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壇君은 朝鮮人文의 肇祖로 닐컷게 된 만콤 그 傳說의 起原이 ᄯᅩ邃古에 屬하얏스리니 이는 朝鮮人의 民族的成立이 아득한 녯적임과 가치 무엇이든지 그 種姓의 榮耀를 爲하는 說話가 잇지아니치 못하얏슬것으로써도 넉넉히 짐작할 바이다 다만 前하야는 記錄의 述이 일즉 열리지 못하고 後하야는 佛敎의 實德論的融攝과 儒敎의 常識論的 斥否가 大又久하얏슴을 말미암아서 外國에서처럼 古傳說의 完形全傳이 거의 업슴은 學者로 하야곰 朝鮮의 歷史及文化의 時間的優越과 空間的雄渾을 부지중 ᄭᅡᆨ가 생각하게 함이 크지 아니치 못하였다 그러나 散珠를 收綴하고 隱形을 磨光하야 蕪穢한 史園에 向上의 一路를 通하면 朝鮮이 決코 稽古上의 貧戶가 아님을 안다 傳說일 법하야도 神話일 법하야도 아모보담도 못하지 아니한 人文起原의 어린 歷史들 가젓슴을 알면 ᄯᅩ 그것이 마찬가지의 傳說이지마는 남보담 지나는 事實的背景에 彩色되어 잇슴을 알게 된다
壇君은 朝鮮人文의 肇祖로 닐컷게 된 만콤 그 傳說의 起原이 ᄯᅩ邃古에 屬하얏스리니 이는 朝鮮人의 民族的成立이 아득한 녯적임과 가치 무엇이든지 그 種姓의 榮耀를 爲하는 說話가 잇지아니치 못하얏슬것으로써도 넉넉히 짐작할 바이다 다만 前하야는 記錄의 述이 일즉 열리지 못하고 後하야는 佛敎의 實德論的融攝과 儒敎의 常識論的 斥否가 大又久하얏슴을 말미암아서 外國에서처럼 古傳說의 完形全傳이 거의 업슴은 學者로 하야곰 朝鮮의 歷史及文化의 時間的優越과 空間的雄渾을 부지중 ᄭᅡᆨ가 생각하게 함이 크지 아니치 못하였다 그러나 散珠를 收綴하고 隱形을 磨光하야 蕪穢한 史園에 向上의 一路를 通하면 朝鮮이 決코 稽古上의 貧戶가 아님을 안다 傳說일 법하야도 神話일 법하야도 아모보담도 못하지 아니한 人文起原의 어린 歷史들 가젓슴을 알면 ᄯᅩ 그것이 마찬가지의 傳說이지마는 남보담 지나는 事實的背景에 彩色되어 잇슴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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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은 조선 인문(人文)의 시조(始祖)로 일컫게 된 만큼 그 전설의 기원(起源)이 또 아득한 옛날에 속하였으리니 이는 조선인의 민족적 성립이 아득한 옛적임과 같이 무엇이든지 그 신분제도의 영광을 위하는 설화가 있는 것으로써도 넉넉히 짐작할 바이다. 다만 전대(前代)에는 기술(記述)이 일찍 이루어지지 못하고 후대(後代)에는 불교의 실덕론(實德論)적인 통섭(統攝)과 유교의 상식론적(常識論的) 배척이 크고 또한 길었음으로 말미암아서 외국에서처럼 완전성을 갖춘 고전이 거의 없음은 학자로 하여금 조선의 역사 및 문화가 시간적으로 우월하고 공간적으로 웅장하여 막힘이 없음을 부지중 깎아 생각하게 함이 컸다. 그러나 흩어진 구슬을 꿰고 숨은 모습을 갈고 닦아 잡초가 무성한 역사의 정원(庭園)에 향상의 길로 통하면 조선이 결코 옛적의 가난한 집이 아님을 안다. 전설일 법하여도 신화일 법하여도 어느 것에도 못하지 아니한 인문(人文)기원(起源)의 어린 역사를 가졌음을 알면 또 그것이 마찬가지의 전설이지만 남보다 나은 사실적 배경에 채색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단군은 조선 인문의 시조로 일컫게 된 만큼 그 전설의 기원이 또 아득한 옛날에 속하였으리니 이는 조선인의 민족적 성립이 아득한 옛적임과 같이 무엇이든지 그 신분제도의 영광을 위하는 설화가 있는 것으로써도 넉넉히 짐작할 바이다. 다만 전대(前代)에는 기술(記述)이 일찍 이루어지지 못하고 후대에는 불교의 실덕론(實德論)적인 통섭과 유교의 상식론적 배척이 크고 또한 길었음으로 말미암아서 외국에서처럼 완전성을 갖춘 고전이 거의 없음은 학자로 하여금 조선의 역사 및 문화가 시간적으로 우월하고 공간적으로 웅장하여 막힘이 없음을 부지중 깎아 생각하게 함이 컸다. 그러나 흩어진 구슬을 꿰고 숨은 모습을 갈고 닦아 잡초가 무성한 역사의 정원에 향상의 길로 통하면 조선이 결코 옛적의 가난한 집이 아님을 안다. 전설일 법하여도 신화일 법하여도 어느 것에도 못하지 아니한 인문 기원의 어린 역사를 가졌음을 알면 또 그것이 마찬가지의 전설이지만 남보다 나은 사실적 배경에 채색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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壇君傳의 原形 ⎯⎯ 最古態가 어ᄯᅥ한 것인지는 시방 무론 徵驗할 길이 업다 시방 우리의 가진 바 그 直接表現的 最古徵憑인 者는 高麗國 義興華山 曹溪宗 麟角寺 迦智山下 普覺國尊으로 닐컷는 [[:w:일연|一然禪師]](西紀 一二〇六 ⎯ 一二八九)의 撰인 『[[:w:삼국유사|三國遺事]]』에 거두운 그 一傳이니 三國遺事는 그 名과 가치 三國의 遺聞軼事를 收載한 것으로 [[:w:김부식|金富軾]]의 『[[:w:삼국사기|三國史記]]』<ref>원문은 ‘紀’이나, 오자임이 명백하다.</ref> (西紀 一一四五년 撰成)를 後하기 凡 百餘<ref>원문은 ‘許’이나, 오자임이 명백하다.</ref>年後의 記錄이다 三國遺事는 필시 當時 文籍의 淵叢이던 佛門傳來의 材料로써 三國史記의 闕漏를 補述하기 위하야 撰輯된 것이니 『史記』가 儒家的常識論(상식론)에 繩縛되여서 무슨 標準에 依한 劃一的 取捨를 加함에 對하야 『遺事』는 佛敎人的融通性으로써 古樸純實하게 素材를 거두어 노핫슴이 어ᄶᅵ 탐탐한지를 모를 일이다 後世의 眼으로써 古代의 事를 觀함은 三國史記의 내용을 퍽 疏略하게 만드럿지마는 佛敎方面에 流傳한 그 一部가 간혹 『遺事』의 中에 徵考됨을 우리는 못내 다행해야 할 적이 퍽 만히 잇다.
壇君傳의 原形 ⎯⎯ 最古態가 어ᄯᅥ한 것인지는 시방 무론 徵驗할 길이 업다 시방 우리의 가진 바 그 直接表現的 最古徵憑인 者는 高麗國 義興華山 曹溪宗 麟角寺 迦智山下 普覺國尊으로 닐컷는 [[:w:일연|一然禪師]](西紀 一二〇六 ⎯ 一二八九)의 撰인 『[[:w:삼국유사|三國遺事]]』에 거두운 그 一傳이니 三國遺事는 그 名과 가치 三國의 遺聞軼事를 收載한 것으로 [[:w:김부식|金富軾]]의 『[[:w:삼국사기|三國史記]]』<ref>원문은 ‘紀’이나, 오자임이 명백하다.</ref> (西紀 一一四五년 撰成)를 後하기 凡 百餘<ref>원문은 ‘許’이나, 오자임이 명백하다.</ref>年後의 記錄이다 三國遺事는 필시 當時 文籍의 淵叢이던 佛門傳來의 材料로써 三國史記의 闕漏를 補述하기 위하야 撰輯된 것이니 『史記』가 儒家的常識論(상식론)에 繩縛되여서 무슨 標準에 依한 劃一的 取捨를 加함에 對하야 『遺事』는 佛敎人的融通性으로써 古樸純實하게 素材를 거두어 노핫슴이 어ᄶᅵ 탐탐한지를 모를 일이다 後世의 眼으로써 古代의 事를 觀함은 三國史記의 내용을 퍽 疏略하게 만드럿지마는 佛敎方面에 流傳한 그 一部가 간혹 『遺事』의 中에 徵考됨을 우리는 못내 다행해야 할 적이 퍽 만히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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