솥: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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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고 나갈거라곤나갈 거라곤 인제 매함지박과 키 조각이키쪼각이 있을 뿐이다. 근식은 아내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전부터 미뤄오던 호포를 독촉하러 면서기가 왔던
것을 남편이라고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왜 그놈을 방으로 불러들였냐고 눈을 부르뜨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에게 감자를 구워 먹이고
있는 아내는 어이없는 일이라 기가 콕 막힌 모양이었다. 가무잡잡한 얼굴에 핏대를 올렸다. 남편을 쏘아보며 기집이 좋다기로 그래 집안 물건을
다 들어낸담 하고 여무지개 종알거린다. 이때까지 까맣게 모르는 줄만 알았더니 아내는 귀신같이 옛날에 다 안 눈치다. 아내는 자기의 속옷과
맷돌짝을 훔쳐 낸 것에 샘과 분을 못 이기어 무슨 되알진 소리가 터질 듯 하면서도 그냥 꾹 참는 모양이었다. 남편은 고만 얼굴이 화끈
닳았다. 아내는 좀 살자고 고생을 무릅쓰고 바둥거리는 이판에 남편이란 사람은 속옷으로 술을 사먹었다면 어느모로 따져보든 곱지 못한 행실이다.
아내의 시선을 피할만치 몹시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하지만 남편된 도리로 변명을 했지만 사내놈을 방으로 불러 들여 뭐했냐는 남편의 말에
아내는 독살이 송곳끝처럼 뾰로져서 젖 먹이던 아이를 방바닥에 쓸어 박고 발딱 일어서 제 공을 모르고 게정만 부리니까 야속한 모양에
나가버린다. 아내가 나가고 근식은 방문을 열고 가만히 밖으로 나왔다. 그는 부엌을 더듬어 들어가서 함지박을 들고 아내에게 들키지 않게
뒤란으로 뺑소니를 놓았다. 근식은 산길을 빠져 거리로 나오려 할 때 징소리를 듣고서 오늘밤 농민회 총회인걸 알았다. 총회에 안나가면 궐전이
오전이고 공연한 부역까지 해야했다. 하지만 그는 망설이고 주춤하다가 농민회가 동네 청년들을 말끔 다 쓸어간 그것만은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니어서 혼자 들병이를 차지하고 놀수있겠구나 생각하고 부지런히 다리를 재촉하였다. 술집 가까이 있을 땐 기쁘고 용기까지 솟아올랐다. 문을
열고 썩 들어서니 계숙은 근식의 손에 들리 함지박을 보고 기뻐하며 술상 하나를 곱게 받쳐들고 들어왔다. 계숙은 탐탁히 옆에 붙어 앉더니
근식의 얼은 손을 젖가슴에 묻어주며 내일 떠난다며 썩 떨어지기 섭섭한 내색을 보인다. 농민회 회장이 찾아와서 동네를 위하여 들병이는 절대로
안받으니 냉큼 떠나라 했다는거다.
 
그 외에도 체랑 그릇이랑 있긴 좀 허나 깨어지고 헐고 하여 아무짝에도 못쓸 것이다. 그나마 들고 나설려면 안해의 눈을 기워야 할 터인데 맞은쪽에 빠안히 앉았으니 꼼짝할 수 없다.
이 말을 듣고 근식은 그만 낭판이 떨어져서 멍멍하였다. 계숙도 남편이 있었다. 그 남편은 술만 쳐 먹고 아내를 때리고 노름질만 해대서 석 달
전에 갈렸다 한다. 근식은 계숙을 따라 가겠다고 했다. 집에 있는 아내는 아랑곳곳 않고 이제부터 계숙을 따라다니며 벌어먹겠구나 하는 새로운
생활만이 기쁠 뿐이다. 밤이 야심하여도 농민회 때문인지 술꾼은 좀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방문고리를 걸어 잠근 뒤 불을 껐다. 계숙은
살림을 하려면 그릇 쪼각이라도 있어야 할텐데 하며 한숨을 지었다.
 
허지만 오늘도 밸을 좀 긁어놓으면 성이 뻗쳐서 제물로 부르르 나가 버리리라―――아랫목의 근식이는 저녁상을 물린 뒤 두 다리를 세워안고 그리고 고개를 떨어친 채 묵묵하였다. 왜냐면 묘한 꼬투리가 있음직하면서도 선뜻 생각키지 않는 까닭이었다.
근식은 아내가 잠에 곯아떨어지면 슬며시 들어가서 가져오면 그뿐이라며 이젠 굶주리지 않아도 맘 편히 살 생각하니 잠도 안오고 가슴이 들렁들렁
하였다. 한구석에 쓸어박혔던 아이가 잠을 깨어 칭얼거림에 근식은 그놈을 생각하면 할수록 싫었다. 그러나 계숙의 환심을 사려니깐 궁둥이를 안
뚜덕 일 수도 없었다. 달이 기울어서 지게문을 훤히 밝히게 되었을 때 계숙에게 돈 좀 쓰던 단골 뭉태가 찾아왔다. 계숙은 근식에게 밖에 나가
기다리라고 했고 근식을 신뢰하고 하는 통사정이라 속이 든든하였다. 그러나 뭉태는 들어오자마자 근식의 험담을 늘어놓았다. 이것도 필경 근식과
계숙의 사이가 좋으니까 배가 아파서 이간질하는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런데 계숙 역시 한통속이 되는 듯 하니 야속하기 이를 데 없었다. 눈을
밟고 섰으니 뼈끝이 쑤시도록 시려웠다.
 
웃방에서 내려오는 냉기로 하여 아랫방까지 몹시 싸늘하다. 가을쯤 치받이를 해두었더라면 좋았으련만 천장에서는 흙방울이 똑똑 떨어지며 찬 바람은 새어든다.
집으로만 가면 따스한 품이 기다리련만 왜 이 고생을 하는지 아내의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그는 설한에 이까지 딱딱 거리도록 몸까지 얼어간다.
오직 계숙이가 불러들이기만 고대하여 턱 살을 받쳐대고 눈이 빠질 지경이다. 그는 저도 까닭 모르는 약이 머리끝까지 치어 올라 들병이란 더러운
물건이고, 농군의 피를 빨아 먹는 여우다 하며 생각하고 있는데 때맞춰 계숙이가 불러들이지 않았다면 집으로 가려 하였다. 뭉태가 가고 조심히
근식을 들어오게 한 계숙은 추웠냐며 생글생글 웃는다. 근식은 그렇듯 분분하던 아까의 분노를 다 까먹었다. 그리고 뭉태에게 흉잡혔던 대가품을
하고 허풍까지 치며 없는 사실을 한참 늘어놓았다. 그는 첫 홰를 울리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집에 갔다 온다며 거리로 나온다. 초승달은
완전히 넘어갔다. 지금쯤 아내가 집에 돌아와 잠이 들었는지 궁금하였다. 바가지나 긁지 않을는지 염려스러웠으나 입을 벌리고 코를 골며 자고
있는 아내를 보고 그제서야 마음이 놓였다. 도둑같이 발을 디디며 부엌으로 들어섰다. 살림을 시작하려면 솥이 필요했다. 솥은 사 년 전 아내를
맞아들일 때 행복을 계약하던 솥이었다. 그러나 예측하였던 달가운 꿈은 몇 달이었고, 툭 하면 굶고 지지리 고생만 하였다 그는 조금도 서슴없이
솥을 쑥 뽑아 놓고 그 다음 걸 찾았으나 일을 그르치는 생각이다 하고 좀 미진하지만 솥만 들고 그대로 나와버렸다. 그는 그가 살던 집을
두서너 번 돌아다보고 술집으로 훵하게 달려갔다. 계숙의 의견대로 짐을 묶어 놓고 먼동이 트는대로 짊어만 매면 되도록 했다. 떠날 채비가 다
되자 그는 자리에 누워 날 새기를 기다렸다.
 
헌 옷대기를 들쓰고 앉아 어린 아들은 하룻전에서 킹얼거린다.
어느결에 깜빡 잠이 들었다. 아이가 킹킹거리며 머리 위로 기어올라와서 눈이 띄었는지 모르지만 "이리온 아빠 여깄다."하는 걸걸하고 우람한
목소리를 듣고 근식은 얼른 몸에서 땀이 솟을 만큼 속이 답답하였다. 아내의 부정을 현지에 맞닥뜨린 남편의 분노이면 찍소리도 못하고 죽을
도리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안해는 이 아이를 얼르며 달래며 부지런히 감자를 구워 먹인다. 그러나 다리를 모로 늘이고 사지를 뒤트는 양이 온종일 방아다리에 시달린 몸이라 매우 나른한 맧이었다. 손으로 가끔 입을 막고 연달아 하품만 할 뿐이었다.
 
계숙은 코골기에 세상만사 모르고 잔다. 그는 더욱 진땀만 흘렸고 계숙은 얼마 후에야 꾸물꾸물하며 겨우 몸을 떠들었다. 윗목에 있는 남편과
한참 지난 후 남편은 고개를 들고 안해의 눈치를 살펴 보았다. 그리고 두터운 입술을 째그리며 바로 데퉁스러이
아이를 보고서야 고개를 접더니 입을 꼭 봉하고 잠잠히 있을 뿐이었다. 날이 활짝 밝았다. 계숙의 남편은 떠나자며 제법 재촉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솥, 맷돌, 함지박, 보따리들을 한데 묶은 것이 무거워 보였으나 계숙의 남편은 조금도 힘드는 기색을 보이지 않고 아주 홀가분한
"아까 낮에 누가 왔다 갔지유―――" 하고 심심히 받으며 들떠보도 않는다.
몸으로 덜렁덜렁 밖을 향하여 나선다. 근식은 얼빠진 사람처럼 서서 웬 영문을 모르고 뒤따른다. 바람은 지면의 눈을 품어다간 얼굴에 뿜고 또
 
뿜고 하였다. 계숙은 앞에가고 계숙의 남편은 그 뒤를 따른다. 남편 뒤에 서 있는 근식은 동행하기를 간절히 권하는 계숙의 남편의 말에 아무
물론 전부터 미뤄오던 호포를 독촉하러 오늘 면서기가 왔던 것을 남편이라고 모르는 바도 아니었다. 자기는 거리에서 먼저 기수채었고 그때문에 붙잡히면 혼이 뜰까봐 일부러 몸을 피하였다. 마는 어차피 말을 꼴려하니까
대답 없이 우두커니 섰을 뿐이다. 이때 산모퉁이 옆길에서 두 주먹을 흔들며 헐레벌떡 달겨드는 것이 근식의 아내였다. 일은 벌어졌으나 말을
 
하기엔 너무도 기가 찼다. 얼굴이 새빨개지며 눈에 눈물이 불현 듯 고이더니 "왜 남의 솥을 빼 가는 거야?" "누껀 내가 알아? 갖다 주니깐
"볼 일이 있으면 나를 불러대든지 할 게지 왜 그놈을 방으루 불러들이고 이 야단이야." 하고 눈을 부르뜨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가져가지" 하고 계숙은 근식이 처만 못하지 않게 독살이 올라 소리를 지른다. 동네 사람들은 잔 눈을 비비며 하나 둘 구경을 나와 수군덕
 
거린다. 근식은 아내를 뜯어말리며 두 볼이 확확 닳았다. "왜 남의 솥을 빼가는 거야, 이 도둑년아!" 하고 계속 발악을 친다. 들병이 두
안해는 이 말에 이마를 홱 들더니 눈꼴이 잡은참 돌아간다. 하 어이없는 일이라 기가 콕 막힌 모양이었다. 샐쭉해서 턱을 조금 솟치자 그대로 떨어치고 잠자코 아이에게 감자만 먹인다.
내외는 금새 귀가 먹었는지 하나는 짐을 하나는 아이를 둘러 업은 채 언덕으로 유유히 내려가며 한 번 돌아보는 법이 없다. 아내는 분에
 
복받치어 그만 눈 위에 털썩 주저앉으며 체면 모르고 울음을 놓는다. 근식은 "아니야 글세, 우리 것이 아니라니깐 그러네 참" 하며 눈 위의
이만하면, 하고 남편은 다시 한번
아내를 잡아 일으키며 거의 울상이 되었다.
 
"헐 말이 있으면 문밖에서 허든지, 방으로까지 끌어들이는 건 다 뭐야?" 분을 속갔다. 그제서야
 
"남의 속 모르는 소리 작작하게유. 자기 때문에 말막음하느라구 욘본 생각은 못하구."
 
안해는 가무잡잡한 얼굴에 핏대를 올렸으나 그러나 표정을 고르잡지 못한다. 얼마를 그렇게 앉았더니 이번에는 남편의 낯을 똑바로 쏘아보며
 
"그지말구 밤마다 짚신짝이라두 삼어서 호포를 갔다 대게유." 하다가 좀 사이를 두곤 들릴듯 말듯한 혼잣소리가
 
"기집이 좋다기로 그래 집안물건을 다 들어낸담!" 하고 여무지게 종알거린다.
 
"뭐! 집안물건을 누가 들어내?"
 
그는 시치미를 딱 떼고 제법 천연스리 펄쩍 뛰었다. 그란 속으로는 떡메로 복장이나 얻어맞은 듯 찌인하였다. 입때까지 까맣게 모르는줄만 알았더니, 안해는 귀신같이 옛날에 다 안 눈치다. 어젯밤 안해의 속곳과 그제밤 맷돌짝을 후므려낸 것이 죄다 탄로가 되었구나, 생각하니 불쾌하기가 짝이 없다.
 
"누가 그런 소리를 해, 벼락을 맞을라구?"
 
그는 이렇게 큰소리를 해보았으나 한팔로 아이를 끌어다려 젖만 먹일 뿐, 젊은 안해는 숫제 받아주지 않았다.
 
안해는 샘과 분을 못이기어 무슨 되알진 소리가 터질듯 질듯 하면서도 그냥 꾹 참는 모양이었다. 눈을 알로 내려깔고 색색 숨소리만 내다가 남편이 또다시
 
"누가 그따위 소릴 해 그래?" 하 제에야 비로소 입을 여는 것이―――"
 
"재숙 어머이지 누군 누구야."
 
"그래, 뭐라구?"
 
"들병이와 매맞았다지 뭘 뭐래, 맷돌허구 내 속곳은 술사먹으라는 거지유?"
 
남편은 더 뻗치기를 못하고 고만 얼굴이 화끈 닳았다. 안해는 좀 살자고 고생을 모릅쓰고 바둥거리는 이 판에 남편이란 궐짜는 그 속곳을 술사먹었다면 어느모로 따져보든 곱지 못한 행실이리라. 그는 안해의 시선을 피할만치 몹시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마는 그렇다고 자기의 의지가 꺾인다면 또한 남편된 도리도 아니었다.
 
"보두 못허구 앰할 소릴 해 그래, 눈깔들이 멀라구?" 하고 변명삼아 목청을 꽉 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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