솥: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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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두 못허구 앰할 소릴 해 그래, 눈깔들이 멀라구?" 하고 변명삼아 목청을 꽉 돋았다.
 
그러나 아무 효력도 보이지 않음에는 제대로 약만 점점 오른 뿐이다. 이러다간 본전도 못 건질 걸 알고 말끝을 얼른 돌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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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는 뭔데 대낮에 사내놈을 방으로 불러들이구, 대관절 둘이 뭐했드람?" 하여 안해를 되순나 잡았다.
 
안해는 독살이 송곳끝처럼 뾰료져서 젖 먹이던 아이를 방바닥에 쓸어박고 발딱 일어섰다. 제 공을 모르고 게정만 부리니까 되우 야속한 모양같다. 찬 방에서 너 좀 자보라는 듯이 천연스레 뒤로 치마꼬리를 여미더니 그대로 살랑살랑 나가버린다.
 
아이는 또 그대로 요란스리 울어대인다.
 
눈 위를 밟는 안해의 발자취소리가 멀리 사라짐을 알자 그는 비로소 맘이 놓였다. 방문을 열고 가만히 밖으로 나왔다.
 
무슨 짓을 하든 볼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는 부엌으로 더듬어 들어가서 우선 성냥을 드윽 그어대고 두리번거렸다. 짐작했던대로 그 함지박은 부뚜막은 위에서 주인을 우두먼히 기다리고 있다. 그 속에 담긴 감자나부랭이는 그 자리에 쏟아버리고 그리고나서 번쩍 들고 뒤란으로 나갔다.
 
앞으로 들고 나갔으면 좋은 테지만 그러다 안해에게 들키면 아주 혼이 난다. 어렵더라도 뒤곁 언덕 위로 올라가서 울타리 밖으로 쿵 하고 아니 던져넘길 수 없다.
 
그담에가 이게 좀 거북한 일이었다. 허지만 예전 뒤나 보러 나온 듯이 뒷짐을 딱 지고 싸리문께로 나와 유유히 사면을 돌아보면 고만이다.
 
하얀 눈 위에는 안해가 고대 밟고간 발자국만이 딩금딩금 남았다.
 
그는 울타리에 몸을 착 비겨대고 뒤로 돌아서 그 함지박을 집어들자 곧 뺑소니를 놓았다.
 
근식이는 인가를 피하여 산 기슭으로만 멀찌감치 돌았다. 그러나 함지박은 몸에다 곁으로 착 붙였으니 좀체로 들킬 염려는 없을 것이다.
 
매웁게 쌀쌀한 초승달은 푸른 하늘에 맹그머니 눈을 떴다.
 
수어리골을 흘러내리던 시내도 인제는 얼어붙었고 그 빛이 날카롭게 번득인다. 그리고 산이며, 들, 집, 낟가리, 만물은 겹겹 눈에 잠기여 숨소리조차 내질 않는다.
 
산길을 빠져서 거리로 나오려 할 제 어디에선가 징이 찡찡, 울린다. 그 소리가 고적한 밤공기를 은은히 흔들고 하늘 저편으로 사라진다.
 
그는 가던 다리가 멈칫하여 멍하니 넋을 잃고 섰다.
 
오늘밤이 농민회 총회임을 고만 정신이 나빠서 깜박 잊었던 것이다.
 
한번 회에 안 가는데 궐전이 오전, 뿐만 아니라 공연히 부역까지 안담이 씌우는 것이 이 동리의 전례이었다.
 
또 경쳤구나, 하고 길에서 그는 망설인다. 허나 몸이 아퍼서 앓았다면 그만이겠지, 이쯤 안심도 하여본다. 그렇지만 어쩐 일인지 그래도 속이 끌밋하였다.
 
요즘 눈바람은 부닥치는데 조밥꽁댕이를 씹어가며 신작로를 닦는 것은 그리 수월치도 않은 일이었다. 떨면서 그 지랄을 또 하려니 생각만 하여도 짜장 이에서 신물이 날 번하다 만다.
 
그럼 하루를 편히 쉬고 그걸 또 하느냐, 회에 가서 새 까먹은 소리나마 그 소리를 졸아가며 듣고 앉았느냐―――얼른 딱 정하지를 못하고 그는 거리에서 한 서너번이나 주춤하였다. 허지만 농민회가 동리에 청년들을 말끔 다 쓸어간 그것만은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니었다. 오늘 밤에는 술집에 가서 저 혼자 들병이를 차지하고 놀 수 있으리라―――{{PD-old-50}}
 
[[분류:1935년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