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중엽 프랑스 17 , 천지에 있어서 하이든의 예술과는 전연 관계가 없 고 교섭이 없던 이 때에, 하이든의 교향곡을 제일 먼저 프랑스에 수입한 사 람은 꼬섹과 글루크의 일단이었읍니다. 이 두 사람은 유명한 바이올리니스 트 까비니에와 함께 바이올린 40개, 첼로 12개, 콘트라바스 8개 기타 목관 악기 등등으로 오케스트라를 조직하여, 프랑스 악단에 교향악을 창시했읍니 다.

그런데 꼬섹은 96세의 장수를 한 사람으로서, 오히려 죽음이라는 관념에 대해서는 한없는 공포를 느껴서, 특별히 그의 만년에는 죽음이라는 말만 들 어도 고개를 돌이켰다고 합니다. 1817년, 그가 84세 되던 때의 일입니다. 그의 樂友[악우] 메유르의 葬禮式[장례식]이 거행되던 날, 그의 친우가 그 를 데리러 왔던 바, 그는

“뭐야, 葬禮式[장례식]? 안 간다. 안 가. 모처럼 잊어버리고 있던 死神 [사신]에게 내 얼굴을 보였다가는 큰일 날라구…….”

하고, 머리를 내흔들었다는 일화까지 있읍니다. 이같이 죽음을 두려워하던 그도 일에 대하여는 놀랍게 열심이었읍니다. 그가 오페라 코믹에 근무하게 된 이래, 어떠한 사고가 있더라도 결코 결근한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어떤 날 그는 常例[상례]와 같이 극장으로 향하던 도중에, 원체 노령이라 그랬던지, 노상에 졸도한 일이 있었읍니다. 길 가던 사람들은 썩은 나무와 같이 쓰러진 이 노인을 보자, 모두 달려와서 간호를 해 주었던 것입니다. 應急治療[응급치료]를 베푼 결과, 겨우 정신을 차리게 된 노인에게 집이 어 디냐고 물었더랍니다.

“노인께서 정신이 좀 나신 모양입니다그려. 그러나 혼자 가셔서는 위험하 니 댁을 일러 주시면 모셔다 드리지요.”

꼬색 노인은 감사한 뜻을 표하면서 이같이 대답했다고 합니다.

“아니, 고맙소이다. 그러면 저 오페라 코믹으로 데려다 주시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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