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악산/상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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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jelei (토론 | 기여)
// 제거
43번째 줄:
나이 이십이 될락말락하고 얼굴은 시골구석에도 이런 일색이 있던가 싶을
만한 일색이라. 은조사 겹저고리에 세모시 대린 치마를 입고 서늘한 바람에
추운// 기운이 있던지, 겁이 나서 소름이 끼쳤던지, 파사한 태도가 더욱
어여쁘더라.
 
65번째 줄:
 
(부인)“글쎄, 좀더 구경하다가 잘까. 내가 혼자 툇마루에 앉았다가 오동나무
밑에서 인기척이 있는 듯하여 무서워서 들어왔다.”//
 
(금홍) “아직
88번째 줄:
 
(금홍)“저 달은 오늘밤에 서해 바다까지 갈 터이니, 아씨께서는 저 달만 쫓아가시면
오늘밤에 서울이야 못 가겠습니까.”//
 
(부인) “하하하,
104번째 줄:
(부)“하하하, 옆 찔러 절을 받는다더라마는, 꾸짖어달라 때려달라 하는 년은
너밖에 없겠다. 오냐, 네가 나를 부모같이 믿는다 하니 그 마음 변치 말고
있거라.// 나는 이 댁에 와서 고생을 하든지 호강을 하든지 내 팔자이어니와,
너는 팔자에 없는 고생을 하니 불쌍하다.”
 
120번째 줄:
 
(금)“이애, 꿈 같은 말도 한다. 사십이 못 된 마님이 늙어 돌아가시려면 나는
동//안에동안에 늙지 아니하느냐.”
 
(금)“젊으신 때에 고생을 좀 하시다가 노래에 팔자 좋게 지내시면 좋지요.”
138번째 줄:
부인과 금홍이가 서로 사정을 말하면 서로 위로를 하느라고 밤 가는 줄을 모르고
앉았는데, 안방 뒷마당에서 건넌방 뒤로 돌아오는 모퉁이에 달빛 없는
지붕 처마 그림자 밑에서 개가 컹컹 짖는다.//
 
“이 개 이 개, 이 빌어먹을 개 들어가거라. 왜 따라나와서 짖느냐.”
154번째 줄:
있는 자식 같으면 그런 아내는 당장 교군을 거꾸로 태워서 쫓아보내고 사당에
고유하고 다시 장가를 들겠다. 너의 오라비 댁인가 태상노군의 딸인가
그것은 서울 재상의 딸이나 되는 고로// 시어미와 시뉘를 몰라보려니와, 금홍이란
년은 재상집 종년이라고 시골 양반은 제 발샅의 때만치도 몰라 본단
말이냐. 이애, 사랑에 나가서 너의 아버지 여쭈어라. 금홍이란 년을 때려죽이겠다.
174번째 줄:
하는 것은 홍참의 목소리라.
 
(남순)“어머니가 금홍이란 년을 때려 죽인댔어요.”//
 
(홍참의)“금홍이를
195번째 줄:
 
(홍)“아서라, 이후에 다시는 남의 말 엿들으러 다니지 마라. 계집아이가 그리하면
사람 못 되느니라.// 오냐, 금홍이란 년, 그년 고약한 년이다. 내가
내일 아침에 그년 불러 꽤 꾸짖겠다. 어서 들어가서 잠이나 자거라.”
 
226번째 줄:
나 죽자. 그런 인생들이 살아서 무엇한단 말이냐. 오냐, 그만두어라.
 
오늘밤 내로 너를 쳐 죽이고 나까지 죽어서 여러 사람의 소원이나 풀어주겠다.”//
하더니 남순이를 쾅쾅 두드리며 독살풀이를 하니 온 집안 사람들이 안방으로
구름같이 모여드는데, 홍참의는 눈살을 잔뜩 찌푸리고 안으로 들어오다가
245번째 줄:
초취부인 소생 아들의 아명은 백돌이요 관명은 철식이니, 일곱 살에 그 어머니가
죽고 여덟 살에 계모가 들어오고, 열네 살에 장가를 드니 신랑 신부가
나이 // 동갑이데, 그 신부는 서울 사는 이판서의 딸이라.
 
백돌이가 자랄 때에는 계모 솜씨에 고생도 많이 하였으나, 장난 몹시 하기로
282번째 줄:
김씨부인이 남순이를 미워서 쳤던지 귀애서 쳤던지 아프기는 일반이라.
 
남//순이가남순이가 홍참의 앞으로 달려들며 아버지를 부른다.
 
홍참의가 남순이를 데리고 안방 미닫이 앞으로 가서 앉더니 남순의 머리를
301번째 줄:
속이 아플까 염려가 되나 보구려. 내가 며느리에게 무엇을 그리 심히
굴어서 그런 소리를 하시오? 그래, 내 속으로 나온 자식은 매를 맞아도 애처로운
마음이 조금도 없이 그 어린 남순이더러 악담을 하고 있단 말이요.//
남순이가 시집을 가서 며느리 볶는 시어미를 만나서 매보다 더 아프로
쓰린 꾸지람만 듣고 고생을 하면 영감 속이 시원하겠소. 나는 우리 남순이를
314번째 줄:
 
“요년 금홍아, 네가 무엇이라, 하였누. 너 같이 요망한 년이 언감생 코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온단 말이냐.// 내일 밝은 날은 조년을 대매에 쳐죽일
터이나, 조년 어디로 달아나지 못하게 꼭 붙들어 두어라.”
 
334번째 줄:
 
이씨부인이 그러한 시집에서 날을 보내고 해를 보내는데, 하루 열두 시로 때
// 마다 죽고 싶으나 살아 있는 것은 남편 하나만 믿고 세월을 보내더라.
 
김씨부인은 그 며느리를 달달 볶는 솜씨가 날로 늘고, 남순이는 그 어머니
348번째 줄:
대하여 보니 말이 깍 막혀서 한 마디도 아니 나오구려.”
 
(백) “말을 들으면 젊은 놈이 마음만 상하지 유익한 곳 있소.”//
 
(부인)“에그,
368번째 줄:
의뜻이 맞아서 귀애하신다오. 우리 어머니를 추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이
다 그러하지, 누가 양자라고 푸대접하고 전실 소생이라고 미워하는 사람이
세상에 그리 흔하겠소.”//하면서”하면서
눈이 눈물이 가랑가랑하니 백돌이가 그 눈치를 보고 다시 부인을 위로 한다.
 
385번째 줄:
(부)“여보, 여편네라고 업신여겨서 놀림감으로 말씀하시지 마오.”
 
(백) “허허허,// 놀리기는 누구를 놀려. 두메 구석에서 자라난 사람이 서울
사람을 놀려, 허허허”
 
401번째 줄:
마누라, 마누라는 집에서 고생을 참고 있어 보오. 나는 타궁에
가서 공부나 하고 있다가 고국에 돌아오거든 그때는 어찌하든지. 미리 말할
것은 아니나 마누라도 차차 기를 펴고 살살이 있을 터이니 부디 과히 근심마오.”//
부인이 그 남편이 타국으로 공부하러 가겠다 하는 말을 듣고 얼굴에 근심하던
빛을 감추고,
430번째 줄:
같이 마음을 먹고 나설 터이니, 내가 외국에 가서 몇 해가 되든지 편지
한 장 아니 부칠 터이닌 그리 알고 마누라도 내게 편지 부칠 생각을 마오.
옛적에 오기란 // 사람은 노 나라에 가서 증자의 가르침을 받아서 공부를
하다가 그 모친이 죽어도 분상도 아니하고 공부만 하오니 증자가 오기를 끊으셨고,
그 후에 노나라에 벼슬할 때에 노나라에서 제나라를 치고자 하여 오기로
443번째 줄:
일이 있소. 나는 하늘같이 중한 부모의 은혜를 저버리고 바다같이 깊이
정든 아내를 잊고 만리 타국에 가서 공부하려 하는 것은 나라를 위하는
생각에서 나온 마음이요.// 내가 타국에 간다 하면 우리 아버지께서는 필경
변으로 여기시고 못 가게 하실 터이니 나는 아버지 모르게 도망질하겠소.
날만 새면 갈 터이니 나 없는 동안에 부디 몸조심하여 잘 지내오.”
457번째 줄:
같은 영웅이야 노나라에 공부하러 갈 때에 그 아내를 그렇게 못 잊어 하였을
리가 있소. 대장부가 일구이언은 못하는 것이니, 부디 날 생각 마시고 공부
성 취한 후//에후에 고국에 돌아오시오. 나는 집안에는 여간 고생되는 일이
있더라도 고생을 낙으로 알고 있을 터이니, 내 걱정은 조금도 마시오.”
 
475번째 줄:
이별하는 날이라. 이별의 회포는 오장이 녹는 듯 스는 듯하여 이 밤이 새지
말고 백년 같이 길었으면 좋을 듯이 여기나, 세상 만사가 사람의 소원대로
되는 것 // 이 아니라. 그날 밤은 다른 날 밤보다 별로 짧은 것 같다.
 
적적한 깊은 밤에 안방 식구는 잠이 깊이 들었건마는 이씨부인은 안방 식구가
492번째 줄:
하면서 일어나서 사랑으로 나가는데, 부인이 그 남편 나가는 것을 보며 아무
소리 없이 앉았다가 쌍창 미닫이 문지방 위에 고개를 푹 수그려 엎드리더니
소리 없이 우는데, 정신을 잃었던지 날이 활짝 밝도록 모르고 있더라.//
 
“아씨 아씨, 일어납시오. 앞뒷문을 열어 놓고 여기 이렇게 계시면 못씁니다.
525번째 줄:
 
그날 아침에 홍참의 부자가 아침밥을 먹으러 들어왔는데 본래 홍참의 집 가
// 규가 그러하던지, 홍참의가 밥을 먹으려면 김씨부인의 고부와 백돌의 남매가
안방에 모여 있어서 홍참의 밥 먹는 것을 보다가 홍참의가 밥을 먹고
나간 후에 다른 사람들이 밥을 먹는데, 홍참의는 말이 드문 사람이나 밥상을
542번째 줄:
볼 만한 책이 그득한데, 해국도지를 빌려다가 본단 말이냐. 이애, 너도
개화하고 싶으냐. 어, 저 자식이 서울 몇 번을 갔다오더니 사람 버리겠구.”
//하면서 그 부인 김씨를 건너다보니 김씨부인이 홍참의를 마주보며,
 
(김)“서울로 장가들었다가 그만한 처가덕도 못 보아서 쓰겠소.”
554번째 줄:
 
(김)“에그, 영감은 별말씀을 다 하시구려. 집이 망하기는 왜 망해요. 개화한
아들 있겄다, 개화한 며느리 있것다, 집이 잘되지 망할 리가 있소. // 나는
벌써 개화한 며느리 덕을 많이 보았소. 욕을 아니 먹을까, 악담을 아니
들었을까……여보, 개화한 며느리가 아니면 무슨 인기에 시어머니더러 욕하고
572번째 줄:
하는 금홍이라.
 
백돌잉가 숟가락을 치우고 선뜻 일어나더니 이씨부인을 언뜻 건너다보며 밖으//로밖으로
나아가니, 이씨부인이 구슬 같은 눈물이 똑똑 떨어지며 고개를 윗목으로
돌이키고 앉았다가 쏟아지는 눈물을 참지 못하여 일어나 나가더니 건넌방으로
589번째 줄:
바라보고 섰는데, 그 남편은 보이지 아니하고, 안방에서 수군거리는 소리
잠깐 들리거늘, 이씨부인이 돌아다보니 안방 미닫이에 붙인 유리에 시어머니
이마가 꼭 붙어서 내다본다.// 며느리가
제 남편에게 미쳤느니, 아들이 그 아내에게 허기를 졌느니 하며 신이
나서 흉보는 시어머니 목소리가 귀에 펄펄 들어오나, 이씨부인이 그날은
622번째 줄:
절을 꾸벅꾸벅하며,
 
“소인 문안드립니다.”// 하더니,
일변으로 큰사랑 마당으로 앞서 들어가며 원주서방님 오신다고 노문을
놓는다. 백돌이가 큰사랑 마루 끝에 짚신을 벗어 놓고 황토가 뚝뚝 떨어지는
639번째 줄:
 
이 사람, 자네가 편지 좀 가지고 오기로 어떠할 것 무엇 있나. 아무리 없으니
말일세마는, 요새는 내 딸이 자네 안부모에게 귀염을 좀 받//나”받나”
 
하면서 눈물을 씻는다.
655번째 줄:
정이 찰떡같이 들었던 아내라. 원주서 서울로 떠나올 때는 외국으로 유학하러
가려는 생각만 골똘한 중에 아내를 불쌍히 여기는 생각이 오히려 적더니,
그 처가에 와서 장인 장모의 모양을 보고 홀연히 없던 생//각이생각이 새록새록
난다.
 
671번째 줄:
듯이 말하였더니 이러한 마음으로 그런 말을 하였던가 싶게 생각이 난다.
한 방에 세 사람이 입을 봉한 듯이 말없이 앉았다가 이판서의 부인이 그
사위 대접으로 먼 말을 하는데, 한 사람의 말문이 열리더니 // 말끝이 연이어서
이판서도 말을 하고, 홍철식이도 말을 하더니, 이판서 내외도 딸 생각을
잊고 홍철식이도 아내 생각을 잊었더라.
687번째 줄:
이판서가 그 사돈에게만 마음이 복잡하였고, 백돌이를 귀해하던 마음은 사위
되기 전보다 십 배나 백 배나 더하여 그 사위를 외국에 보내 공부시키려는
생각이 도저//하던도저하던 터이라.
 
뜻밖에 그 사위가 서울 온 것을 보고 아무쪼록 사위를 꾀어서 타국으로 유학시킬
704번째 줄:
간 곳을 몰랐더니, 그 후에 그 아들이 서울 갔다는 소문을 듣고 서울로 전인하여
이판서에게 편지하되, 내 자식놈이 서울 갔다 하니 곧 내려보내라 하였거늘,
이판//서가이판서가 그 사위를 권하여 외국에 보냈다는 말은 아니하나 또한
오래 숨기지는 못할 일이라. 홍철이가 제 마음으로 일본 간 것같이 말을 만들어서
편지 답장을 하였는데 홍참의가 그 편지를 보다가 편지를 짝짝 찢으며
716번째 줄:
개화한 사람은 그따위 버릇을 한단 말이냐. 이애, 원주 구석에 사는 만만한
홍참의는 세력 좋은 사돈 솜씨에 자식 하나도 못 기른단 말이냐. 이 애
고두쇠야, 네 이 길로 다시 서울 가서 이판서 대감께 댁 서방님 찾//아찾아 보냅시사
하여라. 나는 편지하기도 싫다. 네가 가서 이판서 대감을 뵙고 지금
네가 듣고 본대로 한 마디 빼지 말고 말하여라.”
733번째 줄:
(김)“영감께서 그런 일을 당해 싸외다. 자식 장가를 들이거든 무엇을 복고
배울 것 있는 집으로 보냈으면 그런 일이 날 리가 있소. 그러나 철없는 백돌이는
책망할 것도 없소. 사돈집에서 그런 법이 있단 말이요.// 남의 외아들을
꾀어서 대강이를 깎아서 일본으로 들여보내는 그 심사가 무슨 심사란
말이요. 영감은 아무리 시골 사시고 이판서는 아무리 세력 좋은 재상이기로
746번째 줄:
(김)“영감도 참 딱하시오. 지금 영감께서 사돈에게 그런 업신여김을 보시면서
그런 말씀을 하시오. 나는 그 세력 좋은 이판서의 따님을 며느리님으로
모시고 있느라고 속도 // 많이 썩었소. 내 가슴속에 헤치고 보면 두엄자리가
되었을 것이요.”
 
764번째 줄:
들어간다.
 
이씨부인이 금홍이를 불러 앞에 앉히고 눈물이 비 오듯 하며, //
 
(부인) “이애 금홍아, 세상에 이런 년의 팔자가 있단 말이냐. 내가 이 방구석에
777번째 줄:
까닭이라더냐. 서방님 말씀에는 나라를 위하여 공부할 생각으로 가노라
하셨으나, 서방님이 계모어머니에게 설움을 조금만 덜 받으실 지경이면 당초에
집//떠날집떠날 생각이 날 리가 만무하였을 터이다. 이 댁 마님께서는 그 전실
소생 아드님 한 분 있는 것을 원수같이 여겨서 아드님의 그림자만 보아도
미워하고, 목소리만 들어도 미워하니, 그 아드님된 서방님은 어디로 도망이나
789번째 줄:
이 댁 영감마님께사 사돈에게 그렇게 틀려 화를 내시니, 그 미안이 어디로
가겠느냐, 죽을 년은 나뿐이다. 이애 금홍아, 나는 오늘밤 내로 죽어서
세상을 모를 터이니, 너는 이 댁에서 고//생하고고생하고 있지 말고 어디든지 달아나서
팔자 좋게 잘 살아라.”
 
803번째 줄:
가령 돌아가시지는 아니하더라도 일평생 한이 되어 자나깨나 가슴이
아플 지경이면 돌아가시는 아씨 신세만 못하실 터이올시다. 맙시오 맙시오,
돌아가실 생각을 하시지 맙시오.// 부모의 은혜를 갚지는 못할지언정 부모의
한될 일을 장만하여 드릴 수야 있습니까. 대감께서는 남정의 마음이 시니
일시에는 비창하시더라도 대범하신 마음이라, 오래되면 잊으실 터이오나
816번째 줄:
(부)“이애 금홍아, 울지 말고 일어나가라. 네가 저러하면 내가 마음을 더욱
진정할 수가 없다. 오냐, 염려 마라, 네 말을 들으마, 내가 꼭 죽기로 결심하였더니,
네 말을 듣고 생//각하니생각하니 죽기도 어려운 처지로구나. 이애 금홍아,
일어나거라. 네나 내나 타고난 고생이니 억지로 면하려면 되겠느냐.
내가 오늘부터는 이 설움보다 더한 설움이 있더라도 참고 있어보마. 살아
830번째 줄:
붙이는데, 세월이 갈수록 고생은 점점 더하더라.
 
본래 홍참의는 그 며느리를 불쌍하게 여기는 터이라. 그 후취부인이 방정을//
떨 때마다 홍참의 마음에 김씨부인이 너무 심한 줄로 알고 있으나, 만일
홍참의가 며느리 역성하는 모양을 보이든지 며느리를 귀애하는 모양을 보일
847번째 줄:
본래 이판서는 , 개화를 좋아하던 사람이요, 젊은 사람을 보면 공부하라
권하기 잘하던 사람이라. 이판서가 아무리 그 사위가 일본 간 것을 모른다
하기로, 홍//참의가홍참의가 어찌 곧이들을 리가 있으리요. 홍참의 마음에는 그
사돈이 백돌에게 편지하여 서울로 불러다가 일본으로 보낸 줄로만 알고 사돈을
원수같이 알고 있는데, 그날부터는 그 며느리까지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는데,
864번째 줄:
간다.
 
(하인들)“장서방, 오시오.”//
 
(하)“장서방,
882번째 줄:
고두쇠가 홍참의 야단치던 몇 갑절을 보태서 말을 하였는데, 이판서는
그 말이 귀에 들어가는지 아니 들어가는지, 한편으로 고두쇠 말을 들으면서,
한편으로 방에 있는 사람을 대하여 무슨 말을 한다.//
 
(이) “이
921번째 줄:
심부름을 잘하였느니 못하였느니 하면서 분풀이는 내게다 하느라고 볼기를
죽도록 맞을 지경이면, 원주서 서울까지 안팎 네 번을 다녀와서 노독도
아니 풀린 놈이 장독이나 나서 죽을까 겁이 나서 중로에서 도망이나 할//까할까
생각한즉 젊은 계집을 내버리고 도망하면 어느 놈의 좋은 일을 할지 모르니
그도 분한 일이라.
944번째 줄:
계집이 반색을 하며 대답하는 말이,
 
“거 누구요. 최서방이요?”//하는”하는
소리가 너무 은근하니, 고두쇠가 의심이 버썩 나서 아무 소리 없이 행랑
부엌 속의 컴컴한 곳으로 쓱 비켜서며 목소리는 아니 내고 빈 담뱃대를 부뚜막
958번째 줄:
(고) “이년,
무엇이야. 최서방이 어떠한 놈이냐. 이년, 바로 대어라. 어름어름하다가는
당장에 뒈//질라뒈질라.”
 
그렇게 대드는 서슬이 당장에 사람을 쳐죽일 것 같은데, 고두쇠의 계집은 어찌
976번째 줄:
우리 댁 영감께서는 날마다 벼르시는 말이, 이놈 고두쇠란 놈이
서방님을 못 데리고 오거든 이 넘을 쳐 죽인다 하시니, 이녁은 죽기는 일반이니
만만한 계집이나 쳐 죽이고 죽구려.”//고두쇠가”고두쇠가
그 소리를 듣더니 실쭉한 마음이 나서 계집에게 났던 분은 좀 잊었던지,
 
991번째 줄:
가만히 서서 생각을 한다.
 
‘조년이 나 없는 사이에 정녕 사잇서방을 얻은 것이로구. 최가, 최//가가최가가
어떠한 놈이고, 이 동네 최가라고 그런 듯한 놈이 없는데……. 조년을 좀
잘 달달하여야지 어름어름하면 조 여우년이 생시치미를 떼이렷다. 그러나
1,008번째 줄:
(계집)“내가 닫고 싶어 닫쳤나. 어디 갔다 왔거든 천연히 들어올 일이지 왜
부엌 구석에 숨어 섰다가 남더러 죽일 년이니 살릴 년이니 하며 생트집은
하//여하여.”
 
(고)“요란스럽다. 나는 간신히 해지기를 기다려서 들어왔는데 그리 떠들어.”
1,026번째 줄:
것을 보더니 계집이 새로이 성이 나서 대답도 아니하고 싹 돌아앉는다.
 
(고)“이애, 요새는 네 뒷모양 어여쁘구나.// 대강이에 웬 기름을 그렇게 쳐발랐느냐.”
 
(계집) “내 대강이에 기름을 바르든지 말든지 걱정이 무엇이야.”
1,044번째 줄:
(고)“이애, 잔소리말고 이리 좀 돌아앉아라. 조용히 물어볼 일 있다.”
 
(계집)“물어보기는 무엇을 물어보아. 최가가 어떠한 놈이냐 물어보려고…….//
주리를 틀며 초사를 받아보오, 누가 말하나…….”
 
1,057번째 줄:
(계집)“여보, 바로 말하오. 참 어디로 갈 터이요. 왜 남의 얼굴만 보오.
 
어서 대답 좀 하오.// 참 무슨 의심나는 일 있소. 말 좀 시원히 하오. 나도 할
말이 있어.”
 
1,071번째 줄:
하면서 방글방글 웃는 서슬에 고두쇠가 나중 일은 어찌 되든지 계집 웃는 눈으로
정신이 쑥 들어가며 갓, 망건을 턱턱 벗어 걸고 부엌으로 나가더니 웃통
활짝 벗어놓고, 아랫통 활활 씻고 걷고 활활 씻고 들어오더니, //
 
(고) “오냐,
1,093번째 줄:
내다보며,
 
(계집) “거 누구요,// 최서방이요. 아무도 없소, 이리 들어오시오.”
 
하며 은근히 불러들이는 모양인데, 그 말이 뚝 떨어지며 어떠한 젊은 남자가
1,108번째 줄:
 
하더니 고두쇠 옆으로 바싹 대들며 옆구리를 꼭 찌르고 귀에 말 두어 마디를
소곤소곤하니, 고두쇠가 입이 떡 벌어//지며벌어지며 고개를 끄덕끄덕하더니 최가를
상전같이 대접하며 수작이 어우러지더라.
 
1,126번째 줄:
 
본래 홍참의 집 건넌방 뒤에 오동나무가 있고 나무 밑에 담이 있는데, 지나간
// 팔월 보름날 밤에 홍참의 며느리가 마루에 앉아 달구경할 때에 오동나무
밑 담 위에서 기왓장 떨어지던 것은 최치운이나 불측한 마음을 먹고
홍참의 며느리 앉은 것을 넘겨다보다가 기왓장을 떨어뜨린 것이라.
1,143번째 줄:
 
두밤중 가운데 시퍼런 칼을 빼어들고 담을 넘어가서 홍참의 집안 건넌방 문을
// 썩 도리고 들어가서, 내 말을 들으면 다행이요 아니 듣거든 칼로 푹
찔러 죽이리라 하던 생각도 있었고, 내가 고이한 놈의 마음이다, 사부가 부녀를
탐내서 이러한 마음을 먹으면 일도 마음대로 될 리도 없거니와, 내가
1,157번째 줄:
홍철식이가 일본으로 갔다 하는 소문이 나면서 최치운이가 춤을 덩실덩실
추며 옥단의 허리춤에 돈을 퍽퍽 집어넣는데, 옥단이가 저의 서방더러
감히 그 말을 못하였다가 그날은 고두쇠에게 수상한 눈치를 보이고, 잘못하다가//는잘못하다가는
제가 최가와 상관이나 있는 줄로 의심을 둘 듯하여 고두쇠에게까지
말하였는데, 고두쇠는 그때 신세가 막다른 곳을 당한 자이라, 최가 만나
1,173번째 줄:
말을 할 듯 할 듯하다가 아니하고 홀짝홀짝 울거늘 김씨부인이 핀잔을 준다.
 
(김)“요 방정맞은 년, 식전참에 계집년이 왜 쪽쪽 우느냐?”//
 
(옥) “쇤네는
1,193번째 줄:
 
(부인)“이애, 무슨 말이냐. 염려말고 내게만 말하여라. 무슨 말을 듣든지
들//은들은 체도 말고 있으마. 이애 옥단아, 집안에 무슨 일 있니?”
 
옥단이가 문밖으로 나가더니 코를 푸는 시늉을 하다가 부엌으로 살짝 내려
1,208번째 줄:
(부)“요 방정맞은 년, 보기 싫다. 식전참에 왜 들어와서 그런 소리만 하느냐
그래 네 마음에는 . , 영감께서 첩 두시는 것이 그리도 기쁘냐. 요년, 꼴
보기 싫다,// 저리 나가거라. 네 요년, 무엇이든지 나를 속여만 보아라.”
 
하면서 입에서 찬 기운이 나고 눈에서 독기가 똑똑 떨어지도록 옥단이를 흘겨보는데,
1,223번째 줄:
하면서 부인의 앞으로 바싹 다가앉거늘, 김씨부인이 아무리 보아도 옥단이 가
무슨 큰일이 있는 것 같은지라. 상전의 요약과 종년의 요약이 같이 모여 마주
요//악을요악을 부리는데, 상전은 종의 속을 쏙 뽑으려고 안달하고 종은 상전의
비위를 꼭 맞추려고 애를 쓴다.
 
1,240번째 줄:
마님 마님, 요사이 건넌방 아씨 일을 아십니까?”
 
(부)“응, 무슨 일……어서 말 좀 하여라.”// 옥단이 가
남순이를 말끄름 보며,
 
1,256번째 줄:
분풀이는 하고 말겠다.”
 
(옥) “마님께서 말씀이 그러하시지, 약사발이야 어찌 안깁니까.”//
 
(부) “너
1,274번째 줄:
 
(부)“네 말이 옳기는 옳다마는 참을 일이 따로 있지, 그런 일을 어찌 참고
덮//어덮어 두느냐. 내가 본래 며느리와 뜻이 아니 맞아서 그것의 꼴을 보면 기가
버럭버럭 나던 터이다. 부르트는 김에 그것을 어떻게 처치하여 버리겠다.”
 
1,290번째 줄:
선 것같이 싫은 생각이 난다.
 
며느리 죽이고 싶은 생각이 아무리 골똘하나, 제 몸에 원수를 갚을까 염려되//는염려되는
마음이 생기더니 악독한 마음이 자라 목 움츠러지듯 오무라져 들어간다.
 
1,306번째 줄:
(옥) “마님
, 마님께서 쇤네 말씀만 들으실 것 같으면 며칠이 못되어서 마님께서
평생 소원을 푸실 터이오니 // 쇤네 말을 들으시겠습니까?”
 
(부)“좋을 도리가 있으면 듣다 뿐이겠느냐.”
1,321번째 줄:
여겼다더냐. 그것이 고약을 그렇게 부리더니 필경 내 집을 망하여 놓는구나.
글쎄 네 생각하여 보아라. 양반의 집에서 그것을 어찌 살려둔단 말이냐.
이애, 어떻게 내게 원귀 되지 아니하게 죽일 수 없겠느냐?”//
 
(옥) “쇤네를
1,339번째 줄:
 
‘상전이라고 겁을 내어서 하고 싶은 말을 못하면 병신이지. 이번을 넘기면
요런 좋은 기회를 또 만날 수 있나.// 마님이 암만 저렇게 날뛰셔도 내 소원을
아니 풀어주면 내가 좋을 도리를 아니 가르쳐 줄걸.’ 이러한
생각을 하면서 눈을 깜작거리고 앉았는데, 부인이 제풀에 놓치며 옥단이를
1,355번째 줄:
이런 큰일을 하면 마님께서 쇤네를 속량이라도 하여 주시고, 단구역 마을
앞뜰에 있는 보논을 다 주시더라도 아까울 것 무엇 있습니까. 마님께서
생각하여 봅시오. 그 일이 좀 큰일이오니까? 이댁 흥망이 달//릴달릴 뿐 아니라
마님께서 소원은 혼자 푸시고 나중에 아무 탈이 없이 될 터이니, 그런 재미있는
일이 어디 또 있습니까. 만일 나라를 위하여 그런 공을 이루면 이화대수장을
1,371번째 줄:
내 임의로 어찌 너를 논 한 마지기를 줄 수가 있느냐.”
 
(옥)“쇤네가 논이야 참 바라지 아니합니다. 속량이나 하여 주시면 그런 상//덕이상덕이
어디 있겠습니까.”
 
1,390번째 줄:
 
(옥) “여보
작은아씨, //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어?”
 
(남)“그럼, 그것을 못 알아들어. 누구는 귀 없나. 남을 어린아이로 아 네.”
1,403번째 줄:
아나베. 건넌방 언니라 하면 나부터 이가 갈려……. 나더러 여우 같다 하던
것이 누구라고. 언니가 금홍이를 데리고 한 말이지. 그런 소리하던 사람은
누구든지 치악산 호랑이에게 물려 뒈졌으면…….”//
 
(옥) “응,
1,425번째 줄:
들어온다.
 
김씨부인이 수심이 첩첩한 모양으로 말없이 앉았으니 홍참의가 그 부인을 흘끔// 흘끔
건너다보다가,
 
1,491번째 줄:
 
(부)“에그, 참을성도 없으시오. 오늘밤 내로 영감께서 다 아실 일을 그리하시오.
두 말 말고 이리 좀 오시오.”// 하더니
안뒤꼍문을 열고 나가는데 홍참의가 따라 나간다.
 
1,509번째 줄:
 
부인이 홍참의 귀에 대고 소곤소곤하며 이야기 시작을 하는데, 캄캄한 밤이
점점 적적하여지더니 웬 사람 하나 발자취 소리 없이// 걸음을 걸어오더니
홍참의 집 안 뒤담 밑에 가서 가만히 섰다가 담을 넘겨다보는데, 그 담은
홍참의 집 안방 뒤꼍이라. 김씨부인은 말 없이 홍참의를 꾹꾹 찌르는데 홍참의는
1,526번째 줄:
묻는지 들리지 아니하나, 그 여편네 대답 소리는 잠간 들린다.
 
(여편네)“여보, 마음도 급하기도 하지, 오늘은 너무 이른걸…….// 금홍이가
아직 잠도 아니 들었는데…….”
 
1,545번째 줄:
 
담뱃대 물고 가던 사람이 그 담 밑으로 지나다가 흘긋 쳐다보더니 깜짝 놀라는
모양으로,
모//양으로,
 
“에그, 이것이 무엇인고?”
1,562번째 줄:
 
아무도 나오는 살마은 없는데, 담 밑에 자빠졌던 사람이 제풀에 툭툭 털고
일//어나며일어나며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어, 그것 괴상한 일이로구. 하마터면 큰일날 뻔하였구. 그러나 이 집에서는
1,579번째 줄:
그런 헛장담을 하며 몽둥이를 끌고 오동나무 밑으로 향하여 나오는 것은 고두쇠의
목소리라. 오동나무 밑에서 담뱃대 찾던 사람이 그 소리를 듣고 마주
기//침을기침을 하며 거 누구요, 소리를 하니, 고두쇠가 걸음을 멈추고 마주 거
누구냐, 소리를 하며 감히 썩 대들지 못하는 모양이라. 담뱃대 찾던 사람이
제가 도적 아닌 줄을 발명하느라고 황급한 목소리로 도적놈에게 발길에
1,590번째 줄:
처음 뵙는 양반이지마는 너무 가엾은 노릇이요. 나도 타도 타관으로
먼 길을 많이 다니는 사람이라. 타관 양반이 저런 일 당하는 것을 보면
내가 당한 것 같습니다. 자, 어두운데 살펴 가시오.”//
 
“평안히 계시오.”
1,611번째 줄:
두었던 문이라. 그 문은 열 때면 소리가 좀 나는 문이라. 홍참의가 문을
여는데 도둑놈이 남의 집 문을 열 듯 아무쪼록 소리 아니 나도록 하느라고
얼른 열지도 못하고 조금씩 여는데, 문은 다시 열지도 못하고 소리만 나는지라.//
고두쇠가 아니 들어가고 어디 있었던지 몽둥이를 끌고 헛기침을 하며 쫓아
나오는 모양이라.
1,630번째 줄:
체하고 호들갑을 부린다.
 
“오늘밤에 소인 아니더면 댁에서 도적을 맞을 뻔하였습니다.// 아까 웬 도적놈이
담을 뛰어 넘어가다가 소인에게 쫓겨 달아났습니다. 소인이 오늘 밤에는
잠자지 말고 밤새도록 순경을 돌겠습니다.”
1,649번째 줄:
(고)“옥단이가 초저녁부터 가슴앓이가 일어나서 정신을 모르고 앓습니다.”
 
(홍)“오냐, 그만두고 나가거라.”//하면서”하면서
중문을 닫아걸고 홍참의가 부인의 발을 주물러 주려 하니 부인이 그만두라
하면서 일어서더니, 한 발을 자축자축하며 안방으로 들어가는데 홍참의가
1,666번째 줄:
 
(부)“영감, 집이 이렇게 쉽게 망한단 말이요. 이런 일을 남이 알면 홍씨 댁
가문이 결판날 터이요, 이런 일을 덮어두면 이 집안이 무엇이 되오.”// 홍참의는
담배를 붙여 물고 아무 소리 없이 담배 연기만 훅훅 뿜고 앉았더라.
그날 밤 일은 다 옥단의 꾀에서 나온 일이라. 오동나무 위에 올라섰던
1,682번째 줄:
 
(홍)“며느리가
들어와서 내 집을 망해 놓아. 그럴 변이 어디 있을구.//여보
마누라, 사당에 고유하고 며느리를 비상이나 먹여 죽입시다.”
 
1,697번째 줄:
눈에 밟혀서 이 댁에 못 있겠소.”
 
(홍)“마누라가 그럴 것 무엇 있소.”//
 
(부) “여보,
1,721번째 줄:
 
(부)“영감께서 어련히 깊이 생각하고 말씀하겠소마는 나중 일을 좀더 생각하고
말씀하시면 좋겠소.”//
 
(홍) “응,
1,743번째 줄:
(홍)“글쎄 별 수 없어. 약이나 먹여 죽이든지 친정으로 쫓든지 두 가지 중에
어떻게 하든지 정할 터인데, 마누라의 말에 이것저것 다 불가한 줄로 여기니,
마누라 생각에는// 어떻게 하면 좋겠소.”
 
(부)“내 마음에는 홍씨댁도 보전하고 사돈집도 성하게 보전하도록 조처하는
1,756번째 줄:
(홍)“그래, 옥단이가 그 일을 아나?”
 
(부)“아는 체는 아니합디다마는 말하는 눈치가 아는 모양입디다.”//
 
(홍)“옥단이 가
1,772번째 줄:
옥단이는 누워서 비비대기치던 머리를 쓰다듬지도 아니하고, 가슴을 훔키 어
쥐고 윗목에 들어섰고, 단잠을 깨서 일어나는 금홍이는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겁이 나서 벌벌 떨고 마루에 섰고,// 나무 끝에 앉은 새같이 조심으로
보내던 이씨부인은 밤중에 야단나는 소리를 듣고 안방으로 건너오며 아니
나는 생각이 없다.
1,791번째 줄:
 
(저것이
인물값을 하느라고 남의 집을 망하였지.// 조런 요물은 없애 버려야지…….)
 
싶은 그 생각에 열이 버썩 더 난 터이라.
1,810번째 줄:
 
그 비상이 아무데도 쓸데없이 안 벽장 구석에 넣어 두었는데, 홍참의가 그
비상은 쓸데없이 된 물건으로 여기고 있던 차에, 별안간에 비상 쓸 일이 생겨//서생겨서
비상만 들쩍거리고 있는 터이라.
 
1,823번째 줄:
왜 알찐알찐하고 아니들 가느냐.”
 
하며 사람을 낱낱이 쫓아 내보내고 안방에는 홍참의와 김씨부인과 단 둘뿐이라.//
 
(부)“여보시오 영감, 어찌하려고 이렇게 하시오, 이리하실 것 같으면 내가
1,843번째 줄:
안방으로 들어와 섰으나 차마 무슨 말을 못하고 죄지은 사람같이 또한
김씨부인의 눈치만 보고 있는데, 옥단이는 의구히 가슴 아픈 모양같이 눈살을
아//드득아드득 찌푸리고 한 손으로 가슴을 만지면서 안방으로 들어오더니 기운
없는 목소리로,
 
1,860번째 줄:
 
죽어도 옳은 일에만 죽으면 겁은 반푼 어치도 아니 나는 금홍이가 김씨 부인
앞으로 다가서며 .//
 
(금) “마님,
1,872번째 줄:
있나 보이다. 영감께서 그렇게 대단히 거조를 차리시다가 마님께서 말씀을
잘 여쭈신 고로 일시의 분을 참으셨으나, 진노하시던 그 일이야 잊어버리실
리가 있습니까.// 영감께서 잠시 잠깐 참으시고 덮어두시는 것보다 차라리
이 밤으로 죄 주실 일은 결말을 지어서 주시기를 바랍니다. 마님 …….”
 
1,891번째 줄:
하더니, 이씨부인을 건너다보며,
 
“아씨, 아씨께서도 건너가 주무십시오// 금홍아, 너도 건너가 자려무나.
 
1,908번째 줄:
잠 못 들고, 이씨부인은 금홍이를 데리고 앉아서 마주보고 울며 밤을
새우는데, 그 밤이 어느 결에 새었던지 단구역마을 뒤뜰에 개똥 삼태기
메고나선 사람이// 갔다왔다 한다.
 
홍참의가 먼동 틀 때부터 일어나서 안방으로 들어오더니 가만히 하는 말이,
1,923번째 줄:
그것 좋은 말이요 “ , , 나는 사랑에 나가서 있을 터이니 마누라가 얼른
잘 조처하여 주오. 자 그 일 조처하기 전에는 내가 아침 먹으러 들어오 지도
아니하겠소.”// 하더니
사랑으로 도로 나가서 드러누웠더라.
 
1,957번째 줄:
 
(고)“못 낳는 것은 태 탓인가, 자네 탓이지. 자식 잘 낳는 사람 같으면 암탉이
알 낳듯이 하루 하나씩 날마다라도 났을 터인데…….”//하면서”하면서
흥김에 딴 홍이 나는 줄 모르게 나서 지껄이는데, 옥단이가 손짓을 하며,
 
1,974번째 줄:
불러왔는데 원래 , 홍참의 집에서 교군꾼 쓸 일이 있으면 교군은 할 줄 알든지
모르든지 아무 놈이나 함부로 붙들어다 시키는 터이라. 만일 교군을 할 줄
아느니 모르느니 하며 꾀를 부리//려부리려 하다가는 엎어놓고 볼기 때리기가
전례가 되었는데, 어떤 놈일는지 매 맞기보다 교군 하는 것이 낫다 하여,
그 동네 백성들은 그럭저럭 교군 질빵 한두 번씩은 다 메본 터이라. 그날
1,992번째 줄:
 
(김)“이애, 내가 어젯밤에 잠잔 줄 아느냐. 그래 교군을 불러왔으면 밥도
아니 먹여서 보낸단 말이야.”//
 
(옥)“에그,
2,010번째 줄:
 
(이) “오늘은
또 무슨 야단이 나누. 금봉아, 너는 이불이나 개고 방이나 쓸어 두어라.”//
 
(금)“어느새 방은 쓸어 무엇하게요, 쇤네도 건너가 보겠습니다.”
2,034번째 줄:
(남)“나는 몰라.”
 
(김)“그래도 까닭이 있지 공연히 그러실 리가 있느냐.”//
 
(남) “어젯밤에
2,051번째 줄:
너 여기 있지 말고 너의 친청으로나 가거라. 낸들 어떻게 하느냐, 네가 아니
갈 터이면 내가 어디로 가겠다. 옥단아, 네 나가서 고두쇠더러 교군꾼 둘만
얼른 부르고 가마 내어놓라고 일러라.// 옥단아, 요년, 너는 무엇이든지
시키는 대로 아니하고 우두커니 섰느냐.”
 
2,068번째 줄:
“누가 너희들 데리고 어린아이 장난하듯 기롱하는 줄 아느냐.”
 
하더니 방정 끝에 진정 말이 나오느라고 그 며느리를 건너다보며,//오냐
그만두어라 “ , , 내가 너와 한 집안에는 있을 수 없다. 네가 아니 갈 터이면
내가 어디로 가겠다. 그래, 지체 좋은 재상의 딸은 시어머의 말이 귀에
2,096번째 줄:
쓰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런 허물을 쓰고 돌아가시더라도 이 댁에서
돌아가시고, 사시더라도 이 댁에서 사셔야지. 이렇게 창황히 가시고 보면
아씨 허물은 벗을 날이 없습니다.”// 하며
악을 쓰며 우니, 김씨부인이 팔팔 뛰며,
 
2,111번째 줄:
기회만 있으면 지분거리더니, 필경은 바람의 돌부처도 못 볼 듯한 생각이
있은 후로는 저년이 언제든지 내 손에 한 번만 단단히 걸렸으면 저 얄밉던
원수//를원수를 갚겠다고 벼르던 터이라.
 
김씨부인의 영이 뚝 떨어지면서 고두쇠가 왈칵 달려들어 금홍의 머리채를 잡아
2,130번째 줄:
“어, 두말 말고 어디든지 자네가 앞만 서게.”
 
하더니 이마에서 비지땀을 뚝뚝 떨어뜨리면서 쉬지도 아니하고 달아난다.//
고개 두 고개 훌훌 넘어가서 산 깊고 골 깊고 길 없는 곳으로 들어가는데,
이씨부인이 교군 틈으로 내다보다가 겁나고 의심나는 마음을 참지 못하여
2,145번째 줄:
어서 펄쩍 모시게.”
 
(교군)“이 사람, 이밖에 더 어찌 급히 가나. 좀 쉬어나 가세.”//
 
(고두쇠) “쉬기는
2,164번째 줄:
하고 나오는 듯 나오는 듯하고, 머리 위에 솔 그림자 속에서는 귀신이
휘파람을 불고 내려오는 듯한데, 이 산중에 사람이라고는 나 하나뿐이라.
// 나이 젊은 양반의 여편네는 죽어도 얌전한 체만 하지마는 , 사람 없는
천지에 가면 얌전이 무엇인지, 부끄럼이 무엇인지, 하늘이나 땅만 보고는
얌전도 아니 나고 부끄럼도 없나 보더라.
2,175번째 줄:
어찌하여 사람을 이렇게 몹시 죽이십니까. 하나님 하나님, 내가 전생에
무슨 흉악한 죄를 가진 짐승이 되었든지 두 발가진 새가 되었든지, 지렁이,
굼벵이 같은 더럽고 작은 벌레가 되었더라도 자유로 활동하여 하루를 살더라도//
근심 없이 살다 죽는 것이 좋을 터인데, 어찌하여 나는 만물의 신령되는
사람으로 태어나서 인간에 다시없는 고생을 다하다가 죽을 때는 이런
2,183번째 줄:
아니하고 고생길로만 넣어 주시느라고 홍참의 집 며느리가 되게 하셨소,
에그, 원통하여라, 고 여우 같은 시어머니가 나를 무슨 애매한 죄를 뒤집어
씌워서 이 산주에 내다 버리게 하누.//미련이
뚝뚝 듣는 시아버지는 여우 같은 후취의 속살거리는 말에 폭 빠져서
무죄한 며느리를 이렇게 원통히 죽게 하단 말인가, 어젯밤에 온 집안 사람을
2,196번째 줄:
원망하고, 시부모에게는 못할 소리 없이 욕을 하며 우는데, 별안간에
수풀 속에서 웬 사람의 소리가 나며 뛰어나오더니 이씨부인의 손을 잡고 위로를
한다.//
 
“여보, 걱정 마시오, 사람 살 곳은 곳곳마다 있습니다. 부인이 여기까지 오시게
2,209번째 줄:
 
‘이놈이 웬 놈인고, 귀신인가 사람인가. 이러한 깊은 산에 천년 묵은 여우가
있어서 재주를 발닥//발닥발닥발닥 넘어 사람의 탈을 쓰고 사람을 홀리느라고 이리하나.
 
십분 의심이 날수록 정신을 차리고 정신을 차릴수록 의심이 난다.
2,227번째 줄:
말도 하고 마음에 없는 허락도 하는 시늉을 하며 아무쪼록 이 산에서 욕을
보지말고 저 놈을 속여서 사람 있는 곳으로만 데리고 가면 나는 죽어도 욕을
아니 보고 죽을 도//리를도리를 하겠다 싶은 생각이 있어서 최치운이를 꾄다.
 
(부인)“여보, 두말 마시오. 낸들 이렇게 흉악한 곳에 와서 짐승의 밥이 될지,
2,243번째 줄:
터인데 그 고생을 어떻게 , 하셨소, 옛말에 고진감래라 하였으니, 부인도 그
말과 같이 고생하던 운이 다 진하고 좋은 일만 생기느라고 나 같은 사람을
만났소그려.// 사람이라는 것이 고생을 말고 살아야 사람인 듯싶으지, 인간
고생을 혼자 맡아 가지고 일평생을 지내면 주리 한 바퀴를 얼른 틀리고
마는 것이 차라리 편할 터인데, 내가 들으니 부인은 시집살이 고생이 허다한
2,255번째 줄:
먹고사는 재미가 무슨 재미요. 우리 집에는 열두 마리 개가 종일 뼈다귀로
사오. 말이 뼈다귀지, 사람이 갈비를 구워 먹어도 침만 바르고 내어놓지 누가
그//질긴그질긴 것을 그리 잘 먹소. 자, 이 산에서 이렇게 긴 이야기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아름다운 연분을 맺고 내 고향으로 가서 삽시다.
 
2,272번째 줄:
달아나니 포수가 소리를 버럭 지르는데 산골이 울린다.
 
“이놈 게 있거라.//네가 가면 어디로 가겠느냐, 이 총이 천보총이다 …….
한 발자국 들여놓고 약을 재고 한 발자국 내어놓고 방아쇠를 그으면 노루,
사슴, 토끼, 범이라도 자국을 못 떼고 떨어진다. 네가 몇 발자국이나 가서
2,289번째 줄:
별호가 장포수라. 미련하기도 첫째 갈 만하고, 고지식하기도 첫째 갈 만 하고,
총 잘 놓기로는 첫째를 칠 터인데, 만일 조선 포수를 모두 모아 놓고 완고
선생님이 꼬//늘꼬늘 지경이면 가상지상에 알관주를 칠 터이요, 개명한 학교
선생님이 시험을 받을 터이면 우등상이 될 터이라. 나이 삼십이 되도록 장가도
못 들고 오십여 세 되는 어미 하나와 단 두 식구가 사는지라. 치악산
2,306번째 줄:
“어머니, 오늘은 별 사냥을 하였소.”
 
(노파)“호호호, 너는 참 사냥도 잘한다.// 어느 날이든지 빈속으로 들어오는
날은 없구나. 참나무 장작불 피워 놓고 어서 구워 먹자. 오늘 배고프겠다.”
 
2,322번째 줄:
하며 쉴 새 없이 말을 하는데, 딱쇠는 장포수의 이름이라, 그날 장포수가 사냥을
하러 나갔다가 홍참의 며느리가 곤란 당하는 것을 보고 천진의 분한 마음이
있어//서있어서 최치운이를 총으로 놓아 죽이고 홍참의 며느리를 데리고 제
집으로 온 터이라.
 
2,339번째 줄:
물끄러미 보다가 다시 그 아들을 보며,
 
(노파) “단구역 마을 누구라더냐?”//
 
(장) “홍참의라든지
2,358번째 줄:
이씨부인 이 더운 방에 앉아 배길 수가 없어서 문 밖으로 나섰더니, 어느 모퉁이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거늘 부인이 의심이 나선 버선발로 가만가만히
쫓아//가는데쫓아가는데, 장포수의 모자가 안방에 목소리 아니 들릴 만한 곳에서
말을 하느라고 뒷골목에 큰 고목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 뒤로 돌아가서 말을
하는지라. 사람은 보이지 아니하고 목소리만 들리니, 부인이 감히 가깝게
2,372번째 줄:
날뛰더라 하니, 그놈은 누구란 말이냐?”
 
(포수)“낸들 알 수 있소”//
 
(노파) “네가
2,392번째 줄:
(노파)“계집의 마음이 솔깃하여 살면 그만이지 누가 알기나 하겠느냐.
 
그년이 만일 너를 너무 싫다고 왜장을 치거든 총으로 놓아 죽여 없애 버리려무나.”//
장포수가 그 말을 듣더니 욕심이 불같이 생기던지 입이 떡 벌어져서,
 
2,409번째 줄:
헛일하였구나. 글쎄, 그년이 우리 말하는 소리를 들었나 보구나. 그런 망한년
보았나. 저를 일껏 데려다가 뜨뜻한 방에 들여앉혔더니 무엇이 부족하여
도망을 한단 말이냐.//이애. 일이 분하지 아니하냐. 그물에 걸린 고기를
놓쳤구나.”
 
2,424번째 줄:
그렇지 아니하더면 고년을 그때 그 자리에서 당장에……. 어 참 절통하거든.”
 
하면서 이씨부인을 찾아다니는데,// 그때 다행히 어둔 밤이라, 이씨부인이 어느
바윗돌 위에 꼭 붙어 서서 장포수의 목소리를 다 듣고 있으나 장포수의
눈에 띄지 아니하였는데, 장포수의 어미가 횃불 하나를 들고 나오더니, 이씨
2,439번째 줄:
노파가 횃불을 번쩍 들고,
 
“예 있다, 저리로 달아난다.// 딱쇠야, 얼른 가서 붙들어라.”
 
하며 소리를 지르는데, 부인이 제 정신이 있고 달아나든지 정신 없이 달아나든지,
2,456번째 줄:
 
딱쇠가 제깐에도 어림없는 짓 한 줄 알고도로 제 집으로 가려 하나 어디 가
어//디인지어디인지 알 수가 없는지라. 처음에는 소리를 나직나직하여 어미를 부르다가
대답이 없으니 마지못하여 군호 소리를 크게 냅뜨다가 원래 짐승 많은
산중이라 겁이 더럭 나서 아무 소리 못하고 어림치고 제 집을 찾아가는 데
2,472번째 줄:
당겼는데, 방아쇠가 뚝 떨어지며 총소리가 탕 난다.
 
마침 그 옆에 범 한 마리가 엎드렸다가 사람의 발자취를 듣고 튀어나오려다가//
바람결에 화승 내를 맡고 바위 돌 옆에 납죽 엎드리던 터이라 딱쇠의
헛총이 터지면서 공교히 그 철환이 범의 허리를 맞춘지라. 천 근 대호가 선불을
2,488번째 줄:
구경을 하러 나섰던지 원주 치악산 구결을 들어갔더라.
 
사람이 수가 좋으면 여간 짐승 낱이나 있는 곳으로 쏘다녀도 관계치 아니 하던//지하던지,
수월당이 칠십 년을 산에서 늙고 산으로만 쏘다녀도 짐승 무서운 줄을
모르고 다녔는데 어림없이 믿는 것이 있더라.
2,506번째 줄:
비탈에 내리구르는데 그 비탈은 과히 위태한 비탈은 아니오, 사태 내린
황토이라. 한 길쯤 되는 구렁텅이 속으로 굴러 들어가며 웬 여편네의 몸뚱이와
마주 부딪치며 마//주마주 소리를 질렀더라.
 
그 여편네는 이씨부인이라. 부인이 구렁텅이에 굴러 떨어질 때에는 죽는 줄만
2,521번째 줄:
받으려 하여도 못 받는 것이라. 나를 기름에 졸이든지 칼로 저미든지
내마음은 못 빼앗을 터인데, 이 몹쓸 놈이 내 마음은 못 빼앗고 내 몸을 빼앗으려
드니, 세상에 이런 일도 있단 말이냐.// 이놈, 이 몹쓸 포수놈아, 네가
우악한 힘을 믿고 내 몸을 억지로 욕을 보이고 네 욕심 채움을 하려거든
그 자리에서 네 총으로 나를 놓아 죽여다오. 만일 그 자리에서 나를 죽이지
2,540번째 줄:
 
욕은 본 셈 잡고 설운 생각만 하고 우는데, 중의 염불도 그치지 아니하고 부인의
울음도 그치지 아니한다.//양반이
대단한 것이니 무엇이 대단한 것이니 하여도 사람의 평생 공부한 심력같이
대단한 것은 없는지라. 수월당이 추운 것도 잊고 배고픈 것도 잊어
2,556번째 줄:
(부인)“여보 여보, 말 좀 물어봅시다. 염불하는 소리를 들으니 아마 어느
절 대사인가 보구려. 관세음보살님이 인간에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시려고
자비심 많고 도덕심 깊은 대사를 보내셔//서보내셔서 나를 살려주라 하시더니까.
 
나는 아무 죄 없이 사람이 겪지 못할 고생을 하다가 그 고생도 내게 과분하던지,
2,574번째 줄:
보고는 자세 알 수 없는 곳이라.
 
그 산에 구경이 좋다고 글 짓고 노래하고 술 먹는 구경꾼들이 어느 봉에 발자//취발자취
아니 간 곳이 없는 터이라.
 
2,591번째 줄:
와서 돌기는 도나 정작 승이 우물가에 나오는 것을 보면 숫기가 좋지
못하여, 얼른 가서 먹을 물 좀 달라 소리도 못하고 남에게 발등을 디디어
빼앗기고 도리어 슬슬 피하여 간다.// 냉수
바가지나 족히 얻어먹은 놈의 이름은 혜명이요, 냉수 한 바가지도 못
얻어먹은 놈의 이름은 강은이라. 혜명이가 냉수를 켤 때마다 강은이는 눈꼴이
2,608번째 줄:
하였더니, 그 몹쓸 강은이란 놈이 혜명이더러 하는 말이,
 
“이놈아,//너도 사람이지, 그 승년이 우물에 갈 적마다 네가 쫓아다니던 것은
나만 보았느냐. 오냐, 다른 것은 다 그만두고, 소월당 스님 생신 날 그년이
소월당 스님을 뵈옵고 오는 길에 네가 그 승방 근처에 숨어 있다가 그년을
2,624번째 줄:
그러나 그놈은 제가 허덕거리던 죄나 있으니 불쌍할 것이 없거니와, 혜명이와
눈이 맞았느니 배가 맞았느니 하고 늙은 승, 젊은 승이 모여 앉아서 벌을
쓰고 내쫓는 것을 // 당하는 승의 사정이야 참 불쌍하건마는, 불쌍하게 여기는
사람은 없고 ‘그년 그년’하며 욕하는 사람뿐이라.
 
2,642번째 줄:
 
(수월)“나무아미타불, 미련한 인간은 애매한 말을 하더라도 밝으신 부처님은
무죄한 줄 아실 터이//니터이니, 사람이 평생에 제 마음만 옳게 가지면 그만이지
무슨 걱정하시오.”
 
2,660번째 줄:
 
정이 들어 보고 싶어서 그렇게 생각나는 것이 아니라 원수같이 미워서 생각이
난다.// 속인은 최치운이와 장포수요, 중은 혜명이와 강은이라. 진저리가
부득부득 치이고, 이가 박박 갈리도록 생각이 나는데, 등뒤에서 그런 몹쓸놈이
쫓아오는 듯 오는 듯하여 잠시라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어 겁이 나는데,
2,687번째 줄:
부처님의 마음, 하늘보다 높으신 부처님의 도덕, 일체 중생을 크게 사랑하시고
크게 슬피 여기시는 부처님께서 소승을 도와주소서. 소승이 어디로 가든지
욕만 보지 아니하도록 도와주시면 이 몸이// 이 생에 겁계를 지낼 대로
지내고 부처님 도를 닦을 대로 닦아 보겠습니다.
(이 몸이 이 생에 착한
2,703번째 줄:
선득하며 평생에 맡아보지 못하던 흉악한 냄새가 코를 칵 찌르는 듯하거늘,
수은이가 고개를 푹 수그리며 손으로 얼굴에 떨어진 것을 집어 버리는데
무슨 썩은 창자//이라창자이라.
 
수은이가 코를 찡그리고 진저리를 부득부득 치며 세수할 물을 찾아다니나 그
2,719번째 줄:
짖고 연기나는 조그마한 동네를 찾아 들어가니, 몇 집이나 되는 동네인지
건성드뭇한 마을집이 띄엄띄엄 박혔는데, 어느 집일는지 이웃집 모르게 떡하여
먹기 좋을 만하게 된 집들이라.// 수은이가
어느 집이든지 찾아 들어가서 하룻밤 잠이나 자고 아침, 저녁 밥 두
끼만 얻어먹고 갈 작정인데, 어느 집으로 들어가면 좋을지 몰라서 주저하다가
2,735번째 줄:
우리 아버지가 평안감사로 계실 때는 내가 어리고 철모를 때라. 내가 선화당에
눌러 나갔다가 영명사 중이 우리 아버지께 문안하러 온 것을 보고 내가
무서워서 울었더니 통인이 중이 내쫓던 생각이 지금도 의회하게 나는구나. //
에그, 또 한 가지 생각나는 일 있다. 내가 평안 감영 선화당에서 꾀꼬리가
우는 소리를 듣고 저 꾀꼬리 잡아 달라고 아버지께 응석을 하며 떼거리를
2,749번째 줄:
단구역마을 홍참의 . 집 대문 밖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는 사람을 교군에
담아서 그 흉악한 치악산에 갖다 버릴 때에 내 마음이 어떠하며 내 고생이
어떠// 하였던고. 에그, 내가 겪은 일을 생각할수록 소름이 죽죽 끼치고 진저리가
부득부득 치이는구나. 오냐, 호강을 하였든지 고생을 하였든지 지낸
일은 꿈같이 생각하면 그만이지만, 이후에는 또 무슨 고생이 남았는지 생각을
2,760번째 줄:
“고생도 분수가 있지. 내가 밥까지 빌어먹으러 다닌단 말이냐. 오늘 낮에
죽고 싶은 생각이 나서 죽으려다가 아니 죽은 것이 내 생각이 잘못 들었구나.
하늘이 죽어라 죽어라 하신 내 팔자가 아니 죽고 살아 있으니// 무슨 고생을
아니하리. 오냐, 눈 꿈쩍 죽으면 이것저것 모르고 내 신세에 편할 것이라.
내가 죽어도 잊히지 못하는 것은 한 가지 뿐이라. 친정 부모의 은혜를
2,772번째 줄:
 
하더니 웅그리고 앉은 채로 눈을 깍 감으면서 우물 속으로 뚝 떨어지는데 물 속에서
물구나무를 섰다.// 조선
천지에 사람 많이 사는 곳은 장안 성중이라. 체바퀴같이 둥그렇게 둘린
성 가운데 흩어진 바둑같이 총총 들어박힌 것이 사람의 집뿐이라.
2,789번째 줄:
둘러치고 화류 문갑 나란히 놓고 갖은 문방 제구에 우리나라 물건과 서양
물건을 간간이 섞어 놓고, 매화분 위에는 파란 새 한 쌍이 오르락내리락 하고,
벽에//걸린벽에걸린 자명종은 오후 다섯시를 땅땅 치는데, 아랫목 몽고 요 위에
앉은 부인은 주인 정부인이라.
 
2,806번째 줄:
“금홍아, 이리 가깝게 와서 이야기 좀 자세하여라.”
 
금홍이가 고개를 수그리고 눈물을 씻으며 윗간으로 나가다가 아랫간으로 //
돌쳐 들어오는데, 본래 금홍이가 밤벌레같이 살이 찌고 복사꽃같이 곱던 얼굴이러니,
중병을 치렀는지 벼만 남은 얼굴에 혈색이 조금도 없고 왼편 다리를
2,823번째 줄:
 
본래 홍참의 집에서 며느리를 죽을 곳에 보내려고 야단이 나던 날에 금홍이가
이씨부인의 교군채를 붙들고 바른말을 하다가 고두쇠 발길에 어찌 채이고//
얻어맞았던지 한 달 동안을 몸져누웠다가 한 달 만에 겨우 일어나서 치악산에
갔던 교군꾼을 찾아보고 말을 솜씨 있게 묻기도 하였거니와, 교군꾼은
2,842번째 줄:
애쓴 덕이라. 만일 최서방 치운이가 살았더면 내가 돈더미에 올라앉고 너희들이
내 술에 곯아 죽었을 것이다. 자, 먹어라, 네 주량을 내가 안다, 엄살
말고 먹어라.// 술 먹으며 할 이야기가 있다. 우리끼리 못할 말이 무엇
있겠느냐.”
 
2,858번째 줄:
가르쳐 주었던지, 가느라 가느라고 연기 나는 것을 보고 쫓아가니, 그 집이
장포수의 집이라, 장포수의 어미가 장포수 죽은 후에 장포수의 대강이와
두 발목쟁이와 총과 화약// 통만 주워다가, 대강이와 발은 땅에 묻고 총과
화약통은 방에 두고 보며 자식을 생각하고 청승으로 세월을 보내는데, 감자
섬 있는 것만 다 먹은 후에는 빌어먹으러 나갈 모양이라.
2,873번째 줄:
계집아이라, 어디로 가든지 제일 겁나는 것이 남자이라. 금홍이가 사람을
보면 코먹은 소리를 어찌 솜씨 있게 하던지, 건달이 놈들이 얼굴만 보고
쫓아와서 지분거리다가 목소리//를목소리를 들으면 돌아서 하는 말이, 아깝다고년,
인물값을 하느라고 벌써 종두를 넣고나 하며 달아난다.
 
2,888번째 줄:
정부인이 금홍이 나가던 날부터 때마다 기다리고 날마다 기다리면서 애매한
금홍의 어미 아비를 의심하여 도망을 시켰느니, 빼 팔아먹었느니 하면서
꾸짖고 달래고 어르고 벼르는데, 금홍 어미가 의심을 받을 만한 일도 있더라.//
당초에 금홍이가 서울로 들어오던 날 정부인 앞에 서서 목이 메어서 홍참의
집 이야기를 하는데, 정부인의 경상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눈 여린 계집종들이
2,903번째 줄:
우리 금홍이는 명도 길지. 범이 개 끓듯 하는 그 산중에서 어찌 살아왔누.
 
올 겨울이 아무리 춥지는 아니하다 하였으나, 산에서 한둔을 하고 어찌 살아.//
그나 그뿐인가, 치악산에서 내려와서 그 길로 또 다른 곳으로 나서서 아씨를
찾으려고 향방 없이 다녔다 하니, 저 혼자 나서서 찾기를 무슨 재주로
2,918번째 줄:
금홍의 어미 아비를 다른 하인보다 별로 귀애하는 모양이라, 그런 고로
금홍의 어미가 금홍이를 도망시킨 줄로 의심하던 사람들이 다시 이판서를
의심하여// 수근거린다.
 
“정녕 대감께서 금홍이를 첩으로 들여앉히고 집 사 주어서 숨겨 두었나 보다.
2,934번째 줄:
따라 나섰는데 돈을 물쓰듯한다.
 
단구역마을 홍참의 집에서 그 며느리 없애 버린 후에는 그 집안에서 재미가//
옥시글옥시글할 줄 알았더니, 며느리 없앤 후에는 무엇이 부족하여 김씨부인의
쨍알거리는 소리가 나는지 한 달 삼십 일에 웃고 지내는 날이 눈살을
2,949번째 줄:
그러나 김씨부인이 옥단에게 주고 싶어서 준 것이 아니라, 며느리 입던 옷과
세간에 며느리 귀신이 붙은 듯이 보기도 싫은 마음이 있어서 불에 살라
버리려다가 약은 꾀를 먹고 옥단에게 내주었는데, 옥단이는 이 마//음을마음을 모르는
것이 아니나, 아랫사람은 유구무언이라고 좋은 낯으로 받았더라.
 
2,965번째 줄:
(옥) “마님,
마님께서 올해 설은 참 재미있게 지내십니다. 건넌방 아씨가 아니
계시니 앓던 이 빠지니보다 시원할 것이올시다.// 쇤네가 공치사는 아니합니다마는
말씀은 바루 여쭙지, 쇤네가 아니면 그런 큰일을 하시겠습니까.”
 
2,982번째 줄:
부인 앞에 바싹 안기며,
 
“에그머니,// 저것이 무슨 소리요, 건넌방 언니 죽은 귀신이 왔나베.”
 
하면서 눈이 둥그래지니, 부인은 그 소리를 듣고 소름이 더욱 쪽쪽 끼치며 무서운
2,999번째 줄:
(부)“네가 밖에 나가도 무서운 마음이 없겠느냐.”
 
(남)“어머니와 둘이 나가면 무섭지 아니하여.”//
 
(부) “그러면
3,016번째 줄:
소리 같고, 옥단이는 본래 잠귀가 어두운 년이라, 또한 잠이 깊이 들어서
귀에 왕방울을 흔들어도 모를 지경이라, 남순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데
옥단이는 아니 깨고 옆의 행랑에서 자던 춘심이 추월이가 일어나 나와서//
옥단이를 부르니, 그럭저럭 온 집안이 다 깨었더라.
 
3,033번째 줄:
무슨 큰 구경이나 난 듯이 모여 들어와서 기왓장 늘어놓은 것을 보더니,
그 중에 글자나 배우는 아이가 쳐다보며 수군거리는데,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이 삽시간에 여러 아이들이 모두 떠들며 나가더라.//무엇을
보고 그 아이들이 수군거리느냐 할 지경이면 별 것이 아니라 홍참의
집 안방 지붕 위의 기왓장을 활짝 벗겨 놓고 그 기왓장을 이상하게 늘어 놓았는데
3,049번째 줄:
절반이라.
 
“애고 애고, 이런 원통한 일이 있나.// 내가 치악산 깊은 곳에 원통한 귀신이
되었으나 물 한 모금 떠놓아줄 사람이 없구나. 요년 옥단아, 내가 네
원수를 갚겠다, 너의 댁 마님 원수를 갚겠다. 새해에는 너의 댁에 좋은 일은
3,067번째 줄:
한다.
 
“조 방정맞은 귀신,// 제가 울면 누구를 어찌할 터인가, 제가 사람을 잡아
갈 수 있으면 벌써 와서 잡아갔지, 몇 달이나 지낸 뒤에 이제 와서 저들
밖에서 께께 울고만 있어, 오냐, 울대로 울어라. 네가 암만 울기로 누가 고뿔이나
3,078번째 줄:
것을 가만히 내버려두면 참 뉘게 와서 붙기도 쉬운 것이라, 내가 쫓아나가서
복숭아 나뭇가지로 휘두르며 쫓아 버리겠다. 요것, 누구를 보채면 굿이나
하고 떡조각이나 있을 줄 알았느냐.//고 배라먹을 여편네, 나는 고것을
송도 최서방에게 붙여 주려고 그 애를 써서 치악산 그 으슥한 곳으로 끌고
가다가 나는 교군꾼을 데리고 어디 가서 슬쩍 숨고, 최서방은 교군 뒤에 멀찍이
3,093번째 줄:
 
본래 고두쇠가 애만 쓰고 최치운의 돈을 얻어먹지 못한 것이 제일 분한 일이라.
당초 이씨부인이 아무 앙탈 없이 살며시 최치운이만 따라갔더면 옥단이와//
고두쇠가 큰 수가 날 터인데, 그것이 마음대로 아니 된 것을 생각하니
열이 버썩 나서 못 견딜 지경이라. 그러나 그것이 다 욕심에서 나온 병이라.
3,110번째 줄:
다 같이 난 터이라, 이마에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사시나무 떨 듯 발발 떨며
눈이 동그래 앉아서 공론이 부산하다가 춘심이, 추월이를 보고 반색을 하는
// 이라, 고두쇠가 안마당에서 기침을 하며 마님께 여쭙는 말로.
 
“소인 고두쇠올시다. 저것 큰일났습니다. 건넌방 아씨께서 정녕 원귀가 되셨나
3,123번째 줄:
김씨부인이 그 소리를 듣고 귀가 반짝 띄어서 미닫이를 열고 내다보며,
 
“이애 고두쇠야.// 네가 참 내게는 충노이다. 전년 겨울 그 일에 내가 애를
좀 썼느냐. 내가 네 공로는 다 알고 있다. 오늘 낮에도 영감마님께 네 말씀을
무수히 여쭙고 별 상급을 주기로 작정한 일도 있다. 이애 옥단아, 내가
3,137번째 줄:
이 길로 저 원귀 우는 곳으로 혼자 나가서, 전후의 죄는 모두 소인의 죄로
말씀하고 빌겠습니다. 그러면 돌아간 아씨께서 원수를 갚아도 소인에게 갚을
터이오니, 이 댁에서는 아무 일 없을 터이올시다.// 별 수 없이 소인이
혼자 얼른 나가서 죄를 받겠습니다.”
 
3,152번째 줄:
저것 때문에 홍참의 댁이 망할 것을 나 때문에 성하고 보면, 우리 댁에서
나를 논 섬지기나 주어 살려 싸지. 내일부터는 굿은 하여 무엇하게. 날마다
굿에 쓰는 돈만 나를 다 주어도 // 나는 걱정 없이 살렷다. 오냐, 어찌
되었던지 수날 놈은 나 하나뿐이다. 산 양반은 무섭지마는 죽은 여귀 하나야
겁날 것 없다.”
3,170번째 줄:
며느리 죽은 귀신에게 죽은 줄로만 알고 온 동네가 수군거리나, 고두쇠
죽기는 귀신에게 죽은 것이 아니라 장사패의 손에 맞아죽었는데, 그날 밤에
단구// 역마을 앞 들에서 울던 것은 금홍이요, 정월 초하룻날 밤부터 홍참의
집에서 도깨비 장난같이 하던 것은 장사패이다.
 
3,186번째 줄:
농군의 이야기를 듣기로 일을 삼으니, 그때 그 동네 사람들은 홍참의 집 이야기뿐이라.
홍참의 집에서 고두쇠가 죽은 후로는 날마다 무당만 불러들여서
점치고 // 굿하기로 세월을 보내는데, 사서삼경(四書三經)을 평생에 읽고
세상에 유식한 사람은 나 하나뿐이어니 여기던 홍참의도, 며느리가 죽어
원귀가 된 줄만 알고 굿을 하든지 지랄을 하든지 알은 체 아니하고 내버려두는
3,199번째 줄:
겁을 내는 터이라. 그 중에 홍참의 부인과 옥단이는 꿈을 꾸어도 이씨
부인의 귀신만 보이니 , 굿은 암만 하더라도 그 몹쓸 귀신 때문에 아무 때든지
집이 망하려니 여기고 있으면서 노주가 마주앉아서 귀신 없앨 공론만한다.//
 
== 라이선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