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서 상편

신약성서
사복음·종도행전

NIHIL OBSTAT

Seoul, die 3 julii 1964

Rev. Paulus Choi

Censor


IMPRIMATUR

Seoul, die 10 julii 1964

Paulus M. Ro

Archiepiscopus Seoulensis

서언편집

성서는 성신의 감도하심을 따라 기록된 천주의 말씀이다. 특히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과 말씀을 기록한 복음 성서는 모든 성서의 중심이다. 이는 어느 고명한 학자의 의견도 아니요, 어느 성인이나 선지자의 말씀도 아니다. 바로 천주 성자의 말씀이다.

이러므로 우리 천주교회는 예전부터 이 성서를 지극히 존경하여 왔으니, 모든 성직자와 수도자의 생활 중 이 성서를 읽지 않고 그대로 넘어가는 날은 하루도 없다. 주일이나 파공첨례 날 세계 모든 성당에서 교우들을 향하여 하는 강론 중 이 성서를 토대로 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자모이신 성교회는 이로써 만족치 않고, 성서를 각국어로 번역하여 모든 교우들, 특히 청년 남녀들에게 이를 존경하여 읽고, 연구하고, 묵상하기를 권장하여 왔다.

우리 한국어로 번역된 사사(四史) 성경과 종도 행전이 절판된지 오래 되므로, 만난을 물리치고 이를 다시 출판하여 교형자매들에게 제공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음을 자각하였다. 그리하여 지난 제二차 세계대전 말기의 한국 정세처럼 극심한 물자난과 검열난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를 계획하였다. 당시 부득이한 사정으로 이를 본 출판부에서 인쇄하지 못하고, 함경남도 덕원 성 분도 수도원 인쇄소에 이를 주문하였던 바, 인쇄도 다 되고 제본도 다 되었으나, 이를 운반하여 오기 전에 저 불행한 三八선이 생겼던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혹시나 저 三八선이 열리게 될까 하고 기다려 보았으나, 이제는 저 불행한 장벽이 열리게 될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 수도 없으므로, 금년에는 만난을 무릅쓰고 이 『신약 성서 상편』을 내보내기로 하였다.

한글의 새 철자법과 국어의 표준어를 따르기로 힘썼으나, 번역 원문은 그대로 존중하였다. 연구의 편의를 돕기 위하여 자세한 주해와 편찬을, 성신 대학 성서부장 노렌죠 宣鍾完 신부께 청하였던 바, 신부는 분망한 교무중에도 흔연히 틈을 내어, 연구하기에 편리하도록 권위있는 성서 학자들에 준거하여 주해와 편찬을 하여 주었으므로 이에 감사함을 마지 않는 바이다.

『천주의 사람은 천주의 말씀을 듣느니라』(요 八·四七)고 구세주 예수는 우리를 향하여 말씀하신다. 이러므로 교우 대중은 먼저 이 복음 성서와 숙친하여, 거기서 무진장의 자양분을 섭취할 줄을 우리는 믿는 바이다.

一九四八년 八월

서울교구 출판부

일러두기편집

一, 이 책에 기록된 四복음과 종도 행전의 성서 본문은 고 한(韓基根) 바오로 신부님께서 불가따(Vulgata=일반의 편) 라띤문을 우리 말로 일찍이 번역하신 것이다.

二, 또 이 책에 첨부된 각 복음과 종도 행전의 입문 및 그 본문에 병행시킨 간단한 주해는 다음 저서의 직역이다.

⑴ 신약성서 입문

(Fillion : La Sainte Bible commentée, tome, Ⅶ, pp. 9-10)

⑵ 성 복음서 입문, 마테오 복음의 입문, 말구 복음의 입문, 루까 복음의 입문, 요왕 복음의 입문

(Initiation Biblique, pp. 119-132)(Les Evangiles: Hùby)

⑶ 사복음서의 주해

(Crampon : Manuel du chrétien, pp. 1-307)

⑷ 종도 행전의 입문과 주해

(Fillion : Le Nouveau Testament, 1 tome, pp. 357-468)

이만 하면 독자에게 성서의 전통적 해석을 간단히 소개한 줄 믿는다. 이 직역은 성신 대학에 재학 중인 김 바오로(정진), 최 분도(익철) 양군의 과감한 노력으로 된 것이다. 미숙한 점이 없지 않을 것이나, 크게 기대할 장래를 가진 젊은 학도의 처녀작으로 널리 펴기를 주저치 않는 바이다. 이 노력에 있어 편자가 산파역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면, 영광이라고 할 것이다.

三, 끝으로 비는 바는, 현명한 독자는 이 주해의 불완전한 점을 들어, 주저 없이 편자를 채찍질하시라. 이는 그 우둔함이 혹시나 풀릴까 하여 아뢰는 말씀이다.

一九四八년 八월 二十五일

서울 성신 대학에서

편 자 부 언

신약성서 사복음·종도행전 차례편집

신약성서 입문 (필리옹 지음)편집

一, 신약 성서를 구성하는 책자들

낱낱이 세어서 二十七권으로 되었으니, 목차에 보는 바와 같다.

이 권수는 경전이 확정된 후부터는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항상 같은 순서로 배열된 것은 아니었다.

성 복음서는 거의 항상 첫 자리를 차지하여 왔고, 종도행전은 그 뒤를 이어 따르는 것이 상례이었으나, 때로는 바오로 서간 뒤에 붙기도 하였다. 바오로 서간은 일반으로 공서간(公書簡)이라 칭하는 서간에 앞서 놓여 있으나, 그 반대로 되기도 하였다. 요왕 묵시록은 끝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상례이었다.

二, 각권의 유별(有別)

교회 초기 시대에는 신약 성서를 『복음과 종도』(끌레멘스 알렉산드리노) 혹은 복수로 『복음과 종도들』(성 이레네오)로 이분(二分)하기를 즐겼다. 종도, 종도들 혹은 종도서라고 부르는 부분은 복음서를 제외한 신약 성서의 남은 전부를 가르키는 것이다. 떼르뚤리아노 역시 신약을 『복음 기구(器具)와 종도기구』로 구별하였다.

금일에 있어서는 신약 성서의 내용을 따라 다음과 같은 유별(有別)을 일반적으로 취한다. 즉 역사편, 교훈편, 예언편, 이 三편이다. 첫편은 사복음서(四福音書)와 종도 행전이니, 이 두 부분은 서로 잘 연결되나 또 확연히 구별되니, 첫 부분은 강생하신 천주의 『말씀』, 천주 구세주, 교회의 창립자, 입법자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생활을 논하고, 둘째 부분은 구세주의 승천(昇天)시에 겨우 싹트던 교회가 어떻게 종도들, 특히 성 베드루와 성 바오로로 인하여 건설되고 발전하여 가는가를 논한다. 둘째 편도 역시 두 부분으로 되어 있으니, 즉 첫째 부분은 성 바오로의 十四 서간이요, 둘째 부분은 성 베드루, 요왕, 야고버, 유다의 쓰신 七 공서간이다. 셋째 편은 묵시록 한 권으로 되어 있으니, 이것이 신약과 구약의 큰 차잇점이다. 즉 구약은 줄곧 장래를 바라보고 형상이 실체로써 실현되어감에로 전진(前進)하고 있으나, 이와 반대로 신약은 『희망의 종교』가 아니라 『완성된 종교』이다. 따라서 구약은 수많은 예언서를 포함하였으나, 신약은 다만 묵시록 한 권만을 포함할 뿐이다.

성복음서 입문 (위 비 지음)편집

구술(口述) 복음에서 기술(記述)된 복음으로

一, 복음의 시초는 구술 복음이다

우리가 『복음』이란 말을 들을 때, 우선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것은 그레까 문, 라띤 문, 기타 국문으로 된 복음서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의 초기에는 이렇지 않았다는 것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복음은 한 권 서적이 되기 전에 한 『말씀』이었고, 쓰이기 전에 설교되었다. 읽어지기 전에 귀에 들리었다. 『신앙은 설교를 들음에서 생기고, 설교는 그리스도의 명령으로 되는 것이다』(로마 一〇·一七). 복음은 그 첫 기원에 있어, 처음 솟아나옴(通出)에 있어 그리스도의 설교이었고, 그가 인간에게 전하시던 천주의 통첩(通諜)의 구술된 내용, 즉 구원의 복음(복된 소식)이었다.

세상에 생존하시는 동안, 그리스도는 『말씀』을 씨뿌리셨고, 청중의 마음에 호소하셨다. 이때, 듣는 자의 마음씨를 따라 서로 큰 차이가 있는 결과를 내었으니, 혹은 경솔함으로 날려 보내기도 하고, 혹은 사욕(邪慾)으로 숨막아 죽이기도 하고, 혹은 그와 반대로 선의를 가진 영혼 안에서는 자라 결실하기도 하였다. 종도들은 이미 그리스도 생존 시에 얼마간의 설교 실험을 하여 보았다(말복 六·七~一三).

그들은 성신 강림 후 계속하여 설교의 임무를 보았다. 설교는 기구와 신자 집회의 사회(司會)와 함께 그들의 본질적 요무(要務)이었으니(종도 六·四), 그들은 『말씀』에 봉사하는 자들이었다(루복 一·二).

그러나 어떠한 의미에 있어서는 종도들의 설교가 그리스도의 설교의 내용보다 더한 것이 있다고 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에게 천주의 나라의 임함, 이 나라에 들어가 생활하게 되는 조건, 그 외 제자들 간의 호상(互相) 관계, 제자들과 스승이신 주와의 관계, 천주 성부와의 관계 등을 규율(規律)하는 계명, 또 신자들이 유다 회당에서 분리된 한 교회 단체를 이루는 데 필요한 제도(制度)와 예식(禮式) 등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지상 생활을 이야기 아니 하셨으니, 이것은 되어가는 도중에 있었다. 역사는 다만 지난 일에 대해서만 말함으로써이다. 그는 사방에 두루 다니시며 선을 베푸셨으니(종도 一〇·三八), 병든 육신과 죄 있는 영혼을 치료하셨고, 제자들의 기억에 사라지지 않도록, 당신의 양선, 권능, 자비, 결백, 성부와의 형언치 못할 일치의 깊은 감명(感銘)을 박아 주셨다. 그리고 이와 같은 그리스도의 기적, 기구의 철야(徹夜), 절대적 청빈(淸貧), 형제인 인생을 위한 수난과 죽음, 이 모든 것은 그의 강론과 함께 다 같이 강생하신 『말씀』의 계시(啓示)에 속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성 아오스딩의 말씀 같이, 그리스도께서 천주의 『말씀』이시니까, 그의 행동도 우리에게는 일종의 『말씀』 즉 교의(敎義)와 훈계가 되는 것이다.

종도들은 천주의 성자의 계시와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그들이 귀로 친히 들은 바와 눈으로 친히 보고 손으로 친히 만진 바를 인간에게 전할 사명을 맡았으므로, 예수께서 발령하신 계명을 전하고, 그리스도의 사명과 인격에 관한 그리스도 자신의 선언(宣言)을 공포함에 만족할 수 없었고, 또한 그의 행적을 증명하고 그 생활의 중요한 점, 특히 공무(公務), 즉 『가르치신 바』와 함께 또한 『실천하신 바』(종도 一·一)를 서술할 필요가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다 『주 예수께 관한 사정』(종도 一八·二五, 二八·三一)을 형성하던 것이다.

二, 종도들의 교리 강화(敎理講話)

모든 것을 다 말한다는 것은, 특히 대중에게 하는 설교 같은, 완전한 풀이에 적합지 않은 전도 방식에 있어서는 더우기 불가능한 일이므로, 종도들은 자연적으로 그리스도의 언행(言行) 중에서 그리스도를 인식케 하기에 가장 적절한 것을 선택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말씀』의 봉사자간에는 큰 줄기에 있어 일률적인 일정한 가르침틀(敎授標準型), 예수의 생활과 교의를 전하는 공통된 방식이 생기게 되었다. 이것이 소위 교리 강화(가떼케시스)라 불리는 것이다(루복 一·四, 종도 一八·二五, 갈라 六·六).

이 교리 강화의 일반적 내용을 규정하는 데 있어, 종도들의 회합, 그 중에도 특히 성 베드루의 중요한 역할이 있었다는 것은 의심 없다. 종도 행전에서는 새로 난 교회의 으뜸 설교자로 나타나는 수종도의 첫 설교의 요지가 기재되어 있다. 이 설교 중의 하나인 저 꼬르넬리오 일가 친척에게 하신 베드루의 강론은 유달리 뜻깊은 바가 있다. 이 설교에서 우리는 첫 교리 강화의 초안(草案)과 같은 것을 본다. 즉, 『너희도 알거니와, 이 말씀은 요안이 그 세를 강론한 후로 갈릴레아에서부터 시작하여 온 유데아에 전하였으며, 천주 성신과 전능으로써 예수 나자레노를 축성하시매, 예수가 두루 다니시며 은혜를 베푸사, 마귀의 압복 하에 있는 모든 이를 낫게 하시니, 천주 예수와 한가지로 계심이러라. 우리는 예수가 유데아 지방과 예루살렘에서 행하신 모든 일을 증거하는 자로라. 저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달아 죽였으나, 천주는 제 삼 일에 저를 부활케 하시고 또한 발현케 하실새, 모든 백성에게 발현케 아니 하시고 오직 천주 미리 간택하사 증인이 될 우리들에게 발현케 하셨으매, 우리는 예수 죽은 자 중으로조차 부활하신 후에 함께 먹고 마셨노라』(종도 一〇·三七~四一).

이상 교리 강화의 요지는 후에 성 말구 복음이 따를 구상(構想)의 초안이라 하겠으니, 즉 말구 복음은 네 부분으로 되어 있어, 一, 요안 세자의 설교와 예수의 영세(領洗), 二, 갈릴레아에 있어서의 예수의 전교, 三, 갈릴레아에서 유데아와 예루살렘으로 옮겨 가심, 四, 수난, 죽음, 부활과 부활 후 발현 등으로 되어 있다.

그 외에 다른 두 복음서, 즉 성 마테오와 성 루까의 기록한 복음서도(요왕 복음은 그 특수성으로 여기에는 같이 논할 것이 아니다) 비록 예수의 설교를 더욱 많이 실리기는 하였으나 같은 순서를 밟았다. 이상 세 복음서의 내용의 대부분은 나란히 줄지어 실어 놓고 일별하여 읽어볼 수 있으므로, 이 세 복음서를 공관 복음서(共觀福音書)라는 명칭으로 불러, 그리스박하(一七七六) 저술인 『복음의 공관』 이후로 신약의 비판에 있어 상용되어 온다.

三, 기록된 복음

복음의 설교가 복음서의 저술에 앞섰고, 또 이것을 효과 있게 준비한 것은 확실히 긍정할 수 있으나, 그 과도(過渡)의 자세한 것을 묘사함은 문헌(文獻)의 결핍으로 불가능하다. 초세기 전통에서 우리가 아는 바에 의하면, 마테오 종도가 빨레스띠나에 거주하며 아라메아말을 사용하던 유데아 사람들을 위하여 그 말로 교리 강화의 첫 서술을 남겼다. 그 다음, 그레까말을 사용하던 예루살렘 주민들과, 특히 복음이 빨레스띠나 지경을 넘어 그레치아와 로마 판도내에 거주하는 분산된 유데아인들과 그들의 종교를 따르는 천주를 두려워하는(종도 一〇·二二, 一三·一六, 二六, 四三, 五〇, 一六·一四) 이방인(異邦人)에게 있어서는 복음을 그레까말로 통역 내지 번역할 필요를 절실히 느꼈다. 성 루까는 자기 성 복음 서문에 있어 그보다 먼저 『여러 사람들이 -혹은 많은 사람들이- 우리 중에 된 바 사적을 과연 힘써 차례로 저술하되, 처음부터 친히 본 자들과 도를 전하던 자들이 우리게 전한 대로 하였느니라』(루복 一·一)고 기록하였다.

성 루까보다 먼저 그리스도의 역사를 저술한 사람 중에는 아라메아말로 쓰신 성 마테오와, 성 베드루의 교리 강화를 그레까말로 적은 성 말구를 들 수 있다. 그러나 이들만으로는 루까 성사가 말하는 『많은 사람』을 이룰 수는 없으니, 그 이유는, 성 루까는 특히 그레까말로 적는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하시는 말인 까닭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모든 이들이 우리의 복음서와 같은 분량으로 그리스도의 역사를, 요안 세자에게 세 받으심부터 수난, 부활에 이르는 모든 점을 기록하였다는 것은 증명되어 있지 않다. 즉 이미 다른 곳에서 말한 바 있음 같이, 그리스도의 공생활 전부를 적기 전에 그의 말씀과 행적을 부분적으로 적기를 시작하였으리라 추측할 수 있으니, 비컨대, 제 一복음서에 쓰여 있는 산상(山上)강론집 같은 격언의 수집이라든가, 수난의 역사와 같은 한 무더기진 이야기 같은 것이다.

그리스도교적 문장의 이 첫 작품 중에서 어찌하여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복음서만이 남아서 교회 안에 인정되어 있는가? 아마 이 복음서가 전에 나타난 문헌을 이용하였으므로 가장 완전한 것이었을 것이다. 즉, 마테오와 루까는 그 공통한 예수의 『강론 말씀』을 적음에 있어 전연 동일한 자료에 의한 것이 아니면, 적어도 그것이 문헌이거나, 구전(口傳)이거나, 서로 긴밀한 관계가 있는 참고 자료에서 온 것이라고 가정할 수 있다. 루까 복음에 있어도 그 고유한 부분에 있어서는(九·五一~一八·一四) 특별한 자료가 있었으리라고 추측된다.

그러나 교회가 이 복음서를 특선한 결정적 이유는, 우리 사복음서(四福音書)가 종도의 권위를 구비하고 나타났다는 데 있는 것이다. 즉 그 중 둘은 마테오와 요왕종도 친히 저술하신 것으로 되어 있고, 남은 둘은 종도들과 긴밀한 접촉이 있던 종도의 즉제자(卽弟子), 즉 베드루의 교리 강화를 적은 말구와, 바오로의 가르침을 반영하는 루까의 저술로 되어 있다. 복음서는 교회 안에서 기록되고,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기록되었으므로, 그리스도께서 창설하시고 종도들이 다스리는 교회가 현존하느니만큼, 생활한 교도 기관을 대행(代行)할 수 없다. 교회는 계시의 위탁물을 보관하는 권한을 가졌으므로, 글로 기록되고 안 됨을 불문(不問)하고, 신앙과 도덕에 관한 일에 있어 홀로 권위 있는 해석 기관으로 존속하여 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전달의 중요한 부분을 서로 다른 여러 저자들이 여러 책에 적었다 하더라도, 그리스도가 하나 뿐임과 같이, 복음도 본시 하나 밖에 없다는 것을 교회는 명료히 기억하고 있었다. 교회는 구원의 복음 하나만을 인정한다. 그런데 이 유일한 구원의 복음이 마테오에 의하여, 말구에 의하여, 루까에 의하여, 요왕에 의하여 네 모양으로 제시(提示)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 이레네오가 『열교를 거슬러』(三·一一~一八)에서 『네 가지 모양을 가진 한 복음』을 지시한 것을 보는 바이다.

강력한 독창성(獨創性)을 띤 환경 중에 저술된 우리의 복음서는 일반 문학 작품에 있어 새로운 변화를 보인다. 『이 복음은 어떠한 고전 문학의 형식에서도, 어떠한 그레까 대중 문예 작품에서도 그 본을 뜨지 않았다』 성 유스띠노가 복음서를 『종도들의 수기(修己)』라 불러 『소끄라떼스에 대한 쎄노폰의 수기 혹은 추억』에 비교하는 뜻을 가졌다 할지라도, 이 근접점을 과중시할 것이 못된다. 쎄노폰의 『수기』는 소끄라떼스가 여러 과제(課題)에 대하여 가진 사상과 그 교설의 동기(動機) 등을 말하여 주나, 소끄라떼스의 전기를 소묘하지는 않았다. 이와 달리, 복음서는 예수의 완전한 전기(傳記)는 아닐지라도, 그 역사의 주요한 점을 그렸다.

복음 성사들은 대외적(對外的) 원수의 공격을 거슬러 그리스도를 직접 변호하려 저술치 않았다. 그들은 진실한 증인으로서 저술하였고 그리스도의 생활과 도리를 단순히 제시함으로, 선의를 가진 영혼에게 환영받으리라 믿었었다. 드 그랑매송 신부의 말씀같이, 『복음서는 변호보다도 현시(顯示)라 할 것이니, 신덕을 북돋우고 생활한 번짐(傳播)으로 전하여 주고, 능력있고 지력있는 자에게 이미 튼 싹을 커지게 하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서로 친근한 한 분위기를 이루는 공통한 점이 있는 한편, 또 각각 독특한 점을 구비하였으니, 이것이 이제부터 간단히 논하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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