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제8장

제8장
여왕의 크로켓 경기장

다란 장미 나무 한 그루가 정원 입구에 서 있었다. 나무엔 흰 장미가 피었는 데, 세 명의 정원사가 바쁘게 빨갛게 칠하고 있었다. 앨리스는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하고는 좀 더 살펴보려 가까이 다가갔다. 다가서니 정원사 하나가 “다섯! 자꾸 페인트를 내게 흘려서 묻히지마!”하고 말하는 걸 들을 수 있었다.

다섯은 풀이 죽은 목소리로 “어쩔 수 없었어. 일곱이 자꾸 내 팔꿈치를 치거든.”하고 대답하였다.

일곱은 다섯을 흘겨보면서 “적당히 해, 다섯! 늘 다른 사람 핑계만 대지.”하고 말했다.

다섯은 “그런 소리 하지마!”라고 응수하면서 “어제 여왕께서 네 목을 치는 게 낫겠다고 하시는 걸 들었어.”하고 말했다.

“대체 왜?”하고 제일 처음 말을 시작한 정원사가 물었다.

일곱은 “네가 상관할 것 없어, 둘!”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다섯은 “그럼, 둘이 상관할 일은 아니지”하면서도 “내가 대신 말하면, 양파 대신 튤립 뿌리를 요리해 바쳤거든.”하는 것이었다.

일곱은 붓을 떨어뜨리며 “그건 너무 불공평한 일 --”이라고 말하기 시작하며 붓을 집어 들려다가 앨리스를 보고는 깜짝 놀랐고, 나머지도 앨리스를 둘러싸고는 굽어 보았다.

앨리스는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저, 왜 장미를 색칠하고 있는지 말해줄래요?”하고 물었다.

다섯과 일곱은 아무 말 없이 둘을 쳐다 보았고, 둘은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왜냐면, 사실은, 보다시피, 아가씨. 원래 여기는 빨간 장미 정원인데 우리가 그만 실수로 흰 장미 한 그루를 심었답니다. 만약 여왕께서 이걸 알게 되면, 알다시피, 우리 모두 목이 달아나요. 그래서 보다시피, 아가씨. 우리는 폐하가 오시기 전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때 아까부터 걱정스럽게 정원 건너편을 살피던 다섯이 말했다. “여왕님이다! 여왕님!” 그러자 세 정원사는 엎드려서 얼굴이 자신들의 몸만큼 납작해질 정도로 땅에 붙였다. 많은 발자국 소리가 들리자 앨리스는 여왕을 보기 위해 이쪽저쪽을 살폈다.

맨 처음 나타난 것은 방망이를 옮기는 열 명의 병사들이었다. 이 병사들도 정원사들처럼 네모나고 납작한 몸을 하고 있었고, 네모난 몸 모서리에 팔다리가 나 있었다. 다음으로 열 명의 신하들이 보였다. 이들은 다이아몬드 무늬를 하고 있었고 병사들처럼 둘씩 짝지어 나타났다. 그 다음으로 손님들이 왔는 데, 대부분 왕이나 여왕이었다. 앨리스는 그 속에 흰토끼가 있는 것을 알아보았다. 흰토끼는 몸시 긴장한 가운데 분주히 움직였고, 얼굴 가득 웃음을 짓고 있었다. 흰토끼는 앨리스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지나쳤다. 그 뒤로 하트의 잭이 붉은색 벨벳 쿠션 위에 올려진 왕관을 들고 들어섰다. 모두가 정원에 들어서자 드디어 하트의 왕과 여왕이 입장하였다.

앨리스는 자신도 정원사들처럼 엎드려야 하나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행렬에 그런 규칙이 있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고, “게다가 모두 얼굴을 땅에 붙이고 엎드린다면 행렬이 무슨 소용이야? 아무도 보지 못할 텐데.”하는 생각에 서서 행렬이 오기를 기다렸다.

행렬이 앨리스가 있는 곳에 다다르자 모두 멈춰서서 앨리스를 바라보았다. 여왕은 엄한 얼굴로 앨리스를 보더니 “이 자는 누군가?”하고 하트의 잭에게 물었다. 하트의 잭이 절하며 미소만 짓자 여왕은 “멍청이!”하고 말하고는, 성미 급하게 머리를 흔든 뒤, 앨리스에게 다가가 “아이야, 이름이 뭐지?”하고 물었다.

“앨리스입니다, 폐하.”하고 앨리스는 예의 바르게 대답하였다. 하지만, 앨리스는 스스로에게 “그나저나 왜 카드 한 벌 뿐이지? 두려워할 것 없어”하고 혼잣말을 하였다.

여왕은 장미 나무 주변에 엎드려 있는 정원사들을 가리키며 “이자들은 누구지?”하고 물었다. 물론 정원사들은 땅에 바짝 엎드려 있었서 등쪽만 보였고, 등쪽은 무늬가 모두 똑같았기 때문에, 앨리스는 그들이 정원사인지 나중에 온 병사들인지 아니면 신하들이나 여왕의 자식들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앨리스는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하고 대답하고는 갑작스레 용기가 나서 “제가 상관할 일이 아닌 걸요.”하고 덧붙였다.

여왕은 분노로 새빨개져서 야수가 포효하듯 소리쳤다. “저 아이의 목을 쳐라! 목을 --”

앨리스는 “말도 안 돼!”하고 소리질렀고, 여왕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왕이 여왕의 팔을 잡고 조심스레 “생각해보시오, 여보. 아이일뿐이잖소”라고 말했다.

여왕은 화를 내며 뿌리치고는 잭에게 명령했다. “저들을 뒤집어라.”

잭이 명령을 받고 그들을 하나씩 천천히 뒤집으려 하였다.

그러자, 여왕은 크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일어나!”하고 명령하였고, 세 정원사는 펄쩍 뛰며 일어서고는 왕이며 여왕, 왕가의 아이들과 여러 신하들 모두에게 굽신거리며 절하였다.

여왕은 “거기서 떨어져!”라고 소리치고는 나무로 다가가 “날 어지럽게 하다니! 여기서 무얼 하고 있었나?”하고 물었다.

“네, 폐하. 저희는 --”하고 둘이 무릎까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왕은 나무를 살피며 “알았다!” 하더니, “저들의 목을 쳐라!”하고 명령하고는 행렬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 세 명의 병사가 남아 불행한 세 정원사를 처형하게 되었다. 정원사들은 앨리스 뒤로 숨으며 살려달라고 하였다.

앨리스는 “머리를 베는 건 안 돼!”하고 말하고는 세 정원사를 근처에 있는 커다란 화분 안으로 숨겼다. 세 병사는 잠시 주변을 어슬렁 거리다 행렬을 따라 떠났다.

여왕은 “머리를 잘랐나?”하고 물었다.

병사들은 “잘랐습니다! 폐하!”하고 대답하였다.

여왕은 “좋아!”하고 소리치더니 “크로켓 할 줄 아나?”하고 물었고, 병사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앨리스에게 한 질문이기 때문이었다.

앨리스는 “예!”하고 소리쳤다.

“그럼, 이리 오너라.”하고 여왕이 말했다. 앨리스는 행렬에 합류하였고 다음엔 무슨 일이 벌어질까 궁금해 하였다.

“정--, 정말 좋은 날이야.” 걱정스럽게 앨리스의 얼굴을 바라보던 흰토끼가 앨리스에게 다가와 인사했다.

앨리스는 “정말.”하고 인사하고는 “공작부인은 어디있지?”하고 물었다.

흰토끼는 “쉿, 쉿!”하고 작은 목소리로 재빨리 말하고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까치발을 하고 앨리스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처형 선고를 받았어.”

“무엇 때문에?”

“지금 ‘불쌍해’하고 말한 거니?”

“아니,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 하나도 안 불쌍해. ‘무엇 때문에’라고 말했어. ”

“공작부인이 여왕의 귀를 쳤거든 --”하고 흰토끼가 대답하였다. 앨리스는 조금 큰 소리로 “헉!”하는 소리를 내었고, 흰토끼는 “아, 쉿!”하며 두려운듯 조용히 하라고 속삭이면서 “여왕께서 듣잖아. 여왕이 이걸 들으면--”하고 말하였다.

이 때, 여왕이 “자기 위치로 가!”하고 천둥처럼 큰 소리로 말했다. 사람들은 우왕좌왕 서로 부딪히며 자기 자리를 찾아 움직였다. 잠시 뒤 자리가 정돈되고 게임이 시작되었다.

앨리스는 이렇게 이상하게 생긴 크로켓 경기장은 처음 본다고 생각했다. 경기장은 이랑과 고랑이 번갈아 나 있어 울퉁불퉁하였고, 공은 살아있는 고슴도치인데다 공을 치는 방망이는 살아있는 플라밍고였다. 병사들은 자신의 몸을 쌓고 손발로 엮어 아치를 만들었다.

가장 어려운 일은 플라밍고를 다루는 것이었다. 앨리스는 플라밍고의 몸을 팔 사이에 끼고 다리가 밑으로 빠지도록 하여 꽉 잡는데 성공했지만, 홍학의 잘 뻗은 머리로 고슴도치를 맞추어야만 하였다. 하지만 플라밍고가 고개를 돌려 앨리스를 바라보자 앨리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앨리스는 처음부터 다시 해야했는데, 그 사이 고슴도치는 동그랗게 말았던 몸을 쭉 펴더니 이랑과 고랑으로 울퉁불퉁한 경기장을 데굴거리며 도망갔다. 더욱이 자기 몸을 쌓아 아치를 만든 병사들도 자꾸 이곳저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앨리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이렇게 어려운 경기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사이 사람들은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지 않고 경기장에 들어오는 가 하면, 고슴도치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싸웠다. 여왕은 불같이 화를 내며, “저 자의 목을 쳐라!”, “이 자의 목을 쳐라!”하고 소리지르고 있었다.

앨리스는 몹시 불편해졌다. 앨리스는 여왕에게 그러지 말라고 하고 싶지만, 그랬다간 어떻게 될 지 알고 있었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될까? 하지만 이러다간 여기 있는 사람 모두가 목이 잘리게 생겼는걸? 아무도 살아남지 못하겠어.”

앨리스는 여기를 빠져나갈 길을 찾아 보았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이 때 하늘에서 무언가 이상한 것이 나타났다. 앨리스는 처음엔 그것이 무었인지 몰랐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다. “체셔 고양이네! 이제야 말이 통하는 것을 보는구나.”

채셔 고양이는 입만 나타나서 “여긴 어떻게 온 거야?”하고 물었다.

앨리스는 고양이의 눈이 보이면 이야기를 해야지 하고 생각하다가, 귀까지 나타나야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앨리스는 “한 쪽 귀라도 나와야지 들을 수 있을 것 아냐?”하고 생각하며 경기는 그만두기로 하고 플라밍고를 땅에 내려 놓고 체셔 고양이가 나타나길 기다렸다. 고양이는 점점 모습을 드러내었고, 이제 충분히 나타났다고 생각되었다.

앨리스는 “이 사람들 모두 정당하게 경기를 하지 않아.”하고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다른 사람 말은 아예 듣지도 않아, 그리고 규칙도, 그런 게 있기나 하다면 말이지만, 전혀 지킬 생각이 없어. 모두 엉망진창이야. 살아있는 것을 가지고 경기를 하는게 얼마나 힘든지 알아? 저기 경기장 반대편으로 가버린 아치가 내가 공을 넣어야 하는 곳이라고. 지금 여왕의 고슴도치를 가지고 크로켓을 해야 하는데, 그게 쳐다보는 사이에 도망가더라구.”하고 목소리를 높여 불평을 늘어 놓았다.

체셔 고양이는 “여왕이 좋아?”하고 물었다.

앨리스는 “전혀! 여왕은 정말이지 --”하고 대답하다가 여왕이 다가오는 걸 보았다. 여왕은 “--이 이길 것 같은데, 경기를 끝내기가 참 어렵군” 하고 말하였다.

여왕은 웃으며 지나갔다.

왕이 다가오더니 “누구랑 이야기하는 거지?”하고 묻다가 고양이 머리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제 친구예요. 체셔 고양이라고 해요. 절 이곳으로 올 수 있게 해 주었어요.”하고 앨리스가 대답하였다.

왕은 “전체가 다 보이지는 않는데?”하더니 “그래도, 좋다면, 내 손에 키스할 수 있도록 허락하지.”하고 말하였다.

체셔 고양이는 “그러고 싶지 않은데요.”하고 대답했다.

왕은 앨리스의 뒤에 서서 “무례하게 굴지 마라. 그리고, 그런 식으로 날 쳐다보지마!”라고 말하였다.

앨리스는 “고양이는 왕을 쳐다볼 수 있어요. 어느 책에선가 읽었는데, 무슨 책이었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아요.”하고 말하였다.

왕은 “어쨌건, 고양이는 치워야 해!”하고 단호하게 말하더니, 이 쪽으로 다가오는 여왕을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 “여보! 이 고양이 좀 치워줘!”

여왕은 큰 것이건 작은 것이건 상관없이 언제나 한결같이 명령했기 때문에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저 것의 목을 쳐라!”

왕은 “아무래도 내 친히 처형인을 데려와야 하겠군.”하고 말하더니 황급히 자리를 떴다.

앨리스는 돌아가서 경기가 어떻게 되고 있는 지 살펴보아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 사이 멀리서 여왕이 호통치는 소리가 들렸다. 여왕은 자기 차레를 지키지 않는다고 벌써 세 명이나 처형하라고 선고했는데, 제대로 보지도 않고 그리한 것 같았다. 게임이 엉망진창이 되었기 때문에 앨리스는 언제가 자기 차례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고슴도치를 찾는 것도 그만두어 버렸다.

앨리스의 고슴도치는 다른 고슴도치와 싸우고 있었다. 앨리스는 이제야 크로켓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지만, 이번엔 플라밍고가 정원 반대편에 가 있더니 앨리스가 어찌할 사이도 없이 나무 위로 날아 올랐다.

앨리스는 나무로 가서 플라밍고를 데리고 왔다. 하지만, 이번엔 고슴도치들이 싸움을 그쳤고 둘 다 보이지 않았다. 앨리스는 “어차피 상관 없어. 아치도 이미 저 건너편으로 옮겨졌는 걸 뭐.”하고 생각하고는 친구랑 이야기나 더 하려고 돌아갔다. 이번엔 플라밍고가 다시 도망가지 못하도록 단단히 붙잡았다.

앨리스가 체셔 고양이에게 돌아가 보니,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왕과 여왕이 처형인을 사이에 두고 동시에 말하며 다투고 있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아무 말 없이 불편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앨리스가 그들에게 다가가자 셋은 한꺼번에 앨리스를 향해 질문을 쏟아부었다. 셋이 동시에 큰소리로 말했기 때문에 앨리스는 도무지 무슨 말들을 하는지 알아듣기 힘들었다.

처형인은 이미 몸뚱이가 없이 머리만 있는 것을 어떻게 머리를 자를 수 있겠냐며, 살면서 그런 소린 들은 적도 없고, 그렇게 하려면 차라리 살아온 시간을 처음부터 다시 살아야 할 것이라고 따지고 있었다.

왕은 머리가 달린 것은 모두 머리를 자를 수 있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는 하지 말라고 따지고 있었다.

여왕은 시간이 없어서 무슨 일을 못한다면 차라리 여기 있는 사람 모두를 처형하겠다고 따지고 있었다.(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낯빛이 변하더니 불안해 하였다.)

앨리스는 아무 말도 안 하려고 하였지만, 결국 “고양이는 공작부인 거에요. 공작부인에게 물어보세요.”하고 말하고 말았다.

여왕은 “감옥에 있다. 데려와.”하고 말하였고, 처형인은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그 사이 고양이는 다시 사라지기 시작하였고, 처형인이 공작부인을 데려왔을 땐 이미 완전히 사라졌다. 그래서, 왕과 처형인은 여기저기를 뒤지며 고양이를 찾기 시작하였고, 모였던 사람들은 다시 경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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