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의 시조. 저작 연대는 미상이나 지은이의 다른 한국어 시가가 45세와 54세 사이에 지어졌기 때문에 〈장진주사〉도 이 시기에 지은 것으로 추측된다. 홍만종(洪萬宗)은 《순오지(旬五志)》에서 정철이 이백(李白)과 이하(李賀)의 〈장진주(將進酒)〉를 본받고 두보(杜甫)의 시를 취했다고 하였다. 가사로 보는 견해와 시조로 보는 견해가 있으나 시조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1] 《송강가사(松江歌辭)》, 《문청공유사(文淸公遺詞)》에 실려 전하며 《청구영언(靑丘永言)》, 《근화악부(槿花樂府)》 등 각종 가집에도 널리 수록되어 전한다.[2]
한 잔 먹세그려 또 한 잔 먹세그려 꽃 꺾어 세어놓고 무진무진 먹세 그려 이 몸 죽은 후면 지게 위에 거적 덮어 줄 이어 매여 가나 유소보장[3]의 만인이 울며 가나 억새[4] 속새[5] 떡갈나무[6] 백양 숲에 가기만 하면 누런 해〔日〕 흰 달〔月〕 가는 비〔細雨〕 굵은 눈 소소리바람[7] 불 때 누가 한 잔 먹자할꼬 하물며 무덤 위에 잔나비 휘파람 불 때 뉘우친들 어찌 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