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악산/상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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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zzlet the bot (토론 | 기여) 잔글 로봇: 틀 바꿈: 제목 |
// 제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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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번째 줄:
나이 이십이 될락말락하고 얼굴은 시골구석에도 이런 일색이 있던가 싶을
만한 일색이라. 은조사 겹저고리에 세모시 대린 치마를 입고 서늘한 바람에
추운
어여쁘더라.
65번째 줄:
(부인)“글쎄, 좀더 구경하다가 잘까. 내가 혼자 툇마루에 앉았다가 오동나무
밑에서 인기척이 있는 듯하여 무서워서 들어왔다.”
(금홍) “아직
88번째 줄:
(금홍)“저 달은 오늘밤에 서해 바다까지 갈 터이니, 아씨께서는 저 달만 쫓아가시면
오늘밤에 서울이야 못 가겠습니까.”
(부인) “하하하,
104번째 줄:
(부)“하하하, 옆 찔러 절을 받는다더라마는, 꾸짖어달라 때려달라 하는 년은
너밖에 없겠다. 오냐, 네가 나를 부모같이 믿는다 하니 그 마음 변치 말고
있거라.
너는 팔자에 없는 고생을 하니 불쌍하다.”
120번째 줄:
(금)“이애, 꿈 같은 말도 한다. 사십이 못 된 마님이 늙어 돌아가시려면 나는
그
(금)“젊으신 때에 고생을 좀 하시다가 노래에 팔자 좋게 지내시면 좋지요.”
138번째 줄:
부인과 금홍이가 서로 사정을 말하면 서로 위로를 하느라고 밤 가는 줄을 모르고
앉았는데, 안방 뒷마당에서 건넌방 뒤로 돌아오는 모퉁이에 달빛 없는
지붕 처마 그림자 밑에서 개가 컹컹 짖는다.
“이 개 이 개, 이 빌어먹을 개 들어가거라. 왜 따라나와서 짖느냐.”
154번째 줄:
있는 자식 같으면 그런 아내는 당장 교군을 거꾸로 태워서 쫓아보내고 사당에
고유하고 다시 장가를 들겠다. 너의 오라비 댁인가 태상노군의 딸인가
그것은 서울 재상의 딸이나 되는 고로
년은 재상집 종년이라고 시골 양반은 제 발샅의 때만치도 몰라 본단
말이냐. 이애, 사랑에 나가서 너의 아버지 여쭈어라. 금홍이란 년을 때려죽이겠다.
174번째 줄:
하는 것은 홍참의 목소리라.
(남순)“어머니가 금홍이란 년을 때려 죽인댔어요.”
(홍참의)“금홍이를
195번째 줄:
(홍)“아서라, 이후에 다시는 남의 말 엿들으러 다니지 마라. 계집아이가 그리하면
사람 못 되느니라.
내일 아침에 그년 불러 꽤 꾸짖겠다. 어서 들어가서 잠이나 자거라.”
226번째 줄:
나 죽자. 그런 인생들이 살아서 무엇한단 말이냐. 오냐, 그만두어라.
오늘밤 내로 너를 쳐 죽이고 나까지 죽어서 여러 사람의 소원이나 풀어주겠다.”
하더니 남순이를 쾅쾅 두드리며 독살풀이를 하니 온 집안 사람들이 안방으로
구름같이 모여드는데, 홍참의는 눈살을 잔뜩 찌푸리고 안으로 들어오다가
245번째 줄:
초취부인 소생 아들의 아명은 백돌이요 관명은 철식이니, 일곱 살에 그 어머니가
죽고 여덟 살에 계모가 들어오고, 열네 살에 장가를 드니 신랑 신부가
나이
백돌이가 자랄 때에는 계모 솜씨에 고생도 많이 하였으나, 장난 몹시 하기로
282번째 줄:
김씨부인이 남순이를 미워서 쳤던지 귀애서 쳤던지 아프기는 일반이라.
홍참의가 남순이를 데리고 안방 미닫이 앞으로 가서 앉더니 남순의 머리를
301번째 줄:
속이 아플까 염려가 되나 보구려. 내가 며느리에게 무엇을 그리 심히
굴어서 그런 소리를 하시오? 그래, 내 속으로 나온 자식은 매를 맞아도 애처로운
마음이 조금도 없이 그 어린 남순이더러 악담을 하고 있단 말이요.
남순이가 시집을 가서 며느리 볶는 시어미를 만나서 매보다 더 아프로
쓰린 꾸지람만 듣고 고생을 하면 영감 속이 시원하겠소. 나는 우리 남순이를
314번째 줄:
“요년 금홍아, 네가 무엇이라, 하였누. 너 같이 요망한 년이 언감생 코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온단 말이냐.
터이나, 조년 어디로 달아나지 못하게 꼭 붙들어 두어라.”
334번째 줄:
이씨부인이 그러한 시집에서 날을 보내고 해를 보내는데, 하루 열두 시로 때
김씨부인은 그 며느리를 달달 볶는 솜씨가 날로 늘고, 남순이는 그 어머니
348번째 줄:
대하여 보니 말이 깍 막혀서 한 마디도 아니 나오구려.”
(백) “말을 들으면 젊은 놈이 마음만 상하지 유익한 곳 있소.”
(부인)“에그,
368번째 줄:
의뜻이 맞아서 귀애하신다오. 우리 어머니를 추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이
다 그러하지, 누가 양자라고 푸대접하고 전실 소생이라고 미워하는 사람이
세상에 그리 흔하겠소.
눈이 눈물이 가랑가랑하니 백돌이가 그 눈치를 보고 다시 부인을 위로 한다.
385번째 줄:
(부)“여보, 여편네라고 업신여겨서 놀림감으로 말씀하시지 마오.”
(백) “허허허,
사람을 놀려, 허허허”
401번째 줄:
마누라, 마누라는 집에서 고생을 참고 있어 보오. 나는 타궁에
가서 공부나 하고 있다가 고국에 돌아오거든 그때는 어찌하든지. 미리 말할
것은 아니나 마누라도 차차 기를 펴고 살살이 있을 터이니 부디 과히 근심마오.”
부인이 그 남편이 타국으로 공부하러 가겠다 하는 말을 듣고 얼굴에 근심하던
빛을 감추고,
430번째 줄:
같이 마음을 먹고 나설 터이니, 내가 외국에 가서 몇 해가 되든지 편지
한 장 아니 부칠 터이닌 그리 알고 마누라도 내게 편지 부칠 생각을 마오.
옛적에 오기란
하다가 그 모친이 죽어도 분상도 아니하고 공부만 하오니 증자가 오기를 끊으셨고,
그 후에 노나라에 벼슬할 때에 노나라에서 제나라를 치고자 하여 오기로
443번째 줄:
일이 있소. 나는 하늘같이 중한 부모의 은혜를 저버리고 바다같이 깊이
정든 아내를 잊고 만리 타국에 가서 공부하려 하는 것은 나라를 위하는
생각에서 나온 마음이요.
변으로 여기시고 못 가게 하실 터이니 나는 아버지 모르게 도망질하겠소.
날만 새면 갈 터이니 나 없는 동안에 부디 몸조심하여 잘 지내오.”
457번째 줄:
같은 영웅이야 노나라에 공부하러 갈 때에 그 아내를 그렇게 못 잊어 하였을
리가 있소. 대장부가 일구이언은 못하는 것이니, 부디 날 생각 마시고 공부
성 취한
있더라도 고생을 낙으로 알고 있을 터이니, 내 걱정은 조금도 마시오.”
475번째 줄:
이별하는 날이라. 이별의 회포는 오장이 녹는 듯 스는 듯하여 이 밤이 새지
말고 백년 같이 길었으면 좋을 듯이 여기나, 세상 만사가 사람의 소원대로
되는 것
적적한 깊은 밤에 안방 식구는 잠이 깊이 들었건마는 이씨부인은 안방 식구가
492번째 줄:
하면서 일어나서 사랑으로 나가는데, 부인이 그 남편 나가는 것을 보며 아무
소리 없이 앉았다가 쌍창 미닫이 문지방 위에 고개를 푹 수그려 엎드리더니
소리 없이 우는데, 정신을 잃었던지 날이 활짝 밝도록 모르고 있더라.
“아씨 아씨, 일어납시오. 앞뒷문을 열어 놓고 여기 이렇게 계시면 못씁니다.
525번째 줄:
그날 아침에 홍참의 부자가 아침밥을 먹으러 들어왔는데 본래 홍참의 집 가
안방에 모여 있어서 홍참의 밥 먹는 것을 보다가 홍참의가 밥을 먹고
나간 후에 다른 사람들이 밥을 먹는데, 홍참의는 말이 드문 사람이나 밥상을
542번째 줄:
볼 만한 책이 그득한데, 해국도지를 빌려다가 본단 말이냐. 이애, 너도
개화하고 싶으냐. 어, 저 자식이 서울 몇 번을 갔다오더니 사람 버리겠구.”
(김)“서울로 장가들었다가 그만한 처가덕도 못 보아서 쓰겠소.”
554번째 줄:
(김)“에그, 영감은 별말씀을 다 하시구려. 집이 망하기는 왜 망해요. 개화한
아들 있겄다, 개화한 며느리 있것다, 집이 잘되지 망할 리가 있소.
벌써 개화한 며느리 덕을 많이 보았소. 욕을 아니 먹을까, 악담을 아니
들었을까……여보, 개화한 며느리가 아니면 무슨 인기에 시어머니더러 욕하고
572번째 줄:
하는 금홍이라.
백돌잉가 숟가락을 치우고 선뜻 일어나더니 이씨부인을 언뜻 건너다보며
나아가니, 이씨부인이 구슬 같은 눈물이 똑똑 떨어지며 고개를 윗목으로
돌이키고 앉았다가 쏟아지는 눈물을 참지 못하여 일어나 나가더니 건넌방으로
589번째 줄:
바라보고 섰는데, 그 남편은 보이지 아니하고, 안방에서 수군거리는 소리
잠깐 들리거늘, 이씨부인이 돌아다보니 안방 미닫이에 붙인 유리에 시어머니
이마가 꼭 붙어서 내다본다.
제 남편에게 미쳤느니, 아들이 그 아내에게 허기를 졌느니 하며 신이
나서 흉보는 시어머니 목소리가 귀에 펄펄 들어오나, 이씨부인이 그날은
622번째 줄:
절을 꾸벅꾸벅하며,
“소인 문안드립니다.”
일변으로 큰사랑 마당으로 앞서 들어가며 원주서방님 오신다고 노문을
놓는다. 백돌이가 큰사랑 마루 끝에 짚신을 벗어 놓고 황토가 뚝뚝 떨어지는
639번째 줄:
이 사람, 자네가 편지 좀 가지고 오기로 어떠할 것 무엇 있나. 아무리 없으니
말일세마는, 요새는 내 딸이 자네 안부모에게 귀염을 좀
하면서 눈물을 씻는다.
655번째 줄:
정이 찰떡같이 들었던 아내라. 원주서 서울로 떠나올 때는 외국으로 유학하러
가려는 생각만 골똘한 중에 아내를 불쌍히 여기는 생각이 오히려 적더니,
그 처가에 와서 장인 장모의 모양을 보고 홀연히 없던
난다.
671번째 줄:
듯이 말하였더니 이러한 마음으로 그런 말을 하였던가 싶게 생각이 난다.
한 방에 세 사람이 입을 봉한 듯이 말없이 앉았다가 이판서의 부인이 그
사위 대접으로 먼 말을 하는데, 한 사람의 말문이 열리더니
이판서도 말을 하고, 홍철식이도 말을 하더니, 이판서 내외도 딸 생각을
잊고 홍철식이도 아내 생각을 잊었더라.
687번째 줄:
이판서가 그 사돈에게만 마음이 복잡하였고, 백돌이를 귀해하던 마음은 사위
되기 전보다 십 배나 백 배나 더하여 그 사위를 외국에 보내 공부시키려는
생각이
뜻밖에 그 사위가 서울 온 것을 보고 아무쪼록 사위를 꾀어서 타국으로 유학시킬
704번째 줄:
간 곳을 몰랐더니, 그 후에 그 아들이 서울 갔다는 소문을 듣고 서울로 전인하여
이판서에게 편지하되, 내 자식놈이 서울 갔다 하니 곧 내려보내라 하였거늘,
오래 숨기지는 못할 일이라. 홍철이가 제 마음으로 일본 간 것같이 말을 만들어서
편지 답장을 하였는데 홍참의가 그 편지를 보다가 편지를 짝짝 찢으며
716번째 줄:
개화한 사람은 그따위 버릇을 한단 말이냐. 이애, 원주 구석에 사는 만만한
홍참의는 세력 좋은 사돈 솜씨에 자식 하나도 못 기른단 말이냐. 이 애
고두쇠야, 네 이 길로 다시 서울 가서 이판서 대감께 댁 서방님
하여라. 나는 편지하기도 싫다. 네가 가서 이판서 대감을 뵙고 지금
네가 듣고 본대로 한 마디 빼지 말고 말하여라.”
733번째 줄:
(김)“영감께서 그런 일을 당해 싸외다. 자식 장가를 들이거든 무엇을 복고
배울 것 있는 집으로 보냈으면 그런 일이 날 리가 있소. 그러나 철없는 백돌이는
책망할 것도 없소. 사돈집에서 그런 법이 있단 말이요.
꾀어서 대강이를 깎아서 일본으로 들여보내는 그 심사가 무슨 심사란
말이요. 영감은 아무리 시골 사시고 이판서는 아무리 세력 좋은 재상이기로
746번째 줄:
(김)“영감도 참 딱하시오. 지금 영감께서 사돈에게 그런 업신여김을 보시면서
그런 말씀을 하시오. 나는 그 세력 좋은 이판서의 따님을 며느리님으로
모시고 있느라고 속도
되었을 것이요.”
764번째 줄:
들어간다.
이씨부인이 금홍이를 불러 앞에 앉히고 눈물이 비 오듯 하며,
(부인) “이애 금홍아, 세상에 이런 년의 팔자가 있단 말이냐. 내가 이 방구석에
777번째 줄:
까닭이라더냐. 서방님 말씀에는 나라를 위하여 공부할 생각으로 가노라
하셨으나, 서방님이 계모어머니에게 설움을 조금만 덜 받으실 지경이면 당초에
소생 아드님 한 분 있는 것을 원수같이 여겨서 아드님의 그림자만 보아도
미워하고, 목소리만 들어도 미워하니, 그 아드님된 서방님은 어디로 도망이나
789번째 줄:
이 댁 영감마님께사 사돈에게 그렇게 틀려 화를 내시니, 그 미안이 어디로
가겠느냐, 죽을 년은 나뿐이다. 이애 금홍아, 나는 오늘밤 내로 죽어서
세상을 모를 터이니, 너는 이 댁에서
팔자 좋게 잘 살아라.”
803번째 줄:
가령 돌아가시지는 아니하더라도 일평생 한이 되어 자나깨나 가슴이
아플 지경이면 돌아가시는 아씨 신세만 못하실 터이올시다. 맙시오 맙시오,
돌아가실 생각을 하시지 맙시오.
한될 일을 장만하여 드릴 수야 있습니까. 대감께서는 남정의 마음이 시니
일시에는 비창하시더라도 대범하신 마음이라, 오래되면 잊으실 터이오나
816번째 줄:
(부)“이애 금홍아, 울지 말고 일어나가라. 네가 저러하면 내가 마음을 더욱
진정할 수가 없다. 오냐, 염려 마라, 네 말을 들으마, 내가 꼭 죽기로 결심하였더니,
네 말을 듣고
일어나거라. 네나 내나 타고난 고생이니 억지로 면하려면 되겠느냐.
내가 오늘부터는 이 설움보다 더한 설움이 있더라도 참고 있어보마. 살아
830번째 줄:
붙이는데, 세월이 갈수록 고생은 점점 더하더라.
본래 홍참의는 그 며느리를 불쌍하게 여기는 터이라. 그 후취부인이 방정을
떨 때마다 홍참의 마음에 김씨부인이 너무 심한 줄로 알고 있으나, 만일
홍참의가 며느리 역성하는 모양을 보이든지 며느리를 귀애하는 모양을 보일
847번째 줄:
본래 이판서는 , 개화를 좋아하던 사람이요, 젊은 사람을 보면 공부하라
권하기 잘하던 사람이라. 이판서가 아무리 그 사위가 일본 간 것을 모른다
하기로,
사돈이 백돌에게 편지하여 서울로 불러다가 일본으로 보낸 줄로만 알고 사돈을
원수같이 알고 있는데, 그날부터는 그 며느리까지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는데,
864번째 줄:
간다.
(하인들)“장서방, 오시오.”
(하)“장서방,
882번째 줄:
고두쇠가 홍참의 야단치던 몇 갑절을 보태서 말을 하였는데, 이판서는
그 말이 귀에 들어가는지 아니 들어가는지, 한편으로 고두쇠 말을 들으면서,
한편으로 방에 있는 사람을 대하여 무슨 말을 한다.
(이) “이
921번째 줄:
심부름을 잘하였느니 못하였느니 하면서 분풀이는 내게다 하느라고 볼기를
죽도록 맞을 지경이면, 원주서 서울까지 안팎 네 번을 다녀와서 노독도
아니 풀린 놈이 장독이나 나서 죽을까 겁이 나서 중로에서 도망이나
생각한즉 젊은 계집을 내버리고 도망하면 어느 놈의 좋은 일을 할지 모르니
그도 분한 일이라.
944번째 줄:
계집이 반색을 하며 대답하는 말이,
“거 누구요. 최서방이요?
소리가 너무 은근하니, 고두쇠가 의심이 버썩 나서 아무 소리 없이 행랑
부엌 속의 컴컴한 곳으로 쓱 비켜서며 목소리는 아니 내고 빈 담뱃대를 부뚜막
958번째 줄:
(고) “이년,
무엇이야. 최서방이 어떠한 놈이냐. 이년, 바로 대어라. 어름어름하다가는
당장에
그렇게 대드는 서슬이 당장에 사람을 쳐죽일 것 같은데, 고두쇠의 계집은 어찌
976번째 줄:
우리 댁 영감께서는 날마다 벼르시는 말이, 이놈 고두쇠란 놈이
서방님을 못 데리고 오거든 이 넘을 쳐 죽인다 하시니, 이녁은 죽기는 일반이니
만만한 계집이나 쳐 죽이고 죽구려.
그 소리를 듣더니 실쭉한 마음이 나서 계집에게 났던 분은 좀 잊었던지,
991번째 줄:
가만히 서서 생각을 한다.
‘조년이 나 없는 사이에 정녕 사잇서방을 얻은 것이로구. 최가,
어떠한 놈이고, 이 동네 최가라고 그런 듯한 놈이 없는데……. 조년을 좀
잘 달달하여야지 어름어름하면 조 여우년이 생시치미를 떼이렷다. 그러나
1,008번째 줄:
(계집)“내가 닫고 싶어 닫쳤나. 어디 갔다 왔거든 천연히 들어올 일이지 왜
부엌 구석에 숨어 섰다가 남더러 죽일 년이니 살릴 년이니 하며 생트집은
왜
(고)“요란스럽다. 나는 간신히 해지기를 기다려서 들어왔는데 그리 떠들어.”
1,026번째 줄:
것을 보더니 계집이 새로이 성이 나서 대답도 아니하고 싹 돌아앉는다.
(고)“이애, 요새는 네 뒷모양 어여쁘구나.
(계집) “내 대강이에 기름을 바르든지 말든지 걱정이 무엇이야.”
1,044번째 줄:
(고)“이애, 잔소리말고 이리 좀 돌아앉아라. 조용히 물어볼 일 있다.”
(계집)“물어보기는 무엇을 물어보아. 최가가 어떠한 놈이냐 물어보려고…….
주리를 틀며 초사를 받아보오, 누가 말하나…….”
1,057번째 줄:
(계집)“여보, 바로 말하오. 참 어디로 갈 터이요. 왜 남의 얼굴만 보오.
어서 대답 좀 하오.
말이 있어.”
1,071번째 줄:
하면서 방글방글 웃는 서슬에 고두쇠가 나중 일은 어찌 되든지 계집 웃는 눈으로
정신이 쑥 들어가며 갓, 망건을 턱턱 벗어 걸고 부엌으로 나가더니 웃통
활짝 벗어놓고, 아랫통 활활 씻고 걷고 활활 씻고 들어오더니,
(고) “오냐,
1,093번째 줄:
내다보며,
(계집) “거 누구요,
하며 은근히 불러들이는 모양인데, 그 말이 뚝 떨어지며 어떠한 젊은 남자가
1,108번째 줄:
하더니 고두쇠 옆으로 바싹 대들며 옆구리를 꼭 찌르고 귀에 말 두어 마디를
소곤소곤하니, 고두쇠가 입이 떡
상전같이 대접하며 수작이 어우러지더라.
1,126번째 줄:
본래 홍참의 집 건넌방 뒤에 오동나무가 있고 나무 밑에 담이 있는데, 지나간
달
밑 담 위에서 기왓장 떨어지던 것은 최치운이나 불측한 마음을 먹고
홍참의 며느리 앉은 것을 넘겨다보다가 기왓장을 떨어뜨린 것이라.
1,143번째 줄:
두밤중 가운데 시퍼런 칼을 빼어들고 담을 넘어가서 홍참의 집안 건넌방 문을
찔러 죽이리라 하던 생각도 있었고, 내가 고이한 놈의 마음이다, 사부가 부녀를
탐내서 이러한 마음을 먹으면 일도 마음대로 될 리도 없거니와, 내가
1,157번째 줄:
홍철식이가 일본으로 갔다 하는 소문이 나면서 최치운이가 춤을 덩실덩실
추며 옥단의 허리춤에 돈을 퍽퍽 집어넣는데, 옥단이가 저의 서방더러
감히 그 말을 못하였다가 그날은 고두쇠에게 수상한 눈치를 보이고,
제가 최가와 상관이나 있는 줄로 의심을 둘 듯하여 고두쇠에게까지
말하였는데, 고두쇠는 그때 신세가 막다른 곳을 당한 자이라, 최가 만나
1,173번째 줄:
말을 할 듯 할 듯하다가 아니하고 홀짝홀짝 울거늘 김씨부인이 핀잔을 준다.
(김)“요 방정맞은 년, 식전참에 계집년이 왜 쪽쪽 우느냐?”
(옥) “쇤네는
1,193번째 줄:
(부인)“이애, 무슨 말이냐. 염려말고 내게만 말하여라. 무슨 말을 듣든지
옥단이가 문밖으로 나가더니 코를 푸는 시늉을 하다가 부엌으로 살짝 내려
1,208번째 줄:
(부)“요 방정맞은 년, 보기 싫다. 식전참에 왜 들어와서 그런 소리만 하느냐
그래 네 마음에는 . , 영감께서 첩 두시는 것이 그리도 기쁘냐. 요년, 꼴
보기 싫다,
하면서 입에서 찬 기운이 나고 눈에서 독기가 똑똑 떨어지도록 옥단이를 흘겨보는데,
1,223번째 줄:
하면서 부인의 앞으로 바싹 다가앉거늘, 김씨부인이 아무리 보아도 옥단이 가
무슨 큰일이 있는 것 같은지라. 상전의 요약과 종년의 요약이 같이 모여 마주
비위를 꼭 맞추려고 애를 쓴다.
1,240번째 줄:
마님 마님, 요사이 건넌방 아씨 일을 아십니까?”
(부)“응, 무슨 일……어서 말 좀 하여라.”
남순이를 말끄름 보며,
1,256번째 줄:
분풀이는 하고 말겠다.”
(옥) “마님께서 말씀이 그러하시지, 약사발이야 어찌 안깁니까.”
(부) “너
1,274번째 줄:
(부)“네 말이 옳기는 옳다마는 참을 일이 따로 있지, 그런 일을 어찌 참고
버럭버럭 나던 터이다. 부르트는 김에 그것을 어떻게 처치하여 버리겠다.”
1,290번째 줄:
선 것같이 싫은 생각이 난다.
며느리 죽이고 싶은 생각이 아무리 골똘하나, 제 몸에 원수를 갚을까
마음이 생기더니 악독한 마음이 자라 목 움츠러지듯 오무라져 들어간다.
1,306번째 줄:
(옥) “마님
, 마님께서 쇤네 말씀만 들으실 것 같으면 며칠이 못되어서 마님께서
평생 소원을 푸실 터이오니
(부)“좋을 도리가 있으면 듣다 뿐이겠느냐.”
1,321번째 줄:
여겼다더냐. 그것이 고약을 그렇게 부리더니 필경 내 집을 망하여 놓는구나.
글쎄 네 생각하여 보아라. 양반의 집에서 그것을 어찌 살려둔단 말이냐.
이애, 어떻게 내게 원귀 되지 아니하게 죽일 수 없겠느냐?”
(옥) “쇤네를
1,339번째 줄:
‘상전이라고 겁을 내어서 하고 싶은 말을 못하면 병신이지. 이번을 넘기면
요런 좋은 기회를 또 만날 수 있나.
아니 풀어주면 내가 좋을 도리를 아니 가르쳐 줄걸.’ 이러한
생각을 하면서 눈을 깜작거리고 앉았는데, 부인이 제풀에 놓치며 옥단이를
1,355번째 줄:
이런 큰일을 하면 마님께서 쇤네를 속량이라도 하여 주시고, 단구역 마을
앞뜰에 있는 보논을 다 주시더라도 아까울 것 무엇 있습니까. 마님께서
생각하여 봅시오. 그 일이 좀 큰일이오니까? 이댁 흥망이
마님께서 소원은 혼자 푸시고 나중에 아무 탈이 없이 될 터이니, 그런 재미있는
일이 어디 또 있습니까. 만일 나라를 위하여 그런 공을 이루면 이화대수장을
1,371번째 줄:
내 임의로 어찌 너를 논 한 마지기를 줄 수가 있느냐.”
(옥)“쇤네가 논이야 참 바라지 아니합니다. 속량이나 하여 주시면 그런
어디 있겠습니까.”
1,390번째 줄:
(옥) “여보
작은아씨,
(남)“그럼, 그것을 못 알아들어. 누구는 귀 없나. 남을 어린아이로 아 네.”
1,403번째 줄:
아나베. 건넌방 언니라 하면 나부터 이가 갈려……. 나더러 여우 같다 하던
것이 누구라고. 언니가 금홍이를 데리고 한 말이지. 그런 소리하던 사람은
누구든지 치악산 호랑이에게 물려 뒈졌으면…….”
(옥) “응,
1,425번째 줄:
들어온다.
김씨부인이 수심이 첩첩한 모양으로 말없이 앉았으니 홍참의가 그 부인을 흘끔
건너다보다가,
1,491번째 줄:
(부)“에그, 참을성도 없으시오. 오늘밤 내로 영감께서 다 아실 일을 그리하시오.
두 말 말고 이리 좀 오시오.”
안뒤꼍문을 열고 나가는데 홍참의가 따라 나간다.
1,509번째 줄:
부인이 홍참의 귀에 대고 소곤소곤하며 이야기 시작을 하는데, 캄캄한 밤이
점점 적적하여지더니 웬 사람 하나 발자취 소리 없이
홍참의 집 안 뒤담 밑에 가서 가만히 섰다가 담을 넘겨다보는데, 그 담은
홍참의 집 안방 뒤꼍이라. 김씨부인은 말 없이 홍참의를 꾹꾹 찌르는데 홍참의는
1,526번째 줄:
묻는지 들리지 아니하나, 그 여편네 대답 소리는 잠간 들린다.
(여편네)“여보, 마음도 급하기도 하지, 오늘은 너무 이른걸…….
아직 잠도 아니 들었는데…….”
1,545번째 줄:
담뱃대 물고 가던 사람이 그 담 밑으로 지나다가 흘긋 쳐다보더니 깜짝 놀라는
모양으로,
“에그, 이것이 무엇인고?”
1,562번째 줄:
아무도 나오는 살마은 없는데, 담 밑에 자빠졌던 사람이 제풀에 툭툭 털고
“어, 그것 괴상한 일이로구. 하마터면 큰일날 뻔하였구. 그러나 이 집에서는
1,579번째 줄:
그런 헛장담을 하며 몽둥이를 끌고 오동나무 밑으로 향하여 나오는 것은 고두쇠의
목소리라. 오동나무 밑에서 담뱃대 찾던 사람이 그 소리를 듣고 마주
누구냐, 소리를 하며 감히 썩 대들지 못하는 모양이라. 담뱃대 찾던 사람이
제가 도적 아닌 줄을 발명하느라고 황급한 목소리로 도적놈에게 발길에
1,590번째 줄:
처음 뵙는 양반이지마는 너무 가엾은 노릇이요. 나도 타도 타관으로
먼 길을 많이 다니는 사람이라. 타관 양반이 저런 일 당하는 것을 보면
내가 당한 것 같습니다. 자, 어두운데 살펴 가시오.”
“평안히 계시오.”
1,611번째 줄:
두었던 문이라. 그 문은 열 때면 소리가 좀 나는 문이라. 홍참의가 문을
여는데 도둑놈이 남의 집 문을 열 듯 아무쪼록 소리 아니 나도록 하느라고
얼른 열지도 못하고 조금씩 여는데, 문은 다시 열지도 못하고 소리만 나는지라.
고두쇠가 아니 들어가고 어디 있었던지 몽둥이를 끌고 헛기침을 하며 쫓아
나오는 모양이라.
1,630번째 줄:
체하고 호들갑을 부린다.
“오늘밤에 소인 아니더면 댁에서 도적을 맞을 뻔하였습니다.
담을 뛰어 넘어가다가 소인에게 쫓겨 달아났습니다. 소인이 오늘 밤에는
잠자지 말고 밤새도록 순경을 돌겠습니다.”
1,649번째 줄:
(고)“옥단이가 초저녁부터 가슴앓이가 일어나서 정신을 모르고 앓습니다.”
(홍)“오냐, 그만두고 나가거라.
중문을 닫아걸고 홍참의가 부인의 발을 주물러 주려 하니 부인이 그만두라
하면서 일어서더니, 한 발을 자축자축하며 안방으로 들어가는데 홍참의가
1,666번째 줄:
(부)“영감, 집이 이렇게 쉽게 망한단 말이요. 이런 일을 남이 알면 홍씨 댁
가문이 결판날 터이요, 이런 일을 덮어두면 이 집안이 무엇이 되오.”
담배를 붙여 물고 아무 소리 없이 담배 연기만 훅훅 뿜고 앉았더라.
그날 밤 일은 다 옥단의 꾀에서 나온 일이라. 오동나무 위에 올라섰던
1,682번째 줄:
(홍)“며느리가
들어와서 내 집을 망해 놓아. 그럴 변이 어디 있을구.
마누라, 사당에 고유하고 며느리를 비상이나 먹여 죽입시다.”
1,697번째 줄:
눈에 밟혀서 이 댁에 못 있겠소.”
(홍)“마누라가 그럴 것 무엇 있소.”
(부) “여보,
1,721번째 줄:
(부)“영감께서 어련히 깊이 생각하고 말씀하겠소마는 나중 일을 좀더 생각하고
말씀하시면 좋겠소.”
(홍) “응,
1,743번째 줄:
(홍)“글쎄 별 수 없어. 약이나 먹여 죽이든지 친정으로 쫓든지 두 가지 중에
어떻게 하든지 정할 터인데, 마누라의 말에 이것저것 다 불가한 줄로 여기니,
마누라 생각에는
(부)“내 마음에는 홍씨댁도 보전하고 사돈집도 성하게 보전하도록 조처하는
1,756번째 줄:
(홍)“그래, 옥단이가 그 일을 아나?”
(부)“아는 체는 아니합디다마는 말하는 눈치가 아는 모양입디다.”
(홍)“옥단이 가
1,772번째 줄:
옥단이는 누워서 비비대기치던 머리를 쓰다듬지도 아니하고, 가슴을 훔키 어
쥐고 윗목에 들어섰고, 단잠을 깨서 일어나는 금홍이는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겁이 나서 벌벌 떨고 마루에 섰고,
보내던 이씨부인은 밤중에 야단나는 소리를 듣고 안방으로 건너오며 아니
나는 생각이 없다.
1,791번째 줄:
(저것이
인물값을 하느라고 남의 집을 망하였지.
싶은 그 생각에 열이 버썩 더 난 터이라.
1,810번째 줄:
그 비상이 아무데도 쓸데없이 안 벽장 구석에 넣어 두었는데, 홍참의가 그
비상은 쓸데없이 된 물건으로 여기고 있던 차에, 별안간에 비상 쓸 일이
비상만 들쩍거리고 있는 터이라.
1,823번째 줄:
왜 알찐알찐하고 아니들 가느냐.”
하며 사람을 낱낱이 쫓아 내보내고 안방에는 홍참의와 김씨부인과 단 둘뿐이라.
(부)“여보시오 영감, 어찌하려고 이렇게 하시오, 이리하실 것 같으면 내가
1,843번째 줄:
안방으로 들어와 섰으나 차마 무슨 말을 못하고 죄지은 사람같이 또한
김씨부인의 눈치만 보고 있는데, 옥단이는 의구히 가슴 아픈 모양같이 눈살을
없는 목소리로,
1,860번째 줄:
죽어도 옳은 일에만 죽으면 겁은 반푼 어치도 아니 나는 금홍이가 김씨 부인
앞으로 다가서며 .
(금) “마님,
1,872번째 줄:
있나 보이다. 영감께서 그렇게 대단히 거조를 차리시다가 마님께서 말씀을
잘 여쭈신 고로 일시의 분을 참으셨으나, 진노하시던 그 일이야 잊어버리실
리가 있습니까.
이 밤으로 죄 주실 일은 결말을 지어서 주시기를 바랍니다. 마님 …….”
1,891번째 줄:
하더니, 이씨부인을 건너다보며,
“아씨, 아씨께서도 건너가 주무십시오
”
1,908번째 줄:
잠 못 들고, 이씨부인은 금홍이를 데리고 앉아서 마주보고 울며 밤을
새우는데, 그 밤이 어느 결에 새었던지 단구역마을 뒤뜰에 개똥 삼태기
메고나선 사람이
홍참의가 먼동 틀 때부터 일어나서 안방으로 들어오더니 가만히 하는 말이,
1,923번째 줄:
그것 좋은 말이요 “ , , 나는 사랑에 나가서 있을 터이니 마누라가 얼른
잘 조처하여 주오. 자 그 일 조처하기 전에는 내가 아침 먹으러 들어오 지도
아니하겠소.”
사랑으로 도로 나가서 드러누웠더라.
1,957번째 줄:
(고)“못 낳는 것은 태 탓인가, 자네 탓이지. 자식 잘 낳는 사람 같으면 암탉이
알 낳듯이 하루 하나씩 날마다라도 났을 터인데…….
흥김에 딴 홍이 나는 줄 모르게 나서 지껄이는데, 옥단이가 손짓을 하며,
1,974번째 줄:
불러왔는데 원래 , 홍참의 집에서 교군꾼 쓸 일이 있으면 교군은 할 줄 알든지
모르든지 아무 놈이나 함부로 붙들어다 시키는 터이라. 만일 교군을 할 줄
아느니 모르느니 하며 꾀를
전례가 되었는데, 어떤 놈일는지 매 맞기보다 교군 하는 것이 낫다 하여,
그 동네 백성들은 그럭저럭 교군 질빵 한두 번씩은 다 메본 터이라. 그날
1,992번째 줄:
(김)“이애, 내가 어젯밤에 잠잔 줄 아느냐. 그래 교군을 불러왔으면 밥도
아니 먹여서 보낸단 말이야.”
(옥)“에그,
2,010번째 줄:
(이) “오늘은
또 무슨 야단이 나누. 금봉아, 너는 이불이나 개고 방이나 쓸어 두어라.”
(금)“어느새 방은 쓸어 무엇하게요, 쇤네도 건너가 보겠습니다.”
2,034번째 줄:
(남)“나는 몰라.”
(김)“그래도 까닭이 있지 공연히 그러실 리가 있느냐.”
(남) “어젯밤에
2,051번째 줄:
너 여기 있지 말고 너의 친청으로나 가거라. 낸들 어떻게 하느냐, 네가 아니
갈 터이면 내가 어디로 가겠다. 옥단아, 네 나가서 고두쇠더러 교군꾼 둘만
얼른 부르고 가마 내어놓라고 일러라.
시키는 대로 아니하고 우두커니 섰느냐.”
2,068번째 줄:
“누가 너희들 데리고 어린아이 장난하듯 기롱하는 줄 아느냐.”
하더니 방정 끝에 진정 말이 나오느라고 그 며느리를 건너다보며,
그만두어라 “ , , 내가 너와 한 집안에는 있을 수 없다. 네가 아니 갈 터이면
내가 어디로 가겠다. 그래, 지체 좋은 재상의 딸은 시어머의 말이 귀에
2,096번째 줄:
쓰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런 허물을 쓰고 돌아가시더라도 이 댁에서
돌아가시고, 사시더라도 이 댁에서 사셔야지. 이렇게 창황히 가시고 보면
아씨 허물은 벗을 날이 없습니다.”
악을 쓰며 우니, 김씨부인이 팔팔 뛰며,
2,111번째 줄:
기회만 있으면 지분거리더니, 필경은 바람의 돌부처도 못 볼 듯한 생각이
있은 후로는 저년이 언제든지 내 손에 한 번만 단단히 걸렸으면 저 얄밉던
김씨부인의 영이 뚝 떨어지면서 고두쇠가 왈칵 달려들어 금홍의 머리채를 잡아
2,130번째 줄:
“어, 두말 말고 어디든지 자네가 앞만 서게.”
하더니 이마에서 비지땀을 뚝뚝 떨어뜨리면서 쉬지도 아니하고 달아난다.
고개 두 고개 훌훌 넘어가서 산 깊고 골 깊고 길 없는 곳으로 들어가는데,
이씨부인이 교군 틈으로 내다보다가 겁나고 의심나는 마음을 참지 못하여
2,145번째 줄:
어서 펄쩍 모시게.”
(교군)“이 사람, 이밖에 더 어찌 급히 가나. 좀 쉬어나 가세.”
(고두쇠) “쉬기는
2,164번째 줄:
하고 나오는 듯 나오는 듯하고, 머리 위에 솔 그림자 속에서는 귀신이
휘파람을 불고 내려오는 듯한데, 이 산중에 사람이라고는 나 하나뿐이라.
천지에 가면 얌전이 무엇인지, 부끄럼이 무엇인지, 하늘이나 땅만 보고는
얌전도 아니 나고 부끄럼도 없나 보더라.
2,175번째 줄:
어찌하여 사람을 이렇게 몹시 죽이십니까. 하나님 하나님, 내가 전생에
무슨 흉악한 죄를 가진 짐승이 되었든지 두 발가진 새가 되었든지, 지렁이,
굼벵이 같은 더럽고 작은 벌레가 되었더라도 자유로 활동하여 하루를 살더라도
근심 없이 살다 죽는 것이 좋을 터인데, 어찌하여 나는 만물의 신령되는
사람으로 태어나서 인간에 다시없는 고생을 다하다가 죽을 때는 이런
2,183번째 줄:
아니하고 고생길로만 넣어 주시느라고 홍참의 집 며느리가 되게 하셨소,
에그, 원통하여라, 고 여우 같은 시어머니가 나를 무슨 애매한 죄를 뒤집어
씌워서 이 산주에 내다 버리게 하누.
뚝뚝 듣는 시아버지는 여우 같은 후취의 속살거리는 말에 폭 빠져서
무죄한 며느리를 이렇게 원통히 죽게 하단 말인가, 어젯밤에 온 집안 사람을
2,196번째 줄:
원망하고, 시부모에게는 못할 소리 없이 욕을 하며 우는데, 별안간에
수풀 속에서 웬 사람의 소리가 나며 뛰어나오더니 이씨부인의 손을 잡고 위로를
한다.
“여보, 걱정 마시오, 사람 살 곳은 곳곳마다 있습니다. 부인이 여기까지 오시게
2,209번째 줄:
‘이놈이 웬 놈인고, 귀신인가 사람인가. 이러한 깊은 산에 천년 묵은 여우가
있어서 재주를
십분 의심이 날수록 정신을 차리고 정신을 차릴수록 의심이 난다.
2,227번째 줄:
말도 하고 마음에 없는 허락도 하는 시늉을 하며 아무쪼록 이 산에서 욕을
보지말고 저 놈을 속여서 사람 있는 곳으로만 데리고 가면 나는 죽어도 욕을
아니 보고 죽을
(부인)“여보, 두말 마시오. 낸들 이렇게 흉악한 곳에 와서 짐승의 밥이 될지,
2,243번째 줄:
터인데 그 고생을 어떻게 , 하셨소, 옛말에 고진감래라 하였으니, 부인도 그
말과 같이 고생하던 운이 다 진하고 좋은 일만 생기느라고 나 같은 사람을
만났소그려.
고생을 혼자 맡아 가지고 일평생을 지내면 주리 한 바퀴를 얼른 틀리고
마는 것이 차라리 편할 터인데, 내가 들으니 부인은 시집살이 고생이 허다한
2,255번째 줄:
먹고사는 재미가 무슨 재미요. 우리 집에는 열두 마리 개가 종일 뼈다귀로
사오. 말이 뼈다귀지, 사람이 갈비를 구워 먹어도 침만 바르고 내어놓지 누가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아름다운 연분을 맺고 내 고향으로 가서 삽시다.
2,272번째 줄:
달아나니 포수가 소리를 버럭 지르는데 산골이 울린다.
“이놈 게 있거라.
한 발자국 들여놓고 약을 재고 한 발자국 내어놓고 방아쇠를 그으면 노루,
사슴, 토끼, 범이라도 자국을 못 떼고 떨어진다. 네가 몇 발자국이나 가서
2,289번째 줄:
별호가 장포수라. 미련하기도 첫째 갈 만하고, 고지식하기도 첫째 갈 만 하고,
총 잘 놓기로는 첫째를 칠 터인데, 만일 조선 포수를 모두 모아 놓고 완고
선생님이
선생님이 시험을 받을 터이면 우등상이 될 터이라. 나이 삼십이 되도록 장가도
못 들고 오십여 세 되는 어미 하나와 단 두 식구가 사는지라. 치악산
2,306번째 줄:
“어머니, 오늘은 별 사냥을 하였소.”
(노파)“호호호, 너는 참 사냥도 잘한다.
날은 없구나. 참나무 장작불 피워 놓고 어서 구워 먹자. 오늘 배고프겠다.”
2,322번째 줄:
하며 쉴 새 없이 말을 하는데, 딱쇠는 장포수의 이름이라, 그날 장포수가 사냥을
하러 나갔다가 홍참의 며느리가 곤란 당하는 것을 보고 천진의 분한 마음이
집으로 온 터이라.
2,339번째 줄:
물끄러미 보다가 다시 그 아들을 보며,
(노파) “단구역 마을 누구라더냐?”
(장) “홍참의라든지
2,358번째 줄:
이씨부인 이 더운 방에 앉아 배길 수가 없어서 문 밖으로 나섰더니, 어느 모퉁이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거늘 부인이 의심이 나선 버선발로 가만가만히
말을 하느라고 뒷골목에 큰 고목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 뒤로 돌아가서 말을
하는지라. 사람은 보이지 아니하고 목소리만 들리니, 부인이 감히 가깝게
2,372번째 줄:
날뛰더라 하니, 그놈은 누구란 말이냐?”
(포수)“낸들 알 수 있소”
(노파) “네가
2,392번째 줄:
(노파)“계집의 마음이 솔깃하여 살면 그만이지 누가 알기나 하겠느냐.
그년이 만일 너를 너무 싫다고 왜장을 치거든 총으로 놓아 죽여 없애 버리려무나.”
장포수가 그 말을 듣더니 욕심이 불같이 생기던지 입이 떡 벌어져서,
2,409번째 줄:
헛일하였구나. 글쎄, 그년이 우리 말하는 소리를 들었나 보구나. 그런 망한년
보았나. 저를 일껏 데려다가 뜨뜻한 방에 들여앉혔더니 무엇이 부족하여
도망을 한단 말이냐.
놓쳤구나.”
2,424번째 줄:
그렇지 아니하더면 고년을 그때 그 자리에서 당장에……. 어 참 절통하거든.”
하면서 이씨부인을 찾아다니는데,
바윗돌 위에 꼭 붙어 서서 장포수의 목소리를 다 듣고 있으나 장포수의
눈에 띄지 아니하였는데, 장포수의 어미가 횃불 하나를 들고 나오더니, 이씨
2,439번째 줄:
노파가 횃불을 번쩍 들고,
“예 있다, 저리로 달아난다.
하며 소리를 지르는데, 부인이 제 정신이 있고 달아나든지 정신 없이 달아나든지,
2,456번째 줄:
딱쇠가 제깐에도 어림없는 짓 한 줄 알고도로 제 집으로 가려 하나 어디 가
대답이 없으니 마지못하여 군호 소리를 크게 냅뜨다가 원래 짐승 많은
산중이라 겁이 더럭 나서 아무 소리 못하고 어림치고 제 집을 찾아가는 데
2,472번째 줄:
당겼는데, 방아쇠가 뚝 떨어지며 총소리가 탕 난다.
마침 그 옆에 범 한 마리가 엎드렸다가 사람의 발자취를 듣고 튀어나오려다가
바람결에 화승 내를 맡고 바위 돌 옆에 납죽 엎드리던 터이라 딱쇠의
헛총이 터지면서 공교히 그 철환이 범의 허리를 맞춘지라. 천 근 대호가 선불을
2,488번째 줄:
구경을 하러 나섰던지 원주 치악산 구결을 들어갔더라.
사람이 수가 좋으면 여간 짐승 낱이나 있는 곳으로 쏘다녀도 관계치 아니
수월당이 칠십 년을 산에서 늙고 산으로만 쏘다녀도 짐승 무서운 줄을
모르고 다녔는데 어림없이 믿는 것이 있더라.
2,506번째 줄:
비탈에 내리구르는데 그 비탈은 과히 위태한 비탈은 아니오, 사태 내린
황토이라. 한 길쯤 되는 구렁텅이 속으로 굴러 들어가며 웬 여편네의 몸뚱이와
마주 부딪치며
그 여편네는 이씨부인이라. 부인이 구렁텅이에 굴러 떨어질 때에는 죽는 줄만
2,521번째 줄:
받으려 하여도 못 받는 것이라. 나를 기름에 졸이든지 칼로 저미든지
내마음은 못 빼앗을 터인데, 이 몹쓸 놈이 내 마음은 못 빼앗고 내 몸을 빼앗으려
드니, 세상에 이런 일도 있단 말이냐.
우악한 힘을 믿고 내 몸을 억지로 욕을 보이고 네 욕심 채움을 하려거든
그 자리에서 네 총으로 나를 놓아 죽여다오. 만일 그 자리에서 나를 죽이지
2,540번째 줄:
욕은 본 셈 잡고 설운 생각만 하고 우는데, 중의 염불도 그치지 아니하고 부인의
울음도 그치지 아니한다.
대단한 것이니 무엇이 대단한 것이니 하여도 사람의 평생 공부한 심력같이
대단한 것은 없는지라. 수월당이 추운 것도 잊고 배고픈 것도 잊어
2,556번째 줄:
(부인)“여보 여보, 말 좀 물어봅시다. 염불하는 소리를 들으니 아마 어느
절 대사인가 보구려. 관세음보살님이 인간에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시려고
자비심 많고 도덕심 깊은 대사를
나는 아무 죄 없이 사람이 겪지 못할 고생을 하다가 그 고생도 내게 과분하던지,
2,574번째 줄:
보고는 자세 알 수 없는 곳이라.
그 산에 구경이 좋다고 글 짓고 노래하고 술 먹는 구경꾼들이 어느 봉에
아니 간 곳이 없는 터이라.
2,591번째 줄:
와서 돌기는 도나 정작 승이 우물가에 나오는 것을 보면 숫기가 좋지
못하여, 얼른 가서 먹을 물 좀 달라 소리도 못하고 남에게 발등을 디디어
빼앗기고 도리어 슬슬 피하여 간다.
바가지나 족히 얻어먹은 놈의 이름은 혜명이요, 냉수 한 바가지도 못
얻어먹은 놈의 이름은 강은이라. 혜명이가 냉수를 켤 때마다 강은이는 눈꼴이
2,608번째 줄:
하였더니, 그 몹쓸 강은이란 놈이 혜명이더러 하는 말이,
“이놈아,
나만 보았느냐. 오냐, 다른 것은 다 그만두고, 소월당 스님 생신 날 그년이
소월당 스님을 뵈옵고 오는 길에 네가 그 승방 근처에 숨어 있다가 그년을
2,624번째 줄:
그러나 그놈은 제가 허덕거리던 죄나 있으니 불쌍할 것이 없거니와, 혜명이와
눈이 맞았느니 배가 맞았느니 하고 늙은 승, 젊은 승이 모여 앉아서 벌을
쓰고 내쫓는 것을
사람은 없고 ‘그년 그년’하며 욕하는 사람뿐이라.
2,642번째 줄:
(수월)“나무아미타불, 미련한 인간은 애매한 말을 하더라도 밝으신 부처님은
무죄한 줄 아실
무슨 걱정하시오.”
2,660번째 줄:
정이 들어 보고 싶어서 그렇게 생각나는 것이 아니라 원수같이 미워서 생각이
난다.
부득부득 치이고, 이가 박박 갈리도록 생각이 나는데, 등뒤에서 그런 몹쓸놈이
쫓아오는 듯 오는 듯하여 잠시라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어 겁이 나는데,
2,687번째 줄:
부처님의 마음, 하늘보다 높으신 부처님의 도덕, 일체 중생을 크게 사랑하시고
크게 슬피 여기시는 부처님께서 소승을 도와주소서. 소승이 어디로 가든지
욕만 보지 아니하도록 도와주시면 이 몸이
지내고 부처님 도를 닦을 대로 닦아 보겠습니다.
(이 몸이 이 생에 착한
2,703번째 줄:
선득하며 평생에 맡아보지 못하던 흉악한 냄새가 코를 칵 찌르는 듯하거늘,
수은이가 고개를 푹 수그리며 손으로 얼굴에 떨어진 것을 집어 버리는데
무슨 썩은
수은이가 코를 찡그리고 진저리를 부득부득 치며 세수할 물을 찾아다니나 그
2,719번째 줄:
짖고 연기나는 조그마한 동네를 찾아 들어가니, 몇 집이나 되는 동네인지
건성드뭇한 마을집이 띄엄띄엄 박혔는데, 어느 집일는지 이웃집 모르게 떡하여
먹기 좋을 만하게 된 집들이라.
어느 집이든지 찾아 들어가서 하룻밤 잠이나 자고 아침, 저녁 밥 두
끼만 얻어먹고 갈 작정인데, 어느 집으로 들어가면 좋을지 몰라서 주저하다가
2,735번째 줄:
우리 아버지가 평안감사로 계실 때는 내가 어리고 철모를 때라. 내가 선화당에
눌러 나갔다가 영명사 중이 우리 아버지께 문안하러 온 것을 보고 내가
무서워서 울었더니 통인이 중이 내쫓던 생각이 지금도 의회하게 나는구나.
에그, 또 한 가지 생각나는 일 있다. 내가 평안 감영 선화당에서 꾀꼬리가
우는 소리를 듣고 저 꾀꼬리 잡아 달라고 아버지께 응석을 하며 떼거리를
2,749번째 줄:
단구역마을 홍참의 . 집 대문 밖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는 사람을 교군에
담아서 그 흉악한 치악산에 갖다 버릴 때에 내 마음이 어떠하며 내 고생이
어떠
부득부득 치이는구나. 오냐, 호강을 하였든지 고생을 하였든지 지낸
일은 꿈같이 생각하면 그만이지만, 이후에는 또 무슨 고생이 남았는지 생각을
2,760번째 줄:
“고생도 분수가 있지. 내가 밥까지 빌어먹으러 다닌단 말이냐. 오늘 낮에
죽고 싶은 생각이 나서 죽으려다가 아니 죽은 것이 내 생각이 잘못 들었구나.
하늘이 죽어라 죽어라 하신 내 팔자가 아니 죽고 살아 있으니
아니하리. 오냐, 눈 꿈쩍 죽으면 이것저것 모르고 내 신세에 편할 것이라.
내가 죽어도 잊히지 못하는 것은 한 가지 뿐이라. 친정 부모의 은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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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더니 웅그리고 앉은 채로 눈을 깍 감으면서 우물 속으로 뚝 떨어지는데 물 속에서
물구나무를 섰다.
천지에 사람 많이 사는 곳은 장안 성중이라. 체바퀴같이 둥그렇게 둘린
성 가운데 흩어진 바둑같이 총총 들어박힌 것이 사람의 집뿐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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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러치고 화류 문갑 나란히 놓고 갖은 문방 제구에 우리나라 물건과 서양
물건을 간간이 섞어 놓고, 매화분 위에는 파란 새 한 쌍이 오르락내리락 하고,
앉은 부인은 주인 정부인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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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홍아, 이리 가깝게 와서 이야기 좀 자세하여라.”
금홍이가 고개를 수그리고 눈물을 씻으며 윗간으로 나가다가 아랫간으로
돌쳐 들어오는데, 본래 금홍이가 밤벌레같이 살이 찌고 복사꽃같이 곱던 얼굴이러니,
중병을 치렀는지 벼만 남은 얼굴에 혈색이 조금도 없고 왼편 다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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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홍참의 집에서 며느리를 죽을 곳에 보내려고 야단이 나던 날에 금홍이가
이씨부인의 교군채를 붙들고 바른말을 하다가 고두쇠 발길에 어찌 채이고
얻어맞았던지 한 달 동안을 몸져누웠다가 한 달 만에 겨우 일어나서 치악산에
갔던 교군꾼을 찾아보고 말을 솜씨 있게 묻기도 하였거니와, 교군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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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쓴 덕이라. 만일 최서방 치운이가 살았더면 내가 돈더미에 올라앉고 너희들이
내 술에 곯아 죽었을 것이다. 자, 먹어라, 네 주량을 내가 안다, 엄살
말고 먹어라.
있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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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쳐 주었던지, 가느라 가느라고 연기 나는 것을 보고 쫓아가니, 그 집이
장포수의 집이라, 장포수의 어미가 장포수 죽은 후에 장포수의 대강이와
두 발목쟁이와 총과 화약
화약통은 방에 두고 보며 자식을 생각하고 청승으로 세월을 보내는데, 감자
섬 있는 것만 다 먹은 후에는 빌어먹으러 나갈 모양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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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집아이라, 어디로 가든지 제일 겁나는 것이 남자이라. 금홍이가 사람을
보면 코먹은 소리를 어찌 솜씨 있게 하던지, 건달이 놈들이 얼굴만 보고
쫓아와서 지분거리다가
인물값을 하느라고 벌써 종두를 넣고나 하며 달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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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인이 금홍이 나가던 날부터 때마다 기다리고 날마다 기다리면서 애매한
금홍의 어미 아비를 의심하여 도망을 시켰느니, 빼 팔아먹었느니 하면서
꾸짖고 달래고 어르고 벼르는데, 금홍 어미가 의심을 받을 만한 일도 있더라.
당초에 금홍이가 서울로 들어오던 날 정부인 앞에 서서 목이 메어서 홍참의
집 이야기를 하는데, 정부인의 경상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눈 여린 계집종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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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금홍이는 명도 길지. 범이 개 끓듯 하는 그 산중에서 어찌 살아왔누.
올 겨울이 아무리 춥지는 아니하다 하였으나, 산에서 한둔을 하고 어찌 살아.
그나 그뿐인가, 치악산에서 내려와서 그 길로 또 다른 곳으로 나서서 아씨를
찾으려고 향방 없이 다녔다 하니, 저 혼자 나서서 찾기를 무슨 재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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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홍의 어미 아비를 다른 하인보다 별로 귀애하는 모양이라, 그런 고로
금홍의 어미가 금홍이를 도망시킨 줄로 의심하던 사람들이 다시 이판서를
의심하여
“정녕 대감께서 금홍이를 첩으로 들여앉히고 집 사 주어서 숨겨 두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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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 나섰는데 돈을 물쓰듯한다.
단구역마을 홍참의 집에서 그 며느리 없애 버린 후에는 그 집안에서 재미가
옥시글옥시글할 줄 알았더니, 며느리 없앤 후에는 무엇이 부족하여 김씨부인의
쨍알거리는 소리가 나는지 한 달 삼십 일에 웃고 지내는 날이 눈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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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김씨부인이 옥단에게 주고 싶어서 준 것이 아니라, 며느리 입던 옷과
세간에 며느리 귀신이 붙은 듯이 보기도 싫은 마음이 있어서 불에 살라
버리려다가 약은 꾀를 먹고 옥단에게 내주었는데, 옥단이는 이
것이 아니나, 아랫사람은 유구무언이라고 좋은 낯으로 받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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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 “마님,
마님께서 올해 설은 참 재미있게 지내십니다. 건넌방 아씨가 아니
계시니 앓던 이 빠지니보다 시원할 것이올시다.
말씀은 바루 여쭙지, 쇤네가 아니면 그런 큰일을 하시겠습니까.”
2,982번째 줄:
부인 앞에 바싹 안기며,
“에그머니,
하면서 눈이 둥그래지니, 부인은 그 소리를 듣고 소름이 더욱 쪽쪽 끼치며 무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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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네가 밖에 나가도 무서운 마음이 없겠느냐.”
(남)“어머니와 둘이 나가면 무섭지 아니하여.”
(부) “그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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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같고, 옥단이는 본래 잠귀가 어두운 년이라, 또한 잠이 깊이 들어서
귀에 왕방울을 흔들어도 모를 지경이라, 남순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데
옥단이는 아니 깨고 옆의 행랑에서 자던 춘심이 추월이가 일어나 나와서
옥단이를 부르니, 그럭저럭 온 집안이 다 깨었더라.
3,033번째 줄:
무슨 큰 구경이나 난 듯이 모여 들어와서 기왓장 늘어놓은 것을 보더니,
그 중에 글자나 배우는 아이가 쳐다보며 수군거리는데,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이 삽시간에 여러 아이들이 모두 떠들며 나가더라.
보고 그 아이들이 수군거리느냐 할 지경이면 별 것이 아니라 홍참의
집 안방 지붕 위의 기왓장을 활짝 벗겨 놓고 그 기왓장을 이상하게 늘어 놓았는데
3,049번째 줄:
절반이라.
“애고 애고, 이런 원통한 일이 있나.
되었으나 물 한 모금 떠놓아줄 사람이 없구나. 요년 옥단아, 내가 네
원수를 갚겠다, 너의 댁 마님 원수를 갚겠다. 새해에는 너의 댁에 좋은 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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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
“조 방정맞은 귀신,
갈 수 있으면 벌써 와서 잡아갔지, 몇 달이나 지낸 뒤에 이제 와서 저들
밖에서 께께 울고만 있어, 오냐, 울대로 울어라. 네가 암만 울기로 누가 고뿔이나
3,078번째 줄:
것을 가만히 내버려두면 참 뉘게 와서 붙기도 쉬운 것이라, 내가 쫓아나가서
복숭아 나뭇가지로 휘두르며 쫓아 버리겠다. 요것, 누구를 보채면 굿이나
하고 떡조각이나 있을 줄 알았느냐.
송도 최서방에게 붙여 주려고 그 애를 써서 치악산 그 으슥한 곳으로 끌고
가다가 나는 교군꾼을 데리고 어디 가서 슬쩍 숨고, 최서방은 교군 뒤에 멀찍이
3,093번째 줄:
본래 고두쇠가 애만 쓰고 최치운의 돈을 얻어먹지 못한 것이 제일 분한 일이라.
당초 이씨부인이 아무 앙탈 없이 살며시 최치운이만 따라갔더면 옥단이와
고두쇠가 큰 수가 날 터인데, 그것이 마음대로 아니 된 것을 생각하니
열이 버썩 나서 못 견딜 지경이라. 그러나 그것이 다 욕심에서 나온 병이라.
3,110번째 줄:
다 같이 난 터이라, 이마에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사시나무 떨 듯 발발 떨며
눈이 동그래 앉아서 공론이 부산하다가 춘심이, 추월이를 보고 반색을 하는
판
“소인 고두쇠올시다. 저것 큰일났습니다. 건넌방 아씨께서 정녕 원귀가 되셨나
3,123번째 줄:
김씨부인이 그 소리를 듣고 귀가 반짝 띄어서 미닫이를 열고 내다보며,
“이애 고두쇠야.
좀 썼느냐. 내가 네 공로는 다 알고 있다. 오늘 낮에도 영감마님께 네 말씀을
무수히 여쭙고 별 상급을 주기로 작정한 일도 있다. 이애 옥단아, 내가
3,137번째 줄:
이 길로 저 원귀 우는 곳으로 혼자 나가서, 전후의 죄는 모두 소인의 죄로
말씀하고 빌겠습니다. 그러면 돌아간 아씨께서 원수를 갚아도 소인에게 갚을
터이오니, 이 댁에서는 아무 일 없을 터이올시다.
혼자 얼른 나가서 죄를 받겠습니다.”
3,152번째 줄:
저것 때문에 홍참의 댁이 망할 것을 나 때문에 성하고 보면, 우리 댁에서
나를 논 섬지기나 주어 살려 싸지. 내일부터는 굿은 하여 무엇하게. 날마다
굿에 쓰는 돈만 나를 다 주어도
되었던지 수날 놈은 나 하나뿐이다. 산 양반은 무섭지마는 죽은 여귀 하나야
겁날 것 없다.”
3,170번째 줄:
며느리 죽은 귀신에게 죽은 줄로만 알고 온 동네가 수군거리나, 고두쇠
죽기는 귀신에게 죽은 것이 아니라 장사패의 손에 맞아죽었는데, 그날 밤에
단구
집에서 도깨비 장난같이 하던 것은 장사패이다.
3,186번째 줄:
농군의 이야기를 듣기로 일을 삼으니, 그때 그 동네 사람들은 홍참의 집 이야기뿐이라.
홍참의 집에서 고두쇠가 죽은 후로는 날마다 무당만 불러들여서
점치고
세상에 유식한 사람은 나 하나뿐이어니 여기던 홍참의도, 며느리가 죽어
원귀가 된 줄만 알고 굿을 하든지 지랄을 하든지 알은 체 아니하고 내버려두는
3,199번째 줄:
겁을 내는 터이라. 그 중에 홍참의 부인과 옥단이는 꿈을 꾸어도 이씨
부인의 귀신만 보이니 , 굿은 암만 하더라도 그 몹쓸 귀신 때문에 아무 때든지
집이 망하려니 여기고 있으면서 노주가 마주앉아서 귀신 없앨 공론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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