 달빛에 빗기어 갸름한 꼬리를 달고 있다. 서쪽으로 그림자에 묻히어 대문이 열렸도 그 곁으로 불이 반짝대는 지게문 하나가 있다.
 
이 방이 즉 계숙이가 빌려서 술을 팔고 있다는 방이다. 문을 열고 썩 들어서니 계숙이는 일어서며 무척 반긴다.
 
"이게 웬 함지박이지유?"
 
그 태도며 얕은 웃음을 짓는 양이 나달전 처음 인사할 제와 조금도 변칠 않았다. 아마 어젯밤 자기를 보고 사랑하다던 그 말이 알톨같은 진정이기도 쉽다. 하여튼 정분이란 과연 희한한 물건이로군―――
 
"왜 웃어, 어젯밤 술값으로 가져왔는데." 하고 근식이는 말을 받다가 어쩐지 좀 제면쩍었다. 계집이 받아들고서 이리로 뒤척 저리로 뒤척 하며 또는 바닥을 뚜들겨도 보며 이렇게 좋아하는 걸 얼마쯤 보다가
 
"그게 그래봬두 두 장은 훨씬 넘을걸!"
 
마주 싱그레 웃어 주었다. 참이지 계숙이의 흥겨운 낯을 보는 것은 그의 행복 전부이었다.
 
계집은 함지를 들고 안쪽문으로 나가더니 술상 하나를 곱게 받쳐들고 들어왔다. 돈이 없어서 미안하여 달라지도 않는 술이나 술값은 어찌되었든지 우선 한잔하란 맧이었다. 막걸리를 화로에 거냉만 하여 따라부며
 
"어서 마시게유, 그래야 몸이 푸리유." 하더니 손수 입에다 부어까지 준다.
 
그는 황감하여 얼른 한숨에 쭈욱 들이켰다. 그리고 한잔 두잔 석잔―――
 
계숙이는 탐탁히 옆에 붙어앉더니 근식이의 얼은 손을 젖가슴에 묻어주며
 
"어이 차, 일 어째!" 한다. 떨고서 왔으니까 퍼그나 가여운 모양이었다.
 
계숙이는 얼마 그렇게 안타가워하고 고개를 모로 접으며
 
"난 낼 떠나유!" 하고 썩 떨어지기 섭섭한 내색을 보인다. 좀더 있으려 했으나 아까 농민회 회장이 찾아왔다. 동리를 위하여 들병이는 절대로 안 받으니 냉큼 떠나라 했다. 그러나 이 밤이야 어디를 가랴. 낼아침 밝는대로 떠나겠노라 했다 하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 근식이는 그만 낭판이 떨어져서 멍멍하였다. 언제이든 갈줄은 알았던 게나 이다지도 급자기 서둘줄은 꿈밖이었다. 자기 혼자서 따로 떨어지면 앞으로는 어떻게 살려든가―――
 
계숙이의 말을 들어보면 저에게도 번히는 남편이 있었다 한다. 즉 아랫묵에 방금 누워있는 저 아이의 아버지가 되는 사람이다. 술만 처먹고 노름질에다 후딱하면 안해를 두들겨패고 벌은 푼돈을 뺏어가며 함으로해서 당최 견딜 수가 없어 석달전에 갈렸다고 하는 것이다.
 
그럼 자기와 드러내놓고 살아도 무방한 것이 아닌가. 허나 그런 소리란 차마 이쪽에서 먼저 꺼내기가 어색하였다.
 
"난 그래 어떻게 살아. 나두 따라갈까?"
 
"그럼 그럽시다유." 하고 계숙이는 그 말을 바랐던 듯이 선뜻 받다가
 
"집에 있는 안해는 어떡허지유?"
 
"그건 염려 없어!"
 
근식이는 고만 기운이 뻗쳐서 시방부터 계숙이를 얼싸안고 들먹거린다. 치우기는 별로 힘들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제대로 그냥 내버려만 두면 제가 어디로 가든말든 할 게니까. 하여튼 인제부터는 계숙이를 따라다니며 벌어먹겠구나, 하는 새로운 생활만이 기쁠 뿐이다.
 
"낼 밝기 전에 가야 들키지 않을걸!"
 
밤이 야심하여도 회 때문인지 술꾼은 좀체 보이지 않았다. 인젠 안 오려니 단념하고 방문고리를 걸은 뒤 불을 껐다. 그리고 계숙이는 멀거니 앉아있는 근식의 팔에 몸을 던지며 한숨을 휴우 짓는다.
 
"살림을 하려면 그릇쪼각이라두 있어야 할텐데!"
 
"염려 말아, 내 집에 가서 가져오지!"
 
그는 조금도 거리낌없이 그저 선선하였다. 딴은 안해가 잠에 곯아지거든 슬며시 들어가서 이것저것 마음에 드는대로 후므려오면 그뿐이다. 앞으로 굶주리지 않아도 맘편히 살려니 생각하니 잠도 안올만치 가슴이 들렁들렁하였다.{{PD-old-50}}
 
[[분류:1935년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