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感氣[감기]로 三日前[삼일전]부터 누웠다. 그러나 只今[지금] 熱[열] 도 식고 頭痛[두통]도 나지 아니한다. 오늘 아침에도 學校[학교]에 가려면 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如前 [여전]히 자리에 누웠다. 留學生[유학생] 寄宿舍[기숙사]의 二十四疊房[이십사첩방]은 휑하게 비었다. 南向[남향]한 琉璃 窓[유리창]으로는 灰色[회색] 구름이 덮인 하늘이 보인다. 그 하늘이 근심 있는 사람의 눈 모양으로 자리에 누운 나를 들여다본다. 큰 눈이 부실부실 떨어지더니 그것도 얼마 아니하여 그치고 그 차디찬 하늘만 물끄러미 나를 들여다본다. 나는 「기모노」로 머리와 이마를 가리우고 눈만 반작반작 하면 서 그 차디찬 하늘을 바라본다. 이렇게 한참 바라보노라면 그 차디찬 하늘 이 마치 커다란 새의 날개 모양으로 漸漸[점점] 가까이 내려와서 琉璃窓[유리창]을 뚫고 이 휑한 房[방]에 들어와서 나를 통으로 집어 삼킬 듯하다.

나는 불현듯 무서운 생각이 나서 눈을 한 번 깜박한다. 그러나 하늘은 도로 아까 있던 자리에 물러가서 그 차디찬 눈으로 물끄러미 나를 본다.

내 몸의 따뜻한 것이 내게 感覺[감각]된다. 그러고 나는 只今[지금] 저 하늘을 쳐다보고 또 只今[지금] 하늘이 나를 삼키려 할 때에 무섭다는 感情 [감정]을 가졌다. 나는 살았다. 確實[확실]히 내게는 生命[생명]이 있다.

只今[지금] 이 이불 속에 가만히 누워 있는 이 몸뚱이에는 確實[확실]히 生 命[생명]이 있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는 이불 속에 가만히 다리도 흔들어 보고 손가락도 움직여 보았다. 움직이리라 하는 意志[의지]를 따라다니며 손가락이 움직이는 것과 또 그것들이 움직일 때에 「움직이네」하는 筋肉感覺[근육감각]이 생길 때에 「아아 이것이 生命[생명]이로구나」하고 나는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如前 [여전]히 저 차디찬 灰色[회색]구름 끼인 하늘이 琉璃窓[유리창]을 通[통]하여 물끄러미 나를 보고 있는 것을 본다.

舍生[사생]들은 다 學校[학교]에 가고 舍內 [사내]는 靜寂[정적]하다. 이 커다란 寄宿舍內 [기숙사내]에 生命[생명] 있는 者[자]라고는 나 하나 밖에 없다. 그러고 下層[하층] 自習室[자습실] 네모난 시멘트 火爐[화로]에 꺼지다 남은 숯불이 아직 내 몸 모양으로 따뜻한 기운을 가지고 다 사라진 잿속에서 반작반작할 것을 생각하였다. 나는 그 불덩어리가 보고 싶어서 곧 뛰어내려 가려다가 中止[중지]하였다. 그러고 내 親舊[친구] C 君[군]이 日 前 [일전]에,

『나는 밤에 火爐[화로]에 숯불을 피워 놓고 電燈[전등]을 끄고 캄캄한 속에 혼자 앉아서 그 숯불을 들여다보고 앉았는 것이 第一[제일] 즐거워.』

하던 것을 생각하고 그 숯불을 우두커니 보고 앉았는 C 君[군]의 마음이 어째 내 마음과 같은 듯하다 하였다.

平生[평생]에 불김을 보지 못하는 寢室[침실]은 춥다. 게다가 누가 저편 琉璃窓[유리창]을 半[반]쯤 열어 놓아서 콧마루로 찬바람이 휙휙 지나간다.

그 琉璃窓[유리창]을 닫고 싶으면서도 일어나기가 싫어서 콧마루로 찬바람 이 지나갈 때마다 물끄러미 그 琉璃窓[유리창]을 보기만 한다. 어떤 親舊 [친구]가 아침에,

『이불이 엷지요. 추우실 듯하구려.』

하고 壁藏[벽장]에 넣으려던 自己[자기]의 이불을 덮어 주려 하는 것을 나는,

『아니요.』

하고 拒絶[거절]하였다. 내 이불이 엷기는 엷아도 決[결]코 춥지는 아니하였다. 내 몸은 至極[지극]히 따뜻하였다. 그러나 내 生命[생명]은 毋論[무 론] 추웠다. 마치 只今[지금]이 大寒[대한]철인 것과 같이 내 生命[생명]은 추웠다. 그러나 이불을 암만 많이 덮고 房[방]을 아무리 덥게 하여 내 全身 [전신]에서 땀이 흐른다 하더라도 추워하는 내 生命[생명]은 決[결]코 따뜻한 맛을 보지 못할 것이라.

가만히 자리에 누워 琉璃窓[유리창]으로 물끄러미 들여다보는 灰色[회색] 구름 덮인 겨울 하늘을 보면 그 하늘의 차디찬 손이 내 조그마한 발발 떠는 生命[생명]을 주물럭주물럭하는 듯하여 몸에 소름이 쪽쪽 끼친다. 나는 차 마 더 하늘을 바라보지 못하여「기모노」로 낯을 가리웠다가 그래도 安全 [안전]치 못한 듯하여 일어나 揮帳[휘장]으로 琉璃窓[유리창]을 가리웠다.

室內 [실내]의 空氣[공기]는 참 차다. 마치 죽은 사람의 살 모양으로 甚 [심]하게도 싸늘하다. 四壁[사벽]에 걸린「기모노」의 소매로서 차디찬 안개를 吐[토]하는 듯하고 至今[지금]껏 나를 들여다보던 차디찬 灰色[회색] 구름 덮인 하늘이 눈가루 모양으로 가루가 되어 琉璃窓[유리창] 틈과 다다미 틈과 壁[벽] 틈으로 훌훌 날아 들어와 내 이불 속으로 모여 들어오는 듯 하다. 마치 내 살과 피의 모든 細胞[세포]에 그 차디찬 하늘 가루가 달라 붙어서 그 細胞[세포]들을 얼게 하려는 듯하다. 나는 이불을 푹 막 쓰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잠이 들기를 바라는 사람 모양으로 가만히 있었다. 내 心臟[심장]의 똑똑 뛰는 소리가 이불에 反響[반향]하여 歷歷[역력]히 들린다. 나는 한참이나 그 소리를 듣다가 차마 더 듣지 못하여 얼굴을 내어 놓고 눈을 번쩍 떴다.

〈그것이 내 生命[생명]의 소리로구나.〉 하고 가만히 天井[천정]을 바라보았다.

〈그것이 왜 무엇하러 똑똑 뛰는가. 또는 언제까지나 뛰려는가.〉 하였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벌써부터 하던 생각이요, 생각할 때마다 그 對答[대답]은「나는 몰라」하던 것이라. 그러나 이 心臟[심장]이 언제까지나 이렇게 똑똑 뛰려는가. 只今[지금] 내가 이렇게 똑똑 뛰는 소리를 듣는 이 귀로 早晩間[조만간]이 똑똑 뛰는 소리가 끊어지는 것을 들으렷다. 그때에 나는 〈아뿔사 똑똑하는 소리가 없어졌구나.〉 하고 이제는 몸이 식어가는 양을 볼 양으로 이 따뜻하던 몸을 만져 볼 餘裕 [여유]가 있을까. 그러고, 〈무엇하러 이 心臟[심장]이 똑똑똑똑 뛰다가 이 똑똑똑똑 뛰기를 그쳤는고?〉 하고 생각할 餘裕[여유]가 있을까.

그러고 나는 이러한 생각을 하였다. 만일 내가 只今[지금] 앓는 病[병]이 次次[차차] 重[중]하여져서 마침내 죽게 되면 어찌할꼬. 그러나 내게는 슬픈 생각도 없고 무서운 생각도 없다. 아무리 하여도 이 世上[세상]이 아까 운 것 같지도 아니하고 이 生命[생명]이 아까운 것 같지도 아니하다. 이것이 보고 싶으니, 또는 이것을 하고 싶으니, 살아야 하겠다 하는 아무것도 내게는 없다. 도리어 世上[세상]은 마치 보기 역정나는 書籍[서적]이나 演劇[연극]과 같다. 조금 더 보았으면 하는 생각은커녕, 어서 이 역정나는 境遇[경우]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생각이 날 뿐이다. 生命[생명]은 내게는 무서운 義務[의무]로다. 나는 生命[생명]이라는 義務[의무]를 다함으로 아무 所得[소득]이 없다, 나는 그동안 울기도 하고 或[혹] 웃기도 하였다. 그러 나 그것은 내게 아무 價値[가치]도 없는 것이다. 그따위 웃음과 울음을 報酬[보수]로 받는 내 生命[생명]의 義務[의무]는 내게는 무서운 괴로운 집에 지나지 못한다. 나는 조금도 世上[세상]이 그립지도 아니하고 生命[생명]이 아깝지도 아니하다. 내 今時[금시]에「死」[사]를 만나더라도 무서워하기는커녕, 「왜 이제야 오시오」하고 반갑게 손을 잡고 싶으다. 이러한 생각을 한 것은 오늘이 처음이 아니로다. 「에그 寂寞[적막]해라」 「에그 춥기도 추워라」 「에그 괴로와라」할 때마다 나는 늘 이러한 생각을 하였다. 그러고 玄海灘[현해탄]과 모르히네, 鐵道線路[철도선로]를 생각하였다. 그러나 오직 惰性[타성]으로 ─ 生命[생명]의 惰性[타성]으로 하루 이틀 讀書[독서]도 하고 上學[상학]도 하고 글도 짓고 談話[담화]도 하였다. 그러나 혼자 외딴 데 있어 反省力[반성력]이 自由[자유]로 活動[활동]하여 分明[분명 ]히 自己[자기]를 觀照[관조]할 때에는 늘 이 생각이 일어난다. 世上[세상]이 제아무리 여러 가지 빛과 소리로 내 눈과 귀를 眩惑[현혹]하려 하더 라도 그것은 저 灰色[회색] 구름 끼인 차디찬 겨울 하늘에 지나지 못한다.

나는 이 病[병]이 와싹 重[중]하여져서 體溫[체온]이 四十五[사십오], 六度 [육도]에 나 올라가 몸이 불덩어리와 같이 달아서 살과 피의 細胞[세포]와 纖維[섬유]가 활활 불길을 내며 타다가 죽어지고 싶고. 全身[전신]의 細胞 [세포]가 불길이 일도록 타노라면 내 生命[생명]도 비록 一瞬間[일순간]이 나마 따끔하는 맛을 볼 것 같다. 그 따끔하는 一瞬間[일순간]이 이따위 싸늘한 生活[생활]의 千年[천년]보다 나을 듯하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이불을 푹 쓰고 잠이 들었다. 내 몸이 熱[열]이 높아서 病院[병원] 寢牀[침 상] 위에 누웠던 꿈을 꾸다가 번하게 잠을 깨니 뉘 따뜻한 손이 내 이마 위에 있다. 學校[학교]에 갔던 K君[군]인 줄은 눈을 떠 보지 아니하여도 알았다. 나는 추운 이 世上[세상]에 그러한 따뜻한 손이 있어서 내 머리를 짚어 주는 것을 異常[ 이상]하게 여겼다. 感謝[감사]하게도 여겼다. 그 손을 내 두 손으로 꼭 잡아다가 입을 맞추고 가슴에 품고 싶었다. 그러고 어제 아침부터 누가 하루 세 때씩 牛乳[우유]를 보내 주던 것을 생각하였다. 어제 아침에 자리에 누운 대로 빳빳 마른 麵麭[면포]을 먹을 때 어떤 日人[일인] 이,

『李樣[이양]ト云 [운]フノハ貴方[귀방]テスカ?』

하고 室內 [실내]에 내가 혼자 있는 것을 보고 疑心[의심] 없는 듯이 牛乳 [우유] 두 병을 내 앞에 놓으며,

『식기 전에 잡수시오.』

하고 나가려 한다. 나는 아마 그가 사람을 잘못 알았는가 하였다. 寄宿舍 [기숙사]에는 나 밖에도「李樣』[이양]이 많다. 내게 牛乳[우유]를 傳[전] 할 사람이 누굴까 하였다. 그래서 나가려는 그 日人[일인]을 도로 불러,

『어떤 사람이 보냅디까?』

하였다. 그 日人[일인]은 殊常[수상]한 듯이 우두커니 나를 보고 섰더니,

『모르겠어요. 그저 다른 말은 없이 하루 세 때씩 李樣[이양]께 牛乳[우유]를 가져다 드리라서요.』

하고 문을 닫고 나선다. 나는 한참이나, 〈그게 누굴까?〉 하고 생각하다가 마침내, 〈내가 그 누구인지를 알 必要[필요]가 없다. 다만 나와 같은 人類中[인류 중]에 한 사람이 내가 病[병]으로 食飮[식음]을 廢[폐]한 것을 불쌍히 여겨 보낸 것으로 알자.〉 하고 반갑게 기쁘게 그 牛乳[우유] 두 병을 마셨다. 그러고 이것이 어머니의 품에 안겨 그 젖을 빠는 것과 같이 생각되어 人情[인정]에 따뜻함이 있 는 것을 感激[감격]하였다. 이러한 생각을 하면서 나는 눈을 뜨고 한 팔로 K君[군]의 허리를 안았다. K君[군]은 내 이마를 짚었던 손을 떼면서 걱정스러운 눈으로,

『좀 나으셔요?』

『녜 關係[관계]치 않읍니다.』

하고 나는 빙긋이 웃었다. 病[병]이 더쳐서 죽어지기를 바라는 놈더러,「좀 나으셔요?」하고 묻는 것이 우스워서 내가 웃는 것이언마는 K君[군]은 그런 줄은 모르면서 亦是[역시] 빙긋이 웃는다. K君[군]은 나를 미워하지 아니하 는 줄을 내가 안다. 그는 眞情[진정]으로 나의「좀 낫기」를 바라는 줄도 내가 안다. 또 K君[군] 밖에도 내가 오래 世上[세상]에 살아 있기와, 世上 [세상]을 爲[위]하여 일하기와, 또 내가 世上[세상]에서 成功[성공]하기를 바라는 者[자]가 있는 줄을 안다. 내가 만일 죽었다는 말을 들으면 「아깝다」하며「불쌍하다」하여 或[혹] 追悼會[추도회]를 하며 或[혹] 嘆息[탄식]도 하고 或[혹] 極少數[극소수]의 눈물을 흘릴 者[자]가 있을 줄도 내가 안다. 적어도 내 아내는 슬피 눈물을 흘릴 줄을 내가 안다. 나 같은 것을 有望[유망]한 靑年[청년]이라고 學費[학비]를 주는 恩人[은인]도 있고 世上 [세상]에 좋도록 紹介[소개]하여 주는 恩人[은인]도 있고 面對[면대]하여 나를 稱讚[칭찬]하며 激勵[격려]하는 恩人[은인]도 있다. 그렇다 그 親舊 [친구]들은 다 나의 恩人[은인]이로다. 或[혹] 글 같지도 아니한 내 글을 보내라고도 두세 번 連[연]하여 電報[전보]를 놓는 新聞社[신문사]도 있다.

이만하면 나는 世上[세상]에서 매우 隆崇[융숭]한 對偶[대우]와 사랑을 받는 것이다. 世上[세상]에는 나만큼도 사랑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으랴. 나는 果然[과연] 福[복]이 많은 사람이로다.

그러나 나는 늘 寂寞[적막]하다. 늘 춥고 늘 괴롭다. 四方[사방]에서 고마운 親舊[친구]들이 내 몸을 덥게 하려고 입김을 불어 주건마는 大寒[대한]에 벌거벗고 선 나의 몸은 漸漸[점점] 더 추워 갈 뿐이다. 여러 고마운 親舊[친구]들이 훗훗한 입김이 도리어 내 몸에 와서 이슬이 되고 서리가 되고 얼음이 되어, 더욱 내 몸을 얼게 할 뿐이다. 차라리 이렇게 고마운 親舊[친구]들까지 없어서 나로 하여금 「世上[세상]이 춥구나」하고 怨恨[원한]의 長太息[장태식]을 하면서 곧 얼어 죽게 하였으면 좋겠다. 이러한 愛情[애정]이 있으므로 나로 하여금 世上[세상]에 對[대]하여 義務[의무]의 感[감]을 생하게 生[ ] 하고 執着[집착]의 念[염]을 가지게 하는 것이 도리어 원망스럽다. 世上[세상]이 나에게 이러한 愛情[애정]을 주는 것은 마치 臨終[임종]의 病人[병인]에게 캄프르注射[주사]를 施[시]하는 것과 같다. 看護人 [간호인]들은 그 病人[병인]의 生命[생명]을 一瞬間[일순간]이라도 더 늘이려 하는 好意[호의]로 함이언마는 病人[병인] 當者 [당자]에게는 다만 苦痛 [고통]의 時間[시간]을 길게 할 뿐이다. 나는 實[실]로 캄프르注射[주사]의 힘으로 只今[지금]까지 살아왔다. 그러나 캄프르注射[주사]의 效力[효력]이 그 度數[도수]를 따라 減[감]하는 모양으로 世上[세상]의 愛情[애정]이 내게 주던 效力[효력]도 漸次[점차] 減[감]하였다. 마침내 病人[병인]이 注射[주사]에 反應[반응]치 못하도록 衰弱[쇠약]하는 모양으로 나도 그렇게 衰弱[쇠약]하였다. 고마운 親舊[친구]가 匿名[익명]으로 傳[전]하여 주는 따뜻한 牛乳[우유]와 K君[군]의 손을 볼 때에 나는 빙긋이 웃었다. 그러나 그는 注射[주사]의 反應[반응]이 아니요, 筋肉[근육]의 微微[미미]한 痙攣 [경련]에 지나지 못한다. 이제는 아무러한 注射[주사]도 내게 效力[효력]이 없을 것이다. 만일 무슨 效力[효력] 있을 法方[법방]이 있다 하면 人血注射 [인 혈주사]나 될는지. 어떤 사람이 自己[자기]의 動脈[동맥]을 切斷[절단] 하여 그것을 내 靜脈[정맥]에 接[접]하고 生氣[생기] 있고 펄펄 끓는 鮮血 [선혈]을 싸늘하게 衰弱[쇠약]한 나의 몸에 注入[주입]하면 或[혹] 내 몸에 붉은 빛이 나고 따뜻한 기운이 돌는지도 모르거니와 그러하기 前[전]에는 내 앞에 있는 것은 死[사] 밖에 없다. 그러나 이 人血注射[인 혈주사]! 이것이 可能[가능]한 일일까. 아니! 아니! 可能[가능]할 理[리]가 없다. 나는 죽을 뿐이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아까운 것이 없고 따라서 슬픈 것이나 무서운 것도 없다. 고마운 親舊[친구]들의 따뜻한 愛情[애정]에 對[대]한 義務[의무]의 壓迫[압박]이 未嘗不[미상불] 없지 아니하건마는, 또는 나를 爲[위]하여 눈물을 흘릴 者[자]에 對[대]하여 齟齬[저어]하고 未安[미안]한 생각이 없지 아니하건마는……그러나 그런 것들은 나로 하여금 生[생]의 執着[집착]을 感[감]하게 하기에 너무 薄弱[박약]하다.

K君[군]은 말없이 우두커니 내 얼굴을 보고 앉았더니 슬그머니 일어서서 밖으로 나간다. 나는 그의 그림자가 門[문]에서 없어지고 草履[초리]를 끌 고 層層臺[층층대]로 내려가는 소리를 들으면서 不識不知[불식부지]하고 눈물을 흘렸다. 그러고 아까 K가,

『老兄[노형]의 몸은 이미 老兄[노형] 혼자의 몸이 아닌 줄을 記憶[기억] 하시오. 朝鮮人[조선인] 全體[전체]가 老兄[노형]에게 期待[기대]하는 바가 있음을 記憶[기억]하시오.』

하던 것을 생각하였다. 이는 내가,

『나는 어째 世上[세상]에 아무 滋味[자미]가 없어지고 自殺[자살]이라도 하고 싶으오.』

하는 내 말을 反駁[반박]하는 말이었다. 果然[과연] 나는 朝鮮[조선]사람이다. 朝鮮[조선]사람은 가르치는 者 [자]와 引導[인도]하는 者 [자]를 要求[요구]한다. 果然[과연] 朝鮮[조선]사람은 불쌍하다. 나도 朝鮮[조선]사람을 爲[위]하여 여러 번 눈물을 흘렸고, 朝鮮[조선]사람을 爲[위]하여 이 조그마한 몸을 바치리라고 決心[결심]하고 祈禱[기도]하기도 여러 번 하였다.

果然[과연] 至今[지금]토록 내가 努力[노력]하여 온 것이 조금이라도 있다 하면 그는 朝鮮[조선]사람의 幸福[행복]을 爲[위]하여서 하였다. 나는 지나 간 六年間[육년간]에 보리밥 된장찌개로 每日[매일] 六[육], 七時間[칠 시간]씩이나 朝鮮[조선]사람의 靑年[청년]을 가르치노라 하였고, 틈틈이 되지도 않는 글도 지어 新聞[신문]이나 雜誌[잡지]에 내기도 하였다. 그러고 그러할 때에 나는 일찍 거기서 무슨 報酬[보수]를 받으려 한 생각이 없었고 오직 행여나 이러하는 것이 불쌍한 朝鮮人[조선인]에게 무슨 利益[이익]을 줄까 하는 哀情[애정]으로서 하였다. 毋論[무론] 나는 몇 親舊[친구]에게 「너는 글을 잘 짓는다」는 稱讚[칭찬]도 들었고, 或[혹] 「너는 매우 朝鮮人[조선인]을 사랑한다」는 致賀[치하]도 들었다. 그리고 어린 생각에 기뻐하기도 하였고 그 때문에 獎勵[장려]함도 많이 받았다. 그러나 나는 決[결] 코 이것을 바라고 每日[매일] 六[육], 七時間[칠 시간] 粉筆[분필]가루를 먹으며 붓을 잡은 것은 아니었다. 設或[설혹], 내 能力[능력]과 精誠[정성]이 不足[부족]하여 나의 努力[노력]이 아무러한 큰 效力[효력]도 生[생]하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나는 實[실]로 내 眞情[진정]으로 朝鮮[조선]사람을 爲 [위]하여 한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저 큰 愛國者[애국자]들이 하는 모양으로 「朝鮮[조선]과 婚姻[혼인]」하지는 못하였다. 나는 朝鮮[조선]을 唯一 [유일]한 愛人[애인]으로 삼아 一生[일생]을 바치기로 作定[작정]하기에 이르지 못하였다.『寂寞[적막]도 해라』 『춥기도 해라』할 적마다 『朝鮮[조선]이 내 愛人[애인]이라고 생각하려고 애도 썼다. 그러나 나의 朝鮮[조선]에 對[대]한 사랑은 그렇게 灼熱[작열]하지도 아니하고 朝鮮[조선]도 나의 사랑에 對答[대답]하는 듯 하지 아니하였다. 그래서 아까도 金君[김군]께 다만,

『아니 나는 오직 혼자요.』

하고 對答[대답]할 뿐이었다. 果然[과연] 나는 혼자로다. 이 二十四疊[이십 사첩]이나 되는 휑하게 비인 寢室[침실], 싸늘한 空氣中[공기중]에 灰色[회색] 구름 덮인 차디찬 겨울 하늘을 바라보며 혼자 발발 떨고 누워 있는 모양으로 나는 혼자로다.

나는 벌떡 일어나서 아까 琉璃窓[유리창]을 가리웠던 揮帳[휘장]을 제쳤다. 그러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如前 [여전]히 灰色[회색] 구름이 덮이고 如前 [여전]히 물끄러미 나를 내려다본다. 나는 그 차디찬 하늘이 반갑고 多情 [다정]함을 깨달았다. 나는 조금이라도 하늘을 가까이 볼 양으로 琉璃窓[유리창]을 열었다. 굵은 빗방울이 부스럭 눈에 섞여 내 여윈 얼굴을 때린다.

저 하늘의 입김인 듯한 차디찬 바람이 내 품 속으로 기어 들어오고 흐트러진 내 머리카락을 날린다. 나는 오싹 소름이 끼치면서도 精神 [정신]이 灑落 [쇄락]하여짐을 깨달았다. 마당에 홀로 섰는 잎 떨린 碧梧桐[벽오동] 나무가 무슨 생각을 하는 듯이 우두커니 섰다. 나는 精神 [정신] 잃은 사람 모양으로 하늘을 바라보다가 琉璃窓[유리창]을 도로 닫고 이불을 푹 막 썼다.

學校[학교]에 갔던 舍生[사생]들이 돌아왔는지 아래層[층]에서 신 끄는 소리도 나고 말소리도 들린다. 어떤 사람이 日本俗謠[일본속요]를 부르면서 食堂[식당]께로 퉁퉁 뛰어가는 소리도 들린다. 寄宿舍[기숙사] 속은 다시 살았다. 또 사람들이 욱적욱적하는 世上[세상]이 되었다. 나는 여러 舍生 [사생]들의 모양을 생각하고 不快[불쾌]한 마음이 생겼다.

「중이 되고 싶다」하였다. 年前 [연전]에 어떤 觀相者[관상자]가 나를 보고 「그대는 僧侶[승려]의 相[상]이 있다」하던 것을 생각하였다. 그때에는 우습게 듣고 지내었거니와 只今[지금]은 그 말에 깊은 뜻이 있는 듯하다.

내 運命[운명]의 豫示[예시]가 있는 듯하다. 아아 깊은 山谷間[산곡간] 瀑布[폭포] 있고 淸泉[청천] 있는 조그만한 菴子[암자]에서 아침 저녁 木魚[목어]를 두드리고 誦經[송경]하는 長衫[장삼] 입은 중의 모양! 年前[연전] 어느 가을에 道峰[도봉]서 밤을 지낼새 새벽에 꿍꿍 울려 오는 鍾[종]소리와 그 鍾[종]을 치던 老僧[노승]을 생각한다. 世上[세상]의 쓰고 달고 덥고 추운 것을 잊어버리고 一生[일생]을 深山[심산]에 조그마한 菴子[암자]에서 보내는 것이 나에게 가장 適合[적합]한 生活[생활]인 듯하다. 그러고 나는 저 중 된 사람들이 무슨 動機[동기]로 出家[출가]하였는가를 생각하였다.

그러고 그네도 대개 나와 같은 動機[동기]로 그리하였으리라 하였다. 나는 나의 어떤 姑母[고모]를 생각한다. 그는 十七歲[십칠세]에 出嫁[출가]하여 十八歲[십팔세]에 寡婦[과부]가 되었다. 그의 남편은 十三歲[십삼세]에 죽었다 하니까 그는 毋論[무론] 處女 [처녀]일 것이다. 그 後[후]에 姑母[고 모]는 十年[십년] 동안 守節 [수절]하였다. 그러다가 金剛山[금강산]의 어떤 女僧[여승]을 만나 僧尼生活[승니생활]에 關[관]한 이야기를 듣고 그 女僧 [여승]을 따라 金剛山[금강산] 구경을 갔다. 두 달 만에 姑母[고모]는 돌아 왔다. 그러나,

『그 하얀 옷을 입고 하얀 고깔을 쓰고 새벽에 念拂[염불]하는 양을 보고는 차마 이 世上[세상]에 더 있을 수가 없어요.』하고 金剛山[금강산] 楡岾寺[유점사]의 T菴[암]이란 데서 중이 되었다. 나는 그 姑母[고모]를 보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말을 그 姑母[고모]의 堂姪[당질] 되는 내 族弟 [족제] K에게 들었다. 前 [전]에도 두 번 들은 저이 있으나 오늘 아침에 特別[특별]히 仔細[자세]히 들었다. 나는 그 姑母[고모]가 情[정]다운 듯도 하고 나의 先覺者[선각자]인 듯도 하다. 나는 내가 머리를 박박 밀고 하얀 고깔에 칡베 長衫[장삼]을 입고 그 姑母[고모]께 뵈는 모양을 想像[상상]하였다.

싸늘한 生活[생활]! 옳지 그것은 싸늘한 生活[생활]이로다. 그러나 世上 [세상]의 義務[의무]의 壓迫[압박]과 愛情[애정]의 羈絆[기반] 없는 싸늘하고 외로운 生活[생활]! 옳다 나는 그를 取[취]한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는 눈을 떠서 室內 [실내]를 둘러보았다. 휑하니 비인 방에는 찬바람이 휙 돌아간다. 나는 金剛山[금강산] 어느 菴子[암자] 속에 누운 듯하다. 琉璃窓[유리창]으로는 如前 [여전]히 灰色[회색] 구름 덮인 차디찬 하늘이 물끄러미 나를 들여다본다.

食堂[식당]에서夕飯鍾[석반종]이 울고 舍生[사생]들이 신을 끌며 食堂[식당]으로 뛰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五燭電燈[오촉 전등]이 혼자서 반작반작한다. 

(一九一八年[일구일팔년]三月[삼월] 《靑春》 [청춘] 第十二號 [제십이호] 所載 [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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